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진(희성)의 정경)] 先軫 ? ~ 기원전 627년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 [[춘추시대]] [[진(희성)|진(晉)나라]]의 [[경]]. 씨는 선(先)이며 이름은 진(軫)이다. 채읍(采邑) 사람으로 원래 이름은 원진(原軫)이다.[* 훗날 [[육경(진나라)|육경]]이 되는 [[선(성씨)|선씨]]들의 조상이 바로 이 사람이라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선씨는 육경에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호(성씨)|호씨]] 다음으로 빠르게 몰락했다.] == 행적 == 기원전 656년, [[여희]]가 [[진헌공]]의 총애를 받아 후계자 자리를 자신의 아들에게 주려고 온갖 음모를 꾸미면서 [[주군]]인 [[공자]] 희중이 즉 훗날의 [[춘추오패]]의 일원 [[진문공]]을 죽이려 하자 희중이와 함께 [[적|적나라]]로 갔다. 기원전 636년까지 근 20년 간 진문공을 따라가면서 [[송(춘추전국시대)|송나라]],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 [[진(영성)|진(秦)나라]]를 떠돌았다. 그리고 [[진목공]]의 후원으로 진문공이 진나라 [[군주]]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진문공은 같이 고생한 그는 물론, [[조최]], [[호모]], [[호언]] 등과 함께 진문공에게 중용되었다. 기원전 633년, 송나라의 군주 [[송성공]]이 초나라의 침략을 받아 구원을 요청하자 진문공은 원병을 보내준다. 진문공의 명을 받들어 [[조나라|조(曹)나라]]를 쳤고, [[위(춘추전국시대)|위(衛)나라]]와 동맹을 맺었다. 이어서 진문공은 진나라의 군대를 상·하군 2군에서 중·상·하 [[삼군|3군]]으로 증설하면서 [[난지]]를 하군의 [[대장]]으로 삼고 그를 하군의 보좌로 임명한다. 기원전 632년, 조나라를 쳐서 오록[* 바이두 백과에 의하면 이곳이 현재 복양현이라고 한다.]을 차지했다. 2월 진나라의 중군의 장수 [[극곡]]이 죽자 진문공은 선진을 중군의 대장으로 삼는다. 3월에 조나라의 도성을 쳤고, 이때 초나라가 송나라 도성을 포위했다. 송성공이 구원을 요청하자 진문공은 선진을 [[원수(계급)|원수]]로 임명하여 송나라를 구원하고 [[초성왕]]은 진(晉)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후퇴하라는 명을 내린다. 그러나 초나라의 [[영윤]] [[성득신]]은 성왕의 명을 따르지 않고 진과 싸우고자 했고 이에 성왕은 분노하여 지원군을 보내지 않는다. 진문공은 과거 초성왕한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90여리를 물러나면서 초나라 군대를 유인했고 성득신이 추격하여 성복에 이르게 된다. [[성복 전투|양군은 성복에서 전투를 벌였고 결과는 진의 대승이었다.]] 초나라는 상무적인 문화였기 때문에 패장은 자결하는 전통이 있었고 성득신은 자결하려 한다. 성왕도 사신을 보내 얼른 자결하지 않고 뭐하냐 재촉하자 성득신은 [[신나라(춘추전국시대)|신]](申)과 [[식]](息)의 장병들의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다 말하고 목숨을 끊는다. 성왕이 뒤늦게 신하의 말을 듣고 자결하지 말라는 사신을 보냈지만 이미 자결한 후였고 [[고인드립|전투에서 승리하였음에도 안색이 좋지 않던 진문공은 성득신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기뻐한다.]] 기원전 628년, 진문공이 죽고 그 아들 [[진양공]]이 즉위하였는데, 진목공이 패업을 위해 진나라 국경을 넘어 [[정나라]]를 급습했다. 기원전 627년, 진양공은 진(秦)나라와 효산에서 전투를 벌여 승리해 [[맹명시]][* [[백리해]]의 아들.], [[백을병]][* [[건숙]]의 아들.], [[서걸술]]을 사로잡았다. 그것을 안 진문공의 [[부인]]이자 진목공의 [[딸]]인 [[문영]]은 그들을 풀어줄 것을 청했고 진양공은 친모가 아니라고 해도 [[어머니]] 뻘 되는 사람의 말이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진은 밥을 먹다 달려와 적의 장수들이 어디있냐 물었고 양공은 어머니가 부탁하여 풀어주었다고 답한다. '''선진은 대노하여 양공의 면전에서 침을 뱉는다.''' [[군주]]의 면전에 신하가 감히 침을 뱉는 것은 엄청난 불경죄로써 무례의 극치였지만 군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 사로잡은 적의 장수들을 어찌 고작 [[여인]]의 말을 듣고 풀어줄 수 있냐는 선진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진양공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곧바로 [[양처보]]에게 추격을 명했지만 [[황하]]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배를 타고 건너는 중이었다. 이후 적나라에서 진나라를 치자 선진은 그들과 교전을 벌였는데, 자신이 없더라도 승리가 확실할만큼 승기를 잡자 혼자서 [[병거]]를 끌고 적진으로 돌격하여 무쌍을 찍었지만 결국 힘이 다해 죽었다.[* [[진양공]]의 얼굴에 침을 뱉은 무례한 짓을 하였기에 그것에 대한 대가라면서 전장에 뛰어들어 죽은 것이다.] 죽으러 가기 전 남긴 유서에서 아들 [[선저거]](先且居)를 중군의 대장으로 [[천거]]했고[* 자신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대장 자리를 이어받을만한 능력이 있어서였다.], 진양공은 바로 선저거를 대장으로 임명했다.[* 앞서 선진이 죽고나서 시신을 살펴보니 [[눈 뜬 채로 죽음|죽은 선진이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뜨고 있어 적들이 이에 겁을 먹고는 선진의 시신을 진군에 돌려주었다. 그리고 진양공이 선저거에 대장의 인수를 넘겨주자 그제서야 선진의 눈이 감겼다고 한다.]]][* 진양공이야 침 뱉은 일을 용서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진양공만큼 관대할 수는 없어 후일 다시 불경죄가 거론되어 아들과 후손들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는데 선진 본인이 목숨을 바쳐 싸우다 죽음으로써 이를 막았다고 볼 수도 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선진, version=23)] [[분류:춘추전국시대/인물]][[분류:기원전 62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