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문관]][[분류:나주시 출신 인물]][[분류:고령 신씨]][[분류:1382년 출생]][[분류:1433년 사망]] 申檣 [[1382년]]([[우왕]] 8년) ~ [[1433년]]([[세종(조선)|세종]] 15년) [목차] == 개요 == [[조선]] 초기의 문신, 학자. [[신숙주]]의 아버지. [[자(이름)|자]]는 제부(濟夫). [[아호|호]]는 암헌(巖軒). 본관은 [[고령 신씨|고령]](高靈). == 생애 == 신장(申檣)은 1382년(우왕 8) [[전라도]] [[나주시|나주목]](현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아버지 [[신포시(申包翅)|신포시]](申包翅)와 어머니 [[경주 김씨]] 김충한(金冲漢)의 딸 사이의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장의 아버지 신포시는 1383년(우왕 9) 문과 급제자로 [[이방원]]의 동기인데 고려가 망한 후 두문동에 은거했다가 남원으로 내려갔다. 세월이 흘러 조선 [[세종대왕|세종]]이 신포시에게 벼슬을 권했음에도 제자 양성에만 힘썼다. 신장은 그런 아버지를 설득하여 결국 아버지가 세종의 요청을 받아들여 관직에 진출하게 했다. 신장은 1402년([[태종(조선)|태종]] 2) 식년시 문과에 동진사 4위로 급제하고[[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MN_6JOa_1402_000146|#]] [[세종대왕|세종]] 때까지 조정에서 활약했다. 1420년(세종 2) [[집현전]](集賢殿)이 신설되자 직제학(直提學)에 선임되었다. 이듬해 집현전 부제학(副提學)에 제수되고 세자좌보덕(世子左輔德)을 겸하였다. 1427년(세종 9)에 집현전 제학(提學)으로 승진하여 세자부빈객(世子副賓客)을 겸하였으며 왕명으로 [[숭례문]]편액(崇禮門扁額)을 썼다.[[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614A_0080_080_0070&solrQ=query%E2%80%A0%EC%88%AD%EB%A1%80%EB%AC%B8$solr_sortField%E2%80%A0$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BT_AA$solr_toalCount%E2%80%A0187$solr_curPos%E2%80%A098$solr_solrId%E2%80%A0BD_ITKC_BT_0614A_0080_080_0070|#]] 1431년(세종 13) 3월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는데 [[세종대왕|세종]]이 선왕실록을 보고자 하니 [[맹사성]], [[윤회(조선)|윤회]] 등과 함께 불가함을 간하였다. 5월에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제수되었다. 학문과 문장에 모두 능해 집현전의 초기 중추로써 활약했으나 [[술]]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술로 인한 병으로 죽었다. 그가 죽자 당대의 대신 [[허조]]는 "이 어진 이를 술이 앗아갔구나."라며 한탄했다. 그의 아들이 바로 조선 초기의 유명한 정치가인 [[신숙주]]. [[부전자전]]인지 신숙주도 아버지처럼 술을 대단히 좋아한 [[주당]]이었다. == 대중매체에서 == 유일하게 [[대왕 세종]]에서 등장해 배우 [[이달형]]이 연기하였는데, 전형적인 [[개그 캐릭터]]이다. 학식과 문재에 있어서는 명국 한림학사와 대적할 정도로 조선 최고의 천재지만, 외교나 행정 관련 업무를 볼 때는 꼭 뭔가를 깜빡하고 빼먹는 '''희대의 핵폭탄급 덜렁이'''. 첫 등장부터가 세종 즉위 이후 예조정랑(외교부 차관보급 직책)을 맡아서 나라를 대표하여 공식 외교문서를 작성해놓고 또 작성자 서명을 깜빡해서 상관[* 하필 그 상관이 '''임금은 물론 대명국 앞에서라도 쓴소리를 내벹고, 깐깐하기로는 당대 최고인 [[허조]]'''라서, 결국 돌아온 대답은 '사표 쓰라.'는 갈굼이다. 근데 이 와중에 황희가 파업하는 관료들 복귀시키겠답시고 허조를 자극하려 이 양반을 사신단의 대표로 집어넣었고, 당연히 허조는 노발대발해버린다.]한테 폭풍갈굼을 먹는 장면. 그리고 이 광경을 본 박은과 조말생의 대화에서 하나 더 추가된 게 있었는데, 관련 기록을 본 박은도 놀랄 정도로 오늘날로 치면 수능을 치면서 만점짜리 답안지를 작성해놓고는 정작 자기 이름을 안 쓴 바람에 꼴찌급으로 처리한 것이라고(...). 그래도 하는 대사라는가 행동을 보면, '''예조 최고의 천재'''답게 대단히 지성적이었고, 세자빈객으로서 당시 세자였던 [[문종(조선)|문종]]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71화에서 지병[* 70화 즈음에 나주에서 올라올 때 세자와 같이 온 아들 신숙주가 소갈 등 지병을 거론하면서 의원도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으로 인해 자식들과 세자가 보는 앞에서 '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共之'[* ''''위정'''이덕 비여북신거기소 이중성공지'라 하여 '덕으로 하는 정치는 비유하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나머지 모든 별이 그를 중심으로 고개 숙이고 도는 것과도 같다.'라는 『[[논어]]』<위정> 편의 첫 구절로, '위정'이라는 해당 장의 제목 자체가 이 첫 마디에서 따온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후에 궐로 돌아온 세자는 무리하게 석강을 하다가 과거 회상이 떠올라 울고, 건물을 뛰쳐 나오면서 다시 눈물을 지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신장,version=793, paragraph=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