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897년 출생]][[분류:1982년 사망]][[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독일제국군/군인]][[분류:독일 국방군/인물]][[분류:독일 연방군/인물]][[분류:니더작센 주 출신 인물]] [include(틀:독일 국방군/장성급 장교)]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undesarchiv_Bild_146-2005-0030,_Adolf_Heusinger.jpg|width=100%]]}}} || ||<#666> {{{#FFF 이름}}} ||<(>'''Adolf Bruno Heinrich Ernst Heusinger'''[br]아돌프 브루노 하인리히 에른스트 호이징어 || ||<#666> {{{#FFF 출생}}} ||<(>[[1897년]] [[8월 4일]], [[독일 제국]]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홀츠민덴]]|| ||<#666> {{{#FFF 사망}}} ||<(>[[1982년]] [[11월 30일]], [[서독]] [[쾰른]] || ||<#666> {{{#FFF 복무}}} ||<(>[[독일 제국군]] 육군 [br] [[국가방위군]] 육군 [br] [[독일 국방군]] 육군[br][[독일 연방군]] 육군|| ||<#666> {{{#FFF 최종 계급}}} ||<(>[[파일:Si_5a.png|width=32]] [[독일 국방군]] 육군 [[중장]] [br]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px-HD_H_64_General.svg.png|height=32]] [[독일 연방군]] 육군 대장 || ||<#666> {{{#FFF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br] [[제2차 세계 대전]] || ||<#666> {{{#FFF 주요 수훈}}} ||<(>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제정 전상장 2등급|| [목차] [clearfix] == 개요 == 아돌프 호이징거는 독일 국방군의 중장이자 독일 연방군의 대장이다. == 생애 == 호이징거는 1897년, 당시 독일 제국의 구성국이었던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홀츠민덴에서 태어났다. 1915년 호이징거는 독일제국군이자 프로이센군에 입대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장교로 싸웠으며, 전후에도 [[국가방위군]]에 남은 영재였다. 호이징거는 1931년부터 트루페남트에서[* 사실상 참모부나 같았으며, 참모부를 금지한 베르사유 조약을 우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독일 국방군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참모부에서 일했다. 호이징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참모부에서 일했다. 나중에는 [[OKH]]의 장군 참모장 사실상, 육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호이징거는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당시 히틀러 근처에 있었다. 호이징거는 "소련군은 막강한 병력으로 뒤나의 서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선봉은 이미 [[뒤나부르크]] 남서 지구에 도달했으며 [[페이푸스 호]] 주위의 아군을 즉각 후퇴시키지 않으면, 파국이..." 이라는 말을 하던 중 폭탄이 터졌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rafik_-_Lagebesprechung_Wolfsschanze%2C_20._Juli_1944.png]] 이곳에서 2번 위치에 있었던 호이징거는 경상을 당하였고, 1944년 제정 전상장 은상을 받았다. 이후 1945년 5월, 호이징거는 항복하였다. 호이징거는 전쟁범죄에 연관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받은 후 풀려났다. [[독일연방공화국]]이 수립되자 호이징거는 독일 연방군 재건에 기용되어 1957년 초대 독일 연방군 총감찰관을 맡았다.[* 2차대전 당시 그가 육군 총사령관을 맡았던 경험이 큰 이유이다.] 호이징거는 자신과 같이 기용된, [[한스 슈파이델]]과 함께 [[독일 연방군]] 육군의 대장으로 진급했다. 이후 1982년 서독 [[쾰른]]에서 사망하였다. == 여담 == * 그의 부관, 하인츠 브란트 육군 대령은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당시 히틀러를 사실상 살렸으나, 대신 사망했다. * 2014년 공개된 자료에 따르만 그가 슈네즈 군단의 소속이었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