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버제스(Samuel Burgess). [목차] == 소개 == [[뉴잉글랜드]] 출신의 해적. 950만 달러를 털어 포브스 선정 해적 11위에 올랐다. == 생애 == 원래는 [[윌리엄 키드]]의 부하였는데 1693년에 에드워드 코티스가 선장이 되자 해적을 그만두고 뉴욕에 정착하여 프레드릭 필립스라는 뉴욕 최고의 부자 상인과 동업을 했다. 그런데 그 동업이란 것이 [[마다가스카르]]의 [[해적]]들에게 [[대포]]와 보급품을 갖다 팔고 그 대신 [[황금]]과 [[노예]]를 대가로 받아오는 무역업이었다. 몇 년 동안 이 장사는 잘 되었다. 1699년 9월 경에 마가렛 호의 부함장이 되었지만 세인트 메리의 섬에서 영국 선박에게 적발당하였는데 다행히 그 행위에 대해서 일부는 사면 조치 되었고 통해을 허가받은 뒤에 돌아갈 수 있게 되어 남아프리카 케이프 타운으로 항해하여 12월에 도착했다. 12월, 버제스가 지휘하던 배가 [[동인도회사]]의 배에 그만 나포되었으며 선장은 배에 실린 [[노예]]와 보물을 압수한 후 그를 [[봄베이]]([[뭄바이]])로 압송했고 갇혀 있던 버지스는 1701년에 해적 혐의로 런던으로 이송, 기소되었다. 재판정에 선 버제스는 로버트 컬리포드의 증언으로 유죄가 입증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한 후 자비를 간청했는데 그 결과 [[사략선]]을 몰고 [[태평양]]으로 가도록 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재생의 기회를 얻은 버제스는 술과 노예를 교역하기 위해 [[넵튠]] 호를 타고 마다가스카르로 갔지만 폭풍으로 배를 잃고 [[존 할제]]에게 구조되었으며 할제가 죽자 해적단 안에서 차지했던 지위를 잃고 노예와 교환되어 마다가스카르에 남겨지고 말았다. 데이비드 윌리엄스와 함께 노예를 관리하던 일에 종사하던 도중에 사망하였는데 교역에 대해 논쟁하던 도중에 누군가에게 독살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분류:뉴욕 시 출신 인물]][[분류:인도양의 해적]][[분류:17세기 해적]][[분류:18세기 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