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from=스웨덴-노르웨이, other1=외교, rd1=스웨덴-노르웨이 관계)] [include(틀:스웨덴의 역사)] [include(틀:노르웨이의 역사)] ||<-3> {{{+2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br]'''Förenade konungarikena Sverige och Norge'''[br](스웨덴어)[br]'''De forenede Kongeriger Norge og Sverige'''[br](노르웨이어)[* 참고로 영어 명칭은 'United Kingdoms of Sweden and Norway', 줄여서 'United Kingdom'''s''''였다. [[영국]]의 영어 이름인 'United Kingdom'과 불과 한 글자 차이라 헷갈리기 쉽다. (한국어로 치면 '연합 왕국'과 '연합 왕국들'의 차이.)]}}} || ||<-2> [[파일: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 국기.svg|width=100]] || [[파일: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 국장.svg|width=100]] || ||<-2> 상징기[* 1844년부터 사용한 스웨덴 국기와 노르웨이 시민기를 섞은 것이다. 당시 노르웨이는 국기가 없어서 시민기로 대체하였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는 이것을 국기의 왼쪽 위에 그려서 국기로 썼다. 자세한 것은 후술.] || 국장 || ||<-3> [[파일:노르웨이-스웨덴(1905).svg|width=100%]] || ||<-3> 1814년 ~ 1905년 || || 위치 ||<-2>[[북유럽]] || || [[수도(행정구역)|수도]] ||<-2>[[스톡홀름]], [[오슬로|크리스티아니아]] || || 인구 ||<-2>1870년 5,900,000명[br]스웨덴 4,200,000명[br]노르웨이 1,700,000명[br][br]1920년 8,000,000명[br]스웨덴 5,600,000명[br]노르웨이 2,400,000명 || || 공동 군주 ||<-2>왕[* 사실상 [[스웨덴 국왕]]] || || 주요 국왕 ||<-2>[[칼 14세 요한]][br][[오스카르 2세]] || || 정부수반 ||<-2>총리[* [[노르웨이 총리]], [[스웨덴 총리]]. 1870년대부터 신설.] || || [[언어]] ||<-2>[[스웨덴어]], [[노르웨이어]] || || [[종족]] ||<-2>[[스웨덴인]], [[노르웨이인]] || || [[종교]] ||<-2>[[루터교회]] || || 통화 ||<-2>스웨덴 릭스달레르, 노르웨이 스페시달러^^(1814-1875)^^[br][[스웨덴 크로나]], [[노르웨이 크로네]]^^(1875-1905)^^ || || 성립 이전 ||<-2>[[스웨덴 왕국]],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 해체 이후 ||<-2>[[스웨덴]], [[노르웨이]] || [목차] [clearfix] == 개요 == 1814년부터 1905년까지 존속했던 [[북유럽]]의 연합 왕국이다. [[스웨덴]]이 우위에 서서 병합해서 그냥 스웨덴 연합 왕국이라고도 불린다. 당시 수도는 [[스톡홀름]]과 [[오슬로]][* 당시 오슬로는 17세기에 불타버린 도시를 재건한 [[덴마크 국왕|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의 이름을 따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혹은 Kristiania)로 불렸다.]였는데, 왕은 몇 달마다 번갈아가며 두 곳에 거주했다.[* 보통 하절기에는 크리스티아니아에서, 나머지는 스톡홀름에서 머물렀다.] == 국기 ==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명목상 별개의 국가였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깃발이 있었으며 선박에 게양하는 민간 상선기를 겸했다. 정부기와 해군 상선기는 오른쪽이 세 갈래로 갈라진 것을 썼다. 지금도 이들 나라에선 사각형 깃발이 국기 겸 민간 상선기고 오른쪽이 갈라진 깃발이 정부기 겸 해군 상선기다. || [[파일:노르웨이 국기(1814).png|width=100]] || [[파일:노르웨이 국기.svg|width=100]] || || 1814년 ~ 1821년 || 1821년 ~ 1844년 || 노르웨이는 1814년 킬 조약이 체결되자 노르웨이 의회의 반발로 크리스티안 프레데리크(덴마크의 [[크리스티안 8세]])를 독립적인 군주로 세웠을 때 덴마크 국기 왼쪽 위 캔턴(Canton)에 사자 문장을 넣어 국기로 사용했고 스웨덴으로 넘어간 후에도 계속 사용하였다. 그러다 1821년 프레드리크 멜체르(Fredrik Meltzer)가 지금의 노르웨이 국기를 만들었으나 당시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국왕이었던 [[칼 14세 요한]]은 이 깃발을 노르웨이의 국기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노르웨이의 시민기(市民旗)로 인정하였다. 상선기로도 사용되었는데, 노르웨이는 북아프리카 국가들과 조공관계가 없어서 북아프리카 해적의 공격을 받기 쉽다는 이유로 스페인 서쪽 해안에 있는 피니스테레 곶(Finisterre)[*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피니스테레 해전이 일어났던 곳이다.] 