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昭寧}}} [목차] == 개요 == ||<-5><:><#AA1111>'''[[후한|{{{#fff 후한}}}]]{{{#fff 의}}} [[연호|{{{#fff 연호}}}]]'''|| ||<:> {{{#!wiki style="letter-spacing: -.5px; margin: 0 -10px" [[후소제(후한)|후소제]][br][[광희(연호)|광희]](光熹)[br]{{{-2 ([[189년]])}}}}}} ||<:> {{{+1 →}}} ||<:> {{{#!wiki style="letter-spacing: -.5px; margin: 0 -10px" '''{{{#fff [[후소제(후한)|{{{#fff 후소제}}}]][br]소녕(昭寧)[br]{{{-2 ([[189년|{{{#fff 189년}}}]])}}}}}}'''}}} ||<:> {{{+1 →}}} ||<:> {{{#!wiki style="letter-spacing: -.5px; margin: 0 -10px" [[헌제]][br][[영한]](永漢)[br]{{{-2 ([[189년]])}}}}}} || [[십상시의 난]]이 평정되면서 사용된 연호로 189년 8월 28일부터 8월 30일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지]]에서 가장 짧은 기간 동안 사용한 연호로 [[동탁]]에 의해 [[유변]]이 폐위되고 [[유협]]이 즉위하면서 영한(永漢) 연호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12월에 내려진 칙령으로 광희, 소녕, 영한 연호는 폐지되었고 다시 중평 6년이 되었다. 이로 인해 189년 한 해에만 4번의 연호 교체가 일어났다. 이보다 더 짧게 사용된 연호는 386년에 사용되었지만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는 건명, 건평을 제외하고 보면 532년에 사용된 하루도 사용하지 못한 영흥이 있다. 십상시의 난으로 [[후한]]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환관]] 세력을 일소하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이를 위해 외부 군사를 끌어들였고, 환관을 일소하는 과정에서 반대파인 외척인 [[하진]]도 죽는 바람에 정계와 군부가 공백이 생기면서 동탁의 정권 장악을 위한 시기에 불과하게 되었다. == 주요 사건 == * 소녕 원년([[189년]]): 광희 원년 8월에 [[십상시의 난]]이 평정되자 소녕으로 개원. * 8월 28일: 동탁진경([[동탁]]이 낙양을 입성해 정권 장악) [[분류: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