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서인)] ||<-2> 沈義謙 || ||출생||[[1535년]] ([[중종(조선)|중종]] 30년)|| ||사망||[[1587년]] [[10월 8일]] (향년 51 ~ 52세)[br](음력 [[선조(조선)|선조]] 20년 9월 7일)||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 심씨|청송]](靑松)[* 안효공파 청양군 의겸파의 파조이다.], 자는 방숙(方叔), 호는 손암(巽菴)·간암(艮菴)·황재(黃齋)·손재(巽齋). 청릉부원군 심강의 차남이며 [[김효원]]과의 대립으로 [[붕당]]이 만들어진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명종(조선)|명종]]비인 [[인순왕후]]의 남동생이다. 선조에게 있어서는 법적 외삼촌이 된다.[* 선조는 명종과 인순왕후의 양자로 입적되었기 때문이다.] == 생애 == 청릉부원군 심강과 어머니 [[전주 이씨]] 완산부부인 이씨 사이의 8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출생 후 9촌 숙부(삼종숙) 심홍(沈泓)에게 입양되었다. 일찍이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555년(명종 10) 식년시 진사시에 3등 28위로 급제하고[[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SA_6JOa_1555_004505|#]] 1562년(명종 17) 별시 문과에 을과 1위로 급제했다.[[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MN_6JOa_1562_003565|#]] [[이량#조선시대의 문신|이량]]이 젊은 사림들을 자신의 [[권력]]욕으로 제거하려 하자 막기 위해 노력하고 [[선비]]로서의 명망이 높아졌다.[* 공교롭게도 이량은 자신의 외삼촌이다. 외삼촌이 제2의 [[윤원형]]으로 득세를 하고 실권을 휘두르려 하자 외삼촌임에도 불구하고 견제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1572년(선조 5) 김효원이 이조정랑 자리에 발탁되려고 했으나 심의겸은 김효원이 윤원형의 집에서 기숙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1574년(선조 7) 결국 김효원은 이조정랑이 되고 이후 후임으로 심의겸의 동생인 심충겸(沈忠謙)이 추천되었으나 김효원은 '직분(이조정랑)이 척신의 것이 될 수 없다'고[* 1574년까지만 해도 [[인순왕후]]가 살아있었기 때문에 이 반대 사유는 나름 명분이 있었다.] 반대[* 자신이 이조정랑 자리에 발탁되려던 것을 반대했던 심의겸에게 결코 좋은 [[감정]]이 남아있을리 없었다.]하면서 둘은 대립하기 시작했다. 심의겸의 집이 [[궁궐]]에서 바라본 기준으로 도성 '[[서쪽]] 정릉방'에 있었고 김효원의 집은 도성 '[[동쪽]] 낙산 및 건천동'에 있어 '심의겸을 지지하는 [[서인]]'과 '김효원을 지지하는 [[동인(조선)|동인]]'으로 갈라지며 당쟁의 시초가 되었다. 그야말로 붕당 [[정치]]의 시초를 제공한 인물이 된 셈이다. 이후 1584년에 [[이이(조선)|이이]]가 죽자 서인은 동인의 공격으로 전원 다 유배를 가게되는데 이때 심의겸은 유배간지 얼마 안되어 1587년(선조 20년) 53세를 일기로 [[요절]]하고 만다. == 대중매체 ==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인종, 명종실록과 선조실록에서 등장한다. 인종, 명종실록에선 별다른 비중은 없고 심씨일가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이때 심의겸이 “내 이름을 기억해둬. 다음 제 10권의 중요 인물이거든.”이라 하는데 이건 아마 [[붕당정치]] 때문에 그런것으로 추정된다. [[이량]]이 심씨일가를 박살낸다는 계획이 심강에게 전해지자 이에 위험을 느낀 심의겸은 이량을 탄핵한다. 이후 이량이 유배되면서 인종, 명종실록에서의 등장은 끝나고 선조실록에선 [[김효원]]이 이조전랑에 임명되는걸 반대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에 김효원은 심의겸을 복수할 기회를 넘보고 있었는데 이때 이조전랑 후보로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거론되자 김효원은 보란듯이 이조전랑 후임에 심충겸을 임명할수 없다며 보란듯이 반대하자 심의겸도 화가 나서는 김효원과 대립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때 김효원의 집이 한양 동쪽에 있어서 [[동인(조선)|동인]]이라 불리고 심의겸의 집이 한양 서쪽에 있어서 [[서인]]으로 불리게 되면서 본격적인 붕당이 형성되었다. 이후 [[이이(조선)|이이]]가 1584년에 병으로 죽자 동인은 이이, [[성혼]], [[정철]]을 서인으로 몰아세우며 이들을 탄핵하자 [[선조(조선)|선조]]는 서인 세력을 대거 유배 보내버린다. 이때 심의겸은 1587년(선조 20년) 9월 2일에 53세를 일기로 사망하면서 등장종료. [[분류:조선의 문관]][[분류:조선의 외척]][[분류:서인]][[분류:청송 심씨 안효공파]][[분류:1535년 출생]][[분류:1587년 사망]][[분류:병조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