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suddin Ilyas Shah [[벵골어]]: শামসুদ্দীন ইলিয়াস শাহ [[페르시아어]]: شمس الدین الیاس شاه [목차] == 개요 == 224년간 유지했던 [[벵골 술탄국]]을 세운 첫 [[샤]] 또는 [[술탄]]. 1342년부터 1357년까지 다스렸으며 벵골 술탄국 중 첫 왕조인 일야스 샤히 왕조의 기반을 다지기도 했었다. == 생애 == 그는 페르시아에 동화된 [[수니파]] 튀르크계 인물 출신으로 그의 고향이 [[시스탄]] 일대로 추정되며[* 물론 확실하지 않지만 대체로 학자들은 그의 가문이 시스탄 일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가족들은 1227년 [[델리 술탄국]]으로 이주하여 자기르(중세 인도의 봉건 지위)를 하사받았다. 당시 [[벵골]] 지역은 동, 서, 북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북벵골 일대에 정착한 일야스는 북벵골 총독에 충성을 바치며 일하고 있었다. 이후 1342년 총독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찬탈했으며, 이후 이곳의 새로운 정치인이 된 그는 같은 해에 판두아[* [[서벵골]]에 있으며, 도시 유적은 [[방글라데시]]와 가깝다.] 를 수도로 하고 벵골 술탄국을 세웠다. 1346년 벵골을 통일했으며, 델리 술탄국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했고 원정을 하여 [[비하르]], [[오디샤]], [[네팔]] 등 주변의 여러 지역들 및 국가를 점령했거나 침략해 전리품을 얻었다. 그래서 벵골을 비롯한 [[북인도]] 동북부 일대까지 영토를 넓혔다. 위협을 느낀 델리 술탄국은 벵골 술탄국과 전쟁을 했으나 벵골을 점령하는데 실패했고 1354년 평화 협정을 맺었다. 그는 전쟁 뿐 아니라 북인도의 이주민 및 아랍인, 페르시아인, 에티오피아인, 튀르크인 등 외국인들도 받아들였다. 그 외 종교, 신분, 민족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정치를 펼쳤다. 그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는데, 그 예로 [[피루즈 샤 투글루크]]는 판두아를 잠시 점령했을 때 이곳의 주민들에게 땅을 나눠줘서 설득을 하려했지만 백성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357년 그가 사망한 후 하지푸르에 묻혔다. == 여담 == 정복활동을 잘하다 보니 스스로 그의 별명이 "인도 반도에서의 제2의 [[알렉산드로스]]"로 비유되기도 했었다. 일부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가 벵골로 갈 무렵 이슬람으로 개종한 벵골 브라만 출신의 과부와 결혼을 하여 시칸다르[* 훗날 벵골 술탄국(제 1왕조인 일야스 샤히 왕조)의 2대 왕이 된다.]를 비롯한 아들 두 명과 여러 딸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처음에는 브라만 상류층에 의해 종교적 이유로 과부는 재혼이 불가능하다며 반대했지만 이를 딱하게 여긴 일야스는 이슬람식 결혼을 진행했다. 다만 이는 후대에 지어지거나 부분적 과장이 섞인 이야기라고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등 야사로 취급하며, 실제로는 평범한 힌두교도 여성과 전통적으로 결혼했다고 대부분 학자들이 본다. [[분류:방글라데시의 인물]][[분류:1357년 사망]][[분류:남아시아의 군주]][[분류:이란계 방글라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