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중국 관련 문서)] [include(틀:중국공산당의 파벌)] [목차] == 개요 == '''상하이방'''([ruby(上海,ruby=shànghăi)][ruby(帮,ruby=bāng)])은 [[중국공산당]] 내 하나의 비정식 계파(派系)로 [[장쩌민]](江泽民) 집권 시 대부분 [[상하이시]](上海市) 행정당국의 간부직으로부터 중앙정부(中央政府) 또는 공산당의 고위층으로 승진한 계파적 인상이 선명한 인사들의 그룹이다. == 구성 == ||<-3> 상하이방의 주요 [[인물]] || || [[이름]] || [[영어]] 이름 || [[중국어]] 이름([[한자]]) || ||'''[[장쩌민]]''' ||Jiang Zemin||江泽民|| ||'''[[주룽지]]''' ||Zhu Rongji ||朱镕基 || ||류치[* [[http://ko.wikipedia.org/wiki/류치]]] ||Liu Qi||刘琪|| ||리창춘 ||Li Changchun||李长春|| ||우관정[* [[http://ko.wikipedia.org/wiki/우관정]]] ||Wu Guanzheng||吴官正|| ||[[우방궈]]||Wu Bangguo||吴邦国|| ||자칭린[* [[http://ko.wikipedia.org/wiki/자칭린]]] ||Jia Qinglin||贾庆林|| ||[[장더장]][* [[http://ko.wikipedia.org/wiki/장더장]]] ||Zhang Dejiang||张德江|| ||[[저우융캉]][* [[http://en.wikipedia.org/wiki/Zhou_Yongkang]]] ||Zhou Yongkang||周永康|| ||쩡칭훙[* [[http://ko.wikipedia.org/wiki/쩡칭훙]]] ||Zeng Qinghong||曾庆红|| ||쩡페이옌[* [[http://en.wikipedia.org/wiki/Zeng_Peiyan]]] ||Zeng Peiyan||曾培炎|| ||천량위[* [[http://en.wikipedia.org/wiki/Chen_Liangyu]]]||Chen Liangyu||陈良宇|| ||천즈리[* [[http://en.wikipedia.org/wiki/Chen_Zhili]]] ||Chen Zhili||陈至立|| ||화젠민[* [[http://en.wikipedia.org/wiki/Hua_Jianmin]]] ||Hua Jianmin||华建敏|| ||후이량위[* [[http://ko.wikipedia.org/후이량위]]] ||Hui Liangyu||回良玉|| 上海帮ㆍ上海幫, ([[영어]])Shanghai clique.[* 참고로 영어명 기준 Shanghai Gang이라는 모양 빠지는 이명도 있다.] 보스는 [[장쩌민]]이며 [[http://ko.wikipedia.org/wiki/쩡칭훙|쩡칭훙]]이 사실상 그의 [[후계자]]다. 상하이방의 시작은 1989년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태]] 당시 [[장쩌민]] [[상하이]]시 당위서기가 일약 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 주석에 오르면서부터다. 장쩌민은 중국 [[최대도시]] 상하이를 책임진 시당서기로 [[베이징]]과는 달리 시위를 평화적으로 진정시키고 지역 [[언론]]과 당 [[조직]]을 확고하게 통제하면서 당내 보수파들의 눈에 들었다. 급진적 정치 개혁을 주장하던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을 잇따라 숙청한 [[덩샤오핑]]은 보수파와의 협의를 통해서 장쩌민 총서기-[[리펑]] 총리-[[주룽지]] 부총리 트로이카 체제로 당 지도부를 개편한다. 장쩌민은 중앙 정계에 별다른 기반이 없었다. 그런 그가 당 [[총서기]]에 오르자 자신이 오래 근무했던 상하이 지역 인사들을 대거 중앙에 발탁해서 일약 상하이방을 형성한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보수파의 압력에서 벗어나 개혁개방 쪽으로 확실히 노선을 굳힌 장쩌민은 자신의 지역 기반인 상하이를 포함한 연안지대에 막대한 투자를 통해서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끌어냈다. 이 실적을 근거로 상하이 지역 인사들을 계속 중앙정부에 발탁해서 세력을 불려나갔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장쩌민과 상하이방 집권 10년 동안 중국은 [[G2(외교)|G2]]의 반열에까지 오른다. 이들의 기반은 [[상하이]]의 엄청난 경제력과 경제 개발의 노하우였다. 현재 세계 최고의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상하이는 이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진타오]]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있던 시대만 해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는 상하이방(上海幫)이 많은 상위(常委) 직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상하이방(上海幫)에 소속된 주요 인사로는 [[우방궈]](吳邦國, 오방국), 자칭린(贾庆林, 가경림), 쩡칭훙(曾庆红, 증경홍), 황쥐(黃菊, 황국, 1938.9.28.~2007.6.2.), 리창춘(李長春, 이장춘), 우관정(吳官正, 오관정)이며 기타 인사로 류치(刘淇, 유기), 쩡페이옌(曾培炎, 증배염), 장더장(张德江, 장덕강), 저우융캉(周永康, 주영강), 류윈산(刘云山, 유운산), 후이량위(回良玉, 회랑옥), 화젠민(华建敏, 화건민), 천즈리(陈至立, 진지립), 천량위(陈良宇, 진량우)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문제는 장쩌민 한 명을 수장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는 점이다. 장쩌민이 중국 국가주석에서 물러나자 순식간에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장쩌민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안 내놓고 [[후진타오]]로부터 상하이방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보장받고 나서야 물러날 정도였다. 즉 장쩌민의 지도력에 크게 의지하는 위태로운 세력이다. 장쩌민(江澤民)의 퇴임에 따라 상하이방(上海幫)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하여 [[2006년]] [[9월 24일]] 상하이방의 주요 일원인 천량위(陈良宇)가 부패 문제로 물러났고 상하이방의 핵심인사인 황쥐(黃菊)가 [[2007년]] [[6월]] 사망하였으며 17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쩡칭훙(曾庆红), 우관정(吳官正)도 탈락했다. 