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서두성(徐斗成) || || 생몰 ||? ~ [[1908년]] [[6월 13일]] || || [[출생지]] ||[[경상도]] [[양산시|양산군]] || || 사망지 ||[[경상남도]] [[양산시|양산군]] 만세봉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서두성은 [[서병희]](徐炳熙)의 아들로[* 그러나 서병희의 후손들은 족보 등에 기록이 없음을 근거로 자신들의 조상이 아니라며 훈장 수령을 거부했다고 한다.[[http://www.yangsa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67618|#]] 이 때 서병희 사후 3종질인 서정근(徐定根)이 양자로 입적된 사실이 드러났다.[[http://www.ysnews.co.kr/default/article_print.htm?board_data=aWR4JTNENTM3NDk=%7C%7C&search_items=cGFydF9pZHglM0QzNDYw%7C%7C|#]] 서두성이 서병희의 아들이었다면 서두성에게 양자를 입적했어야 말이 맞는 것. 이를 토대로 지역사학계에서는 서두성을 서병희의 자식이 아닌 가까운 친척이나 휘하 의병 중 한 명으로 보고 있는 실정이다.[[http://www.yangsa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7114|#]]], 1907년 부친이 경남 양산군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가담해 양산, 산청, 함안 등지에서 활동했다. 1907년 12월 경주 산내에서 창의한 윤정의(尹政義)와 제휴했으며, 1908년 5월 함안에서 창의한 [[박동의]](朴東義)와 연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08년 6월 13일 양산군 만세봉 부근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서두성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양산시 출신 인물]][[분류:1908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