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프랑스의 화학자]] [[분류:프랑스의 남성 정치인]][[분류:1756년 출생]][[분류:1832년 사망]][[분류:오트가론 출신 인물]] ||||<:>[[파일:Jean-Antoine_Chaptal_(1756-1832),_comte_de_Chanteloup.jpg|width=100%]]|| || '''이름''' ||<:>장앙투안 샵탈(Jean-Antoine Chaptal)|| ||<:>'''출생'''||<:>[[1756년]] 6월 5일, 제보덩|| ||<:>'''사망'''||<:>[[1832년]] 7월 29일 (향년 76세), 파리|| [목차] [clearfix] == 개요 == 장앙투안 샵탈은 18세기 프랑스 정치인 겸 화학자다. 나폴레옹의 내무부 장관으로 유명하다. == 생애 == 프랑스 남부 제보덩의 부르주아 대영주 집에서 태어났다. 몽펠리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파리에서 화학을 전공한다. 1780년에 몽펠리에 모교로 돌아와서 화학 교수가 된다. 와인의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염산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샵탈리자시옹(프: chaptalisation)이란 방법을 고안해낸다. 샵탈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만큼 비즈니스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풍부한 화학 지식을 바탕으로 화학 제품을 유럽 전역에 수출하는 회사를 설립하고, [[루이 16세]]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는다.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의 지지자였으나 정치적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1793년에 [[국가공안위원회]]에 의해 강제로 화약 감독관으로 임명된다. 1801년에 [[나폴레옹]]은 샵탈을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한다. 뛰어난 수완과 과학적 지식으로 샵탈은 [[프랑스 혁명]] 때문에 휘청이던 프랑스의 경제를 재건하는데 일조한다. 의학을 공부한 탓에 의료계에도 가까웠던 샵탈은 1804년에 병원과 조산부 교육원을 설립한다. 1804년 8월 8일에 샵탈은 학술활동에 열중하기 위해 정치에서 은퇴하고 [* 실질적인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나폴레옹이 1804년 5월에 스스로 황제라 칭한 것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1813년에 입법부 수장으로 임명되고, 1818년에는 [[루이 18세]] 치하의 상원의원으로 임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