[include(틀:다른 뜻1, other1= 동명의 순양함, rd1=나히모프, anchor1=순양함)] [include(틀:1차 세계대전/러시아 함선)]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dmiral-nachimow_01.jpg|width=100%]] || || {{{#0036a7,#588eff '''«Адмирал Нахимов»'''}}} || [목차] == 개요 == 아드미랄 나히모프는 [[러시아 제국]]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동형함은 없다. 함명은 러시아의 해군제독인 파벨 나히모프의 이름에서 기인한 것이다. 1883년 12월 7일에 [[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선소에 발주해 1884년 7월에 기공에 들어가 1885년 10월 21일에 진수 후 1888년 10월에 완공되어 취역하였다. == 제원 == || 전장 ||103m|| || 전폭 ||18.6m|| || 흘수 ||7.7m|| || 기준배수량 ||7,780t|| || 최대출력 ||8,000hp|| || 최대속력 ||16.3kt|| || 항속력 ||10kt로 2,800해리|| || 무장 ||20.3cm 연장포 4기, 15.2cm 단장포 10기, 4.7cm 단장기관포 12기,[br] 3.7cm 단장기관포 6기, 6.4cm 야포 2기,[br] 38.1cm 수상어뢰발사관 단장 3기, 기뢰 40발|| || 탑재기 수 ||없음|| || 승원 ||650명|| || 동형함 ||없음|| == 상세 == 본함은 러시아가 자국의 연안방어를 위해 건조한 함이었는데, [[영국 해군]]의 순양함인 <임페리우스>급을 참고하여 설계해서 원형은 23.4cm포 4문을 탑재였지만, 본함은 의욕적으로 구경은 20.3cm 로 작았어도 당시 주력함에는 희귀했던 냄비를 엎은 모양의 [[포탑]]에 수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리고 러시아 해군에서 [[어뢰]]방어망을 도입한 최초의 함이기도 했다. 아드미랄 나히모프는 취역 후인 1889년 5월에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태평양함대의 기함이 되었다. 1891년 9월에 수리를 위해 러시아로 귀환한 후 공사가 완료되자 1893년 7월에 [[뉴욕]]과 [[툴롱]]을 방문한 후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돌아왔다. 1898년에 러시아로 다시 귀환한 아드미랄 나히모프는 근대화 개장을 1899년 11월부터 실시한 후 다시 태평양함대로 돌아왔다가 1903년에 [[발트해]]로 이동했다. 1904년에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아드미랄 나히모프도 발트함대에서 차출되어 제 2 태평양함대 소속으로 1904년 10월에 극동을 향하여 출항했다. 본함은 다른 [[순양함]]들보다도 강력했기 때문에 3척의 구식[[전함]]([[페레스베트급 전함|오슬랴바]], 시소이 벨리키, [[나바린급 전함|나바린]])과 함께 제2 전함대에 소속되었다. 초장거리 항해에 앞서서 아드미랄 나히모프는 함대 총 회계를 맡게 되었다. 1905년 5월 27일에 일어난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해군]]의 장갑순양함에게 30발 이상의 명중탄을 맞고 중파한 아드미랄 나히모프는 25명의 사망자와 51명의 부상자를 냈다. 하지만 반격에 나서 일본의 장갑순양함 이와테에게 20.3cm 주포탄 3발을 명중시켜 소파판정을 냈다. 야간에 잔존함이 일본해군의 [[구축함]]과 [[수뢰정]]의 공격을 받았을 때 서치라이트를 점등한 본함은 [[어뢰]]를 맞았다. 대파되어 화재가 발생했지만 아드미랄 나히모프는 응급수리로 인해 침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뢰파공으로 인한 침수와 소화용 해수로 인해 부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결국 다음날 아침에 자침처분하고 말았다. 수병들 중 103명은 함재정으로 탈출했는데 523명은 일본의 가장순양함 <사도마루>에 의해 잡혀 포로가 되어 그 중 18명이 사망했다. 함대 총 회계를 맡았다는 이유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쓰시마의 해저 97m에 가라앉은 본함에는 다량의 금괴가 남아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인양작업을 둘러싸고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출처:해인사 <러시아/소련해군 순양함사> [[분류:순양함]][[분류:해상 병기/근대]][[분류:해상 병기/세계 대전]][[분류:1888년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