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킵차크 칸국]][[분류:러시아의 역사]][[분류:16세기 멸망]][[분류:역사적 이슬람 국가]][[분류:유럽의 칸국]][[분류:북아시아사]][[분류:중앙아시아사]][[분류:서아시아사]][[분류:시베리아의 역사]] [include(틀:시베리아의 역사)] [include(틀:킵차크 칸국 계승국)] |||||| {{{+2 '''시비르 칸국''' [br] '''Себер Ханлыҡ'''}}} || ||||||<:> [[파일:시비르 칸국 국기.png|width=6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560px-Siberian_Khanate_map_English_revised.svg.png|width=100%]]}}} || ||||||<:> [[1468년]]~[[1598년]] || ||<:> 위치 ||오늘날의 튜멘 주|| ||<:> [[수도(행정구역)|수도]] ||||[[튜멘]]|| ||<:> 정치체제 ||||[[전제군주제]]|| ||<:> 국가원수 ||||[[칸]]|| ||<:> [[언어]] ||||[[시베리아 타타르어]]|| ||<:> 종족 ||||[[시베리아 타타르]]|| ||<:> [[종교]] ||||[[이슬람]]|| ||<:> 성립 이전 ||||[[킵차크 칸국]]|| ||<:> 멸망 이후 ||||[[러시아 제국]]|| [목차] [clearfix] == 개요 == [[시베리아]] 서부 지역에 위치한 [[튀르크]]계 [[이슬람]] 국가로 원래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의 후손들이 다스렸다. 이들이 다스리던 곳이 현재의 [[톰스크]] 및 [[튜멘]], [[노보시비르스크]] 일대이다. 이들은 [[킵차크 칸국]] 계열 국가 중 하나이며 [[튀르크]]계의 [[시베리아 타타르]]인들이 주축이었다. 언어는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시베리아 타타르어]]를 사용하고 지배층은 [[수니파]] [[이슬람]]을, 피지배층에 속하는 여러 우랄어족 민족들은 토속 신앙을 믿었다. 이 칸국이 유명해진 건 다름아닌 [[시베리아]]라는 지명의 유래가 이 나라 이름에서 왔기 때문이다. [[코사크]] 치모페예비치 예르마크가 오늘날의 튜멘에 위치한 시비르 칸국을 정복한 것을 계기로 [[우랄 산맥]] 동부의 광활한 [[타이가]] 지대는 시베리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1586년 [[튜멘]]에, 1587년 [[토볼스크]]에 요새를 세우고 자리를 굳혔으며, 1598년 "이르멘 전투(Ирменское сражение)"에서 쿠춤의 남은 세력들이 죽거나 붙잡혀 포로가 되면서 시비르 칸국은 멸망했다. 이후 [[노가이 칸국]]으로 도망간 마지막 지도자 쿠춤 칸은 1601년 살해당했다. == 역사 == 시비르 칸국은 [[킵차크 칸국]] 계열의 국가 중 하나다. 킵차크 칸국이 [[티무르]]와의 전쟁으로 세력이 약화되면서 분열하는 와중에 서부 시베리아와 [[우랄 산맥]]에 일대에 독립한 세력들이 시비르 칸국이 되었다. 시비르 칸국의 지배층은 [[타타르]]인들이었지만 대다수 피지배민들은 [[우랄어족]]에 속한 [[시베리아 원주민]]들로 기마 유목민인 튀르크인과는 기원이 다른 [[수렵채집인]]이었다. || [[파일:Surikov_Pokoreniye_Sibiri_Yermakom.jpg|width=100%]][br]▲ 바실리 수리코프가 그린 "'''예르마크의 시베리아 정복'''" || [[루스 차르국]]의 스트로가노프 가문이 [[우랄 산맥]] 서부의 광산을 개발하며 막대한 이익을 얻는 와중에 바로 시비르 칸국이 광산 노동자들이 사는 지역을 습격하여 광산업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이에 분개한 스트로가노프는 차르 [[이반 4세]]에게 시비르 칸국을 토벌할 것을 호소하여 허락을 받고, 코사크 산적 출신의 예르마크를 아타만[* 러시아 카자크 부대 내 최고 [[지휘관]]에 대한 호칭.]으로 삼아 [[코사크]] 기병 500여 명에 리보니아 전쟁 와중에 포로로 잡은 [[란츠크네흐트|독일인]]과 [[리투아니아인]] 300여명을 동원하여 시비르 칸국을 탈탈 털어버리고 정복했다. 예르마크 본인은 시비르 칸인 무함마드 쿠춤 칸의 반격 때 후퇴하다가 갑옷을 입은 채로 강에 빠져 [[익사]]했다[* [[이반 4세]]가 하사한 [[구리]]로 만든 [[갑옷]]이었는데, 매우 무거워서 강에 들어가자 익사했다고 전해진다.]. 시비르 칸국 주민 중 대부분을 차지한 피지배인인 여러 우랄어족 부족들은 말을 탈 줄도 모르고 활도 원시적인 형태여서 총으로 무장한 기병 수백명 만으로 정복이 가능할 정도로 쉬웠지만 시비르 칸국 멸망 이후에도 우랄계 민족인 [[한티인]]과 [[만시인]]을 중심으로[* 이들의 이름에서 [[한티-만시 자치구]]가 유래했다.] 200~300년 동안 꾸준히 폭동이 일어났다. 이들은 대개 직접 러시아인들을 공격하기보다는 당시 친러 세력인 [[코미인]] 상인들을 주로 습격했다. 원주민의 폭동을 유발시킨 문제는 시베리아 원정대의 식량 수급 문제로 원정대 입장에서 원주민들의 반란보다 더 골치 아픈 문제였다. 잉여 식량이 아예 없는 시베리아에서 수백명 단위의 원정군과 군마를 사냥과 낚시만으로 먹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코사크들은 원주민 마을을 약탈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시비르 칸국 영토 내의 원주민들이 약탈과 수탈을 피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자 [[모스크바 공국]]은 이 지역에 [[러시아인]] 죄수들을 보내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코사크들을 먹여살리게 하면서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시베리아 개척의 첫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우랄계 원주민들은 변방으로 밀려나 버렸다]]. == 유산 == 시비르 칸국의 타타르인들은 오늘날 튜멘과 [[토볼스크]]를 중심으로 한 [[시베리아 타타르]]의 조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카잔(러시아)|카잔]]과 [[아스트라한]]의 [[볼가 타타르]]족들은 [[몽골인]]의 후손이라기보다는 사실상 [[볼가 강]] 유역으로 이주한 [[튀르크]]계 불가르인[* [[불가르 칸국]] 항목 참조. [[불가리아]]도 이들이 [[슬라브]]화되어 만들어진 나라다.]의 후예이고, 시베리아 타타르인들은 인근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카자흐]]나 [[키르기스]]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티-만시 자치구]]의 [[한티인]], [[만시인]], [[셀쿠프인]]의 조상이 되는 오스탸크인들은 시비르 칸국의 피지배 민족으로 튀르크계와 같은 기마민족이 아닌 수렵과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비슷한 환경의 [[아메리카 원주민|캐나다 원주민]]들이 모피와 노예를 더 많이 얻기 위해 서로 싸운것과는 다르게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서로 사이좋게 [[러시아 제국]]에 맞서 꾸준히 반란을 일으켰다. 계속된 러시아화 및 러시아인과의 통혼 등의 과정을 거쳐 현재 이 지역의 원주민은 소수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