결국 중국 공산당 내부와 정계에 [[요직]]을 점하고 있는 상하이방의 남은 인원들이 [[태자당]]과 마지못해 손을 잡고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을 견제하기로 하였다. [[2013년]] [[전국인민대표대회]]때 마지막 입김을 불어넣은 이후 빠르든 늦든 영향력을 상실할 것이다. 이들의 특이사항으로는 장쩌민 한 명의 개인 [[사단]]이었다는 점 외에 철저한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를 꼽는다. 공청단보다도 더욱 능력을 중요시했으며, 이 때문에 [[세대교체]]에 실패하였다. 이들은 젊은 유망주보다는 검증된 중년층을 더 중용하다 보니 젊은 유망주가 파고들 틈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공산당 내부에서도 상하이방하면 노인들이 많다고 여긴다. 실제로 상하이방의 중요 인물들은 대다수가 1930~40년대 출생이고, 가장 젊은 층이 [[1950년대]] 초반에 출생이며 [[2013년]]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앞두고 태자당과 손을 잡을 것이란 분석이 있었다. 실제로 손을 잡고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을 밀어줘서 중국의 지도자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이들도 더 젊은 [[세대]]들에게 바통을 넘겨주지 못 하면 길어봐야 30년 후에는 끝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때면 상하이방이 다시 [[권력]]을 잡더라도 10년을 유지해줄 인재들이 없다. ||[youtube(ij_VUX9-1dA)]|| [[2014년]] 12월 5일, 상하이방의 [[저우융캉]]이 체포되었다. 공산당의 당적도 박탈되었다.[[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41206000072|#]] [[2015년]] 8월 24일, 장쩌민이 체포되었다고 [[파룬궁]] [[http://www.epochtimes.com/b5/15/8/23/n4510676.htm|계열의 언론인 대기원시보가 보도했으나]] [[전승절(중국)]] 행사에 장쩌민이 나와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시진핑의 반부패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세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태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8925453|#]] 2016년 10월 후반 상하이방의 수장인 장쩌민이 가지고 있던 핵심 지위마저도 시진핑이 가져가 버리는 등 그야말로 시진핑에게 영혼까지 털렸다. 2017년 현재 중국 공산당의 주요 파벌 중에서 [[http://www.soundofhope.kr/bbs/board_view.php?bbs_code=bbsIdx2&num=28856|본진도 시진핑에게 신나게 털리는 등]] 패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약 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후진타오를 반쪽짜리 주석으로 만들어버리는 등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던 옛모습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처절하게 몰락했다고 봐도 된다. [[https://kr-mb.theepochtimes.com/中-장쩌민파-지방세력의-몰락-2_400365.html|참고기사]] 거물은 아니었던 시진핑을 밀어주고 [[후진타오]]처럼 부려먹을 예정이었으나 야심가였던 시진핑이 이를 간파하고 역으로 털어버려 결국 호랑이 새끼를 키운 꼴이 되었다. 사실 [[후진타오]]와 [[시진핑]] 또한 집권 이전에는 상하이방으로 분류되기도 하던 인물들이었다. 둘 다 장쩌민이 역임했던, 상하이방 인맥들만이 역임 가능한 상하이시 당 서기 자리를 역임했다. 상하이방의 본진인 상하이시 당 서기 자리는 장쩌민과 상하이방의 득세 이후로 국가주석, 총서기로 진출하기위한 필수 코스였던 셈이다. 2022년 11월 30일, 보스인 장쩌민이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나마 미세하게 남아있던 구심력마저 상실하였다. 다만 경쟁관계였던 [[공청단]]파가 20차 당대회에서 [[리커창]], [[왕양]]이 상무위원에서 제외되고 시진핑의 후계자 후보중 한 명이었던 [[후춘화]]가 승진은 커녕 정치국에서 밀려나 중앙위원으로 강등되며 완전히 몰락한 것과는 달리, 시진핑이 후계자 등극 전 상하이 서기 자리에 있었을 때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상하이에서 오랜 기간 일했던 [[딩쉐샹]]과 [[한정]]이 최고 지도부에 잔존하면서, 구심점은 사라졌어도 일부가 시진핑파에 편입되어 명맥은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 [[코로나 19|코로나 19 바이러스 유출설]] == 미국으로 도피해 중국의 비리를 폭로하고 있는 부동산 재벌 궈원구이(郭文貴)가 2020년 3월 6일,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브 배넌]](67)이 진행하는 유튜브 생방송에 출연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위적으로 유출됐다.”라고 주장했다. “홍콩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을 죽이기 위해 중국 공산당 내 소수 고위층이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https://kr.theepochtimes.com/%EC%8B%9C%EC%A7%84%ED%95%91-%EC%83%9D%EB%AC%BC%EA%B8%B0%EC%88%A0-%EC%98%A4%EB%82%A8%EC%9A%A9-%EC%9D%B8%EC%A0%95-%EB%B0%9C%EC%96%B8-%EB%AC%B4%EC%8A%A8-%EC%9D%98%EB%AF%B8-%EB%8B%B4_520467.html|#]] == 관련 문서 == * [[중국 공산당]] * [[중국/정치]] * [[중국공산당의 파벌]] *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 [[태자당]]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중국공산당의 파벌, version=136, paragraph=2.3)][[분류:중국의 정치]][[분류: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