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30&height=30]]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ffffff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 6호 ||<|2> ← || '''7호''' ||<|2> → || 8호 || || [[용양봉저정]] || '''성제묘''' || [[사육신공원|사육신묘]] || ---- ||<-2>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8]]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ffffff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호}}}]]''' || ||<-2> {{{#fff {{{+1 '''성제묘'''}}}[br]{{{-1 聖帝廟}}}}}}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성제묘,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서울)|중구]] 동호로 385-1 [br] (방산동4가 96번지) || || '''{{{#fff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 || '''{{{#fff 수량 / 면적}}}''' || 건물 1棟, 토지 21.4㎡ || || '''{{{#fff 지정연도}}}''' || [[1972년]] [[5월 25일]] || || '''{{{#fff 관리자[br](관리단체)}}}''' || 국유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성제묘.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view_14691575752701.jpg|width=100%]]}}} || || {{{#fff '''성제묘[* [[https://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1636051&ccbaKdcd=21&ccbaAsno=00070000&ccbaCtcd=11|첫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br]두 번째 사진 출처: [[서울 2천년사]] 18 [[https://history.seoul.go.kr/ebook/v/p0Vc7CnsEFy|조선시대 서울의 종교와 신앙]], 423쪽]'''}}} || [목차] [clearfix]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Guanyu-1.jpg|width=100%]]}}} || || {{{#fff '''성제묘의 주신(主神) 관우'''}}} || [[중국]] [[삼국시대]]의 장수 [[관우]]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사당]]. [[서울특별시]] [[중구(서울)|중구]] 동호로 385-1, 방산동4가 96번지에 있다. 관우는 '관왕(關王)' 이란 호칭으로 존경받았기 때문에 관우의 사당을 일컬어 '[[관왕묘]]'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 역사 == [[삼국시대]] [[중국]]의 장군을 [[한국]]에서 기리게 된 계기는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을 도우러 파병나온 [[명나라]] 군이 관우 신앙을 전파했으며, [[명나라]] 장군들이 진중 근처에 관왕묘를 세웠다. 그 영향으로 인해 '관우의 음덕으로 [[임진왜란]]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믿음이 조선군에게도 퍼져나갔다. 이에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조선 조정에서도 공식적으로 관왕묘 건립을 논의했고 국가차원의 관왕묘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민간에서도 관왕묘를 여러 곳에 세웠는데 방산동 성제묘도 그 중 하나였다. 첫 이름은 그냥 '관왕묘(關王廟)'였고, [[대한제국]] 수립 후인 1902년([[광무]] 6년) 경에 [[고종(대한제국)|고종]]이 [[관우]]를 '현령소덕의열무안성제(顯靈昭德義烈武安聖帝)'로 높이면서[* '현령소덕무안왕(顯靈昭德武安王)'은 [[명나라]] [[만력제]]가 내린 이름이고, 고종이 저기에다 '의열(義烈)'을 추가하고 '왕(王)'을 '성제(聖帝)'로 격상시켰다.] 관왕묘도 '성제묘(聖帝廟)'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성묘(顯聖廟)'란 별칭도 이때 생겨났다. 성제묘가 있던 곳은 조선 초기에는 훈련원이, [[임진왜란]] 이후에는 [[오군영#s-3.1|훈련도감]]에 속했던 염초청이 있던 자리였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성제묘를 원래 염초청 소속 관왕묘로 보기도 한다.[[https://ncms.nculture.org/faith/story/1432|#]] == 제사 == 현재까지 [[제사]]가 치러지는 현역 사당이다. 방산시장 상인들이 시장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서 지내고 있다. 예전에는 [[관우]]의 생일 및 사망일마다 제사를 올렸으나 지금은 사망일인 [[태음력|음력]] 10월 19일에만 지낸다. [[유교|유교식]]으로 제례 의식을 진행한다. 상차린 후 다음 잔을 올려 재배하며, 참석자는 3명씩 함께 들어가서 같이 절한다. [[제수]]는 [[脯|생선포]], [[제육]], [[떡]], 3색 [[과일]], [[조기#s-1|조기]], [[막걸리]] 등이며, [[장례]]를 치르거나 아이를 낳는 집에는 출입하지 않는 금기를 지킨다.[[https://ko.wikipedia.org/wiki/%EC%84%B1%EC%A0%9C%EB%AC%98|#]] == 현성전 == * 본전인 현성전은 정면 1칸, 측면 2칸, 총 2칸이며 맞배지붕을 한 홑처마, 민도리 양식이다. * 정면의 외면에는 세살문이 달려있으며 측면과 배면 외면은 노란색 벽이다. 정면 전면에 '顯聖殿(현성전)'이란 현판이 달려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성제묘 관우초상.png|width=100%]]}}} || || {{{#fff '''성제묘 관우 부부 초상'''}}} || 본전 가운데에는 관우 부부의 영정이 있다. 관우는 붉은 얼굴에 조선 임금과 같은 복식을 하고 있고, 관우의 부인은 옅은 녹색 당의에 홍색치마를 입고 있으며 [[가체]]머리를 하고 있다. == 같이보기 == * [[관왕묘]] * [[서울 동관왕묘]] [각주]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관왕묘, version=36)] [[분류:조선/건축]][[분류: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분류: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