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남북조시대/인물]][[분류:509년 출생]][[분류:568년 사망]] [include(틀:진서(남조역사책))] [include(틀:남사)] ||<-2> '''상동충숙공(湘東忠肅公)[br]{{{+1 徐度 | 서도}}}''' || || '''시호''' ||충숙(忠肅) || || '''작위''' ||광덕현개국후(廣德縣開國侯) → 상동군개국공(湘東郡開國公) || || '''성''' ||서(徐) || || '''이름''' ||도(度) || || '''자''' ||효절(孝節) || || '''출생''' ||509년 ~ 568년 || || '''본관''' ||안륙현(安陸縣) || [목차] [clearfix] == 개요 == [[남북조시대]] [[양(남조)|양]], [[진(남조)|진]]의 장수로 자는 효절(孝節). == 생애 == 서도는 안륙현(安陸縣) 출신이지만 집안이 대대로 건강(建康)에 살았다. 서도는 젊은 시절부터 호방했고 사소한 것에 구애되지 않았다. 장성한 뒤에는 용모가 특이했고 술과 노름을 좋아했으며, 항상 하인들을 시켜서 도축을 하거나 술을 팔게 했다. 536년, 소개가 시흥군(始興郡)으로 부임할 때 서도를 따라 시흥군에 부임할 때 서도는 소개를 따랐고 사졸들을 거느려 산악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을 토벌하여 용맹함으로 알려졌다. 이후 서도는 교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분(李賁)을 토벌할 때 종군했다. 이때 서도는 훗날 남진의 초대 황제가 되는 진패선과 만났다. 진패선은 서도를 융숭하게 대접했으며, 서도는 진패선의 휘하로 들어갔다. 548년, [[후경]]의 반란으로 양나라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서도는 진패선의 참모가 되어 진패선이 채로양(蔡路養)과 이천사(李遷仕)를 토벌할 때 기여하였으며, 진패선의 휘하에서 전공을 세웠다. 백모만(白茅灣)에 이르러 서도는 [[효원제]]로부터 영삭장군(寧朔將軍), 합주자사(合州刺史)로 제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