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소량 황제)] [include(틀:역대 양(남조) 황태자)] || '''[[시호]]''' ||안황제(安皇帝) || || '''[[작위]]''' ||예장군왕(豫章郡王) || || '''[[성씨|성]]''' ||소(蕭) || || '''[[휘]]''' ||환(歡) || || '''[[자(이름)|자]]''' ||맹손(孟孫) || || '''부황''' ||[[소통(양나라)|고종]](高宗) || || '''모후''' ||채씨(蔡氏) || || '''생몰 기간''' ||? ~ 541년 1월 20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남북조시대]] [[양(남조)|양나라]]의 황족으로 [[자(이름)|자]]는 맹손(孟孫)이었고, 소명태자 [[소통(양나라)|소통]]과 채씨(蔡氏)의 [[장남]]. 후에 아들인 [[소동(예장왕)|예장흥문왕]]이 안황제(安皇帝)로 추존했다. == 생애 == [[양무제|무제]]의 장손이었으며, 화용현개국공(華容縣開國公)으로 봉해졌고, 동중랑장(東中郎將)과 남서주자사(南徐州刺史)를 맡았다. 531년 아버지 소통이 사망하자 무제가 소환을 황태손으로 삼기 위해 건강으로 징소했다. 그러나 소환이 이전에 무제와 소명태자 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에 대해 원망하고 있었고 또 무제도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으며 오히려 [[삼남]]인 진안왕 [[소강]]을 더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에 마침내 한 달 뒤 소환을 돌려보내고 이어서 소강을 황태자로 세웠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건 옳지 않다고 여겼고 의심하자 마침내 무제가 소환을 황태손으로 삼지 않는 대신에 그의 봉지보다 더 큰 땅인 예장군(豫章郡)에 예장군왕(豫章郡王)으로 높여 봉함으로써 불만을 잠재웠다. 또한 운휘장군(雲麾將軍)과 강주자사(江州刺史)로 관위를 높여주었다. 사망한 후 [[시호]]를 안왕(安王)으로 하였고 장남인 [[소동(예장왕)|소동]]이 습작하여 예장왕이 되었다. 이후 551년 소동이 황제로 즉위한 뒤에 시호를 안황제(安皇帝)로 높여 추존했다. 아들들로는 소동, [[소교]], [[소규]]가 있었으나, 모두 숙부였던 원제 [[소역]]에 의해 일부러 구멍낸 배에 탔다가 [[익사]]당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소환,version=63)] [[분류:양(남조)/황제]][[분류:양(남조)/황태자]][[분류:추존된 황제]][[분류:54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