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후궁]][[분류:1423년 사망]][[분류:안동 장씨]] [include(틀:조선의 후궁(환조 ~ 연산군))]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E1D55, #89236A 20%, #89236A 80%, #6E1D55); color: #FFD400" '''조선 태종의 후궁[br]{{{+1 순혜옹주 장씨 | 順惠翁主 張氏}}}'''}}} || || '''출생''' ||미상 || || '''사망''' ||[[1423년]] [[9월 9일]]^^([[음력]] [[7월 26일]])^^ || || '''본관''' ||[[안동 장씨]] || || '''부모''' ||부친 - 장사길(張思吉, {{{-3 ? ~ 1418}}})[br]모친 - 복덕(福德)[* [[기생]] 출신으로, 장사길의 측실이다.] || || '''배우자''' ||[[태종(조선)|태종]] || || '''자녀''' ||없음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태종(조선)|태종]]의 후궁. 아버지는 조선 개국에 참여한 개국공신으로 [[태조(조선)|태조]]가 [[위화도 회군]]을 할 때 같이 하였고, [[1차 왕자의 난]]에서는 태종을 도왔던 화산부원군 장사길(張思吉)이며, 어머니는 그의 기생첩 복덕(福德)이다.[* 장사길의 아버지 장열(張烈)은 본래 의주지방의 토호로 장사길에게 만호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 덕분에 장사길이 이성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 == 생애 == 1412년(태종 12) 순혜옹주로 책봉되었다. 당시 기록에서는 장씨를 가리켜 "일찍이 [[후궁]]으로 들어와 있었다"고 썼는데, 아버지 장사길이 개국공신인 까닭로 특별한 간택없이 후궁이 된 것으로 보인다.[* 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 10월 29일 신사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ca_11210029_001|#]] ] 다만, 장사길의 본처도 아니고 기생첩의 자식이었고, 슬하에 자녀가 없었으므로 궁주나 빈(嬪)으로 품계가 오르진 못하였다. 1423년(세종 5) 세상을 떠났고, 이때 세종이 종이 80권과 미두 20석을 부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