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시라쿠사 참주)] ||<-2> {{{+3 '''아드라노도로스''' }}}[br]{{{-1 Ἀδρανόδωρος }}} || || '''생몰년도''' ||미상 ~ 기원전 214년 || || '''출생지''' ||[[시칠리아]] [[시라쿠사]] || || '''사망지''' ||[[시칠리아]] [[시라쿠사]] || || '''지위''' ||[[시라쿠사]] 참주 || || '''국가''' ||[[시라쿠사]] || || '''가족''' ||[[히에로 2세]](장인)[br]데마라타(아내) || |||| 시라쿠사의 참주 || || 재위 ||기원전 214년 || || 전임 ||[[히에로니무스(시라쿠사)|히에로니무스]] || || 후임 ||[[에피키데스]][br][[히포크라테스(시라쿠사)|히포크라테스]] || [목차] [clearfix] == 개요 == [[시라쿠사]] 19대 [[참주]]. == 생애 == [[히에로 2세]]의 딸 데마라타의 남편으로, 기원전 215년 임종을 눈앞에 둔 히에로 2세로부터 [[히에로니무스(시라쿠사)|히에로니무스]]를 보좌하는 15명의 고명 대신 중 한 사람으로 지명되었다. 그는 히에로니무스 집권 직후 왕이 성년식을 치렀으니 이미 성인이라는 이유로 섭정단을 해산하고, 히에로 2세의 또다른 사위 조이포스를 히에로니무스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동생들과 함께 알렉산드리아로 보냈다. 그리고 [[칸나이 전투]]에서 참패한 로마가 곧 망할 거라 보고 [[고대 카르타고]]와 손잡고 시칠리아를 석권하고자 했다. 히에로 2세 대부터 정계에서 활약한 프라손이 반대하자, 아드라노도로스는 프라손이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처형했다. 히에로니무스는 그의 설득에 따라 [[한니발 바르카]]와 손을 잡고 로마에 대적하려 했으나, 기원전 214년 레온티니 시를 장악한 뒤 아고라로 향하다가 암살자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는 조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라쿠사 시의 모든 요충지를 장악한 뒤 히에로 왕가의 폐지를 선언하고 스트라테고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아내 데마라타의 설득을 받아들여 왕정을 조만간 회복할 마음을 품고 로마를 지향하는 귀족들과 카르타고를 지지하는 자들을 이간질시킨 후 이를 빌미로 절대 권력을 손에 쥘 야심을 품었다. 이 음모에는 데마라타의 조카와 결혼한 테미스토스도 참여했다. 그러나 시라쿠사 정부는 밀고를 통해 이 음모를 사전에 포착했고, 군인들을 시켜 그를 죽이게 했다. 그는 의회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군인들의 습격을 받아 암살당했다. 주민들이 아드라노도로스 암살을 단행한 자들을 처형하라고 요구하자, 암살자 중 한 사람인 소파테르가 아드라노도로스가 참주가 될 야심을 품고 있었으며, 히에로니무스가 방탕한 행위를 저지른 배경엔 그가 있었다고 주장했다.그러면서 아드라노도로스와 테미스토스가 데마라타 등 히에로 2세의 딸과 손녀들의 부추김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데마라타 등 히에로 2세의 남겨진 딸과 손녀들을 모조리 살해했다. 이후 치열한 암투가 벌어진 끝에 [[한니발 바르카]]의 사절이었던 [[에피키데스]]와 [[히포크라테스(시라쿠사)|히포크라테스]]가 집권했다. [[분류:시라쿠사 참주]][[분류:기원전 214년 사망]][[분류:시라쿠사 출신 인물]][[분류:암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