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파주시 출신 인물]][[분류:1895년 출생]][[분류:1962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include(틀:표절, version=1)] || 성명 ||신훤(申楦) || || 생몰 ||[[1895년]] [[3월 1일]] ~ [[1962년]] [[10월 31일]] || || [[출생지]] ||[[경기도]] [[파주시|파주군]] 탄현면 법흥리 || || 사망지 ||[[경기도]] [[파주시|파주군]]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1895년 3월 1일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법흥리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1919년경에 평안북도 자성군 장토면 호하리로 이주했다. 그는 1919년 음력 11월 독립운동 단체인 '독립단'(獨立團)에 가입하였고, 1921년 3월 23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2149|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 '백두산의 무사들'을 뜻하는 말로서 본부 아래 제1,2,3,4,5부를 두고 재무, 경호, 통신, 외무 등의 업무를 관장했다.]의 [[강진석]]이 자신을 찾아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려 하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를 흔쾌히 수락했다. 이후 평안북도 자성군 열연면 건하동에 거주하는 양기조(梁基祚)의 집을 습격해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일련의 활동을 수행했으나, 1921년 4월 24일 평양 염전리 여인숙에서 평안남도 경찰부와 평양 경찰서의 습격을 받고 체포되었다. 이후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의 혐의로 징역 6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파주로 귀환해 조용히 지내다. 광복을 맞은 이후 1962년 10월 3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신훤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