남쪽에서는 스웨덴 국기를 사용하고 피니스테레 곶 북쪽에서는 노르웨이 시민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즉 노르웨이 시민기는 북대서양을 못 벗어났다(...) || [[파일:스웨덴 국기(1815).svg.png|width=100]] || [[파일:스웨덴 상선기(1818).svg.png|width=100]] || || 1815년 ~ 1844년(국기) || 1818년 ~ 1844년(상선기) || 스웨덴은 1815년에 지금의 국기보다 파란색이 진한 깃발을 국기로 쓰다가 1818년에 국기의 캔턴에 노르웨이를 상징하는 문장을 넣어서 상선기로 썼다. 노르웨이의 남쪽바다 상선기는 1822년까지 왼쪽의 스웨덴 국기를 쓸 수도 있었으나 1822년에 노르웨이와 스웨덴 모두 연합기를 쓰는 것으로 통일했다. [[파일: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 국기.svg|width=200]] 그러다 1844년에 스웨덴 국기와 노르웨이 시민기를 합쳐 놓은 연합 마크(영어: union mark, 스웨덴어: unionsmärket 또는 unionstecknet, 노르웨이어: unionsmerket)가 등장하였다. 여러가지가 뒤섞인 모양이라 별명은 [[https://en.m.wikipedia.org/wiki/Herring_salad|청어 샐러드]](영어: the herring salad, 스웨덴어: sillsalladen, 노르웨이어: sildesalaten)였다. 본래 스웨덴 측에서 모양이 맘에 안 든다며 비난하기 위해 쓴 말이었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오히려 연합 마크를 좋아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짬뽕]], [[잡탕]] 정도의 느낌인 셈이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연합 마크를 자국 깃발의 캔턴에 넣어서 사용하였다. 특히 노르웨이는 캔턴 넣은 시민기를 모든 바다에서 상선기로 쓸 수 있었다.~~야 신난다~!~~ 1830년대에 북아프리카 해적이 프랑스에 의해 소탕되었기 때문. 시간이 흘러 1899년 노르웨이는 캔턴을 떼 버린 지금의 국기로 바꾸었고, 스웨덴은 1905년 동군연합 해체 이듬해인 1906년에 캔턴을 떼고 현재의 연한 파란색을 국기로 쓰게 되었다. || [[파일:노르웨이 국기(1844).svg.png|width=100]] || [[파일:스웨덴 국기(1844).svg.png|width=100]] || || 노르웨이(1844~1899) || 스웨덴(1844~1905) || [[파일:범스칸디나비아주의.jpg]] 1840년대에 나온 [[범스칸디나비아주의]]를 상징하는 그림. 가운데는 지금도 존재하는 덴마크 국기다. 엄밀히 말해 끝이 뾰족한 정부기다. [[파일:Flaggsirkulære_1899.jpg]] 1899년 10월 18일에 스웨덴 외무부가 만든 자료. 노르웨이 국기에 연합 마크가 빠져 있다. 오른쪽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기는 정부기 겸 해군기들이다. == 역사 == [[나폴레옹 전쟁]] 중 체결된 킬 조약으로 본가인 [[올덴부르크 왕조]]가 다스리던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의 일부였던 [[노르웨이]]는 분가인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이 다스리던 [[스웨덴]]으로 할양되었다. 이 병합은 양국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니었고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서로 다른 역사, 고유의 전통과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보니 결속력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와 별개로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그대로 노르웨이에 남은 스웨덴계 이주민들이 의외로 적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오늘날 노르웨이에 스웨덴식 ~손(son) 돌림 성씨가 많이 존재하게 되었다. 사실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서로 다른 역사, 전통, 언어를 가지긴 했어도 일단 같은 북게르만계 국가이다 보니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시절 기준으로도 언어·문화적 유사점은 적지 않았다.] 덴마크 지배 시절에 비해 좀 나아졌지만[*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시절에는 [[코펜하겐]]이 노르웨이 수도까지 겸했으며, 덴마크 왕들은 코펜하겐에서 노르웨이 왕위 대관식까지 퉁쳐버리고 노르웨이에 방문하지도 않았다. 덴마크에서 파견된 총독 혹은 부왕들이 노르웨이를 통치하였다.] 외교부와 국방부가 없어 여전히 속국 취급을 당했던 노르웨이는 분리 독립운동을 펼쳤고, 1905년에 국민 투표에서 독립을 결정하면서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8세]]와 왕후 [[로비사 요세피나 에우에니아|스웨덴의 루이세]][* 스웨덴 국왕 [[칼 15세]](노르웨이 국왕으로서는 칼 4세)의 딸이며, [[오스카르 2세]]는 그녀의 숙부이다.] 부부의 둘째 아들 크리스티안 칼 왕자를 [[호콘 7세]]로 선출하였다. [[오스카르 2세]]는 노르웨이의 독립을 최대한 저지하려 하였으나 스웨덴 정부는 노르웨이 독립을 수용하였고 두 나라는 자연스럽게 결별하였다. [[분류:개신교 국가]][[분류:스웨덴의 역사]][[분류:노르웨이의 역사]][[분류:유럽의 왕국]][[분류:20세기 멸망]][[분류:동군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