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명나라의 개국공신)] ||<-2> '''[[명나라|{{{#800000 명나라 개국공신}}}]][br]개평충무왕(開平忠武王)[br]{{{+1 상우춘}}}[br]常遇春'''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ossweb-img.qq.com/1234151026_42012844_21902_sPhoto0.jpg|width=100%]]}}} || ||<|2> '''출생''' ||[[1330년]]([[문종(원)|천력]] 3/[[문종(원)|지순]] 1)|| ||호주(濠州) 회원현(懷遠縣)[br](現 [[안후이성]] [[벙부시]] 화이위안현)|| || '''사망''' ||[[1369년]] [[8월 17일]][* [[율리우스력]] [[8월 9일]].] (향년 38 ~ 39세)[br](음력 [[홍무]] 2년 7월 7일)|| || '''[[작위|{{{#800000 작위}}}]]''' ||악국공(鄂國公)[br][[추봉]] 개평왕(開平王)|| || '''[[시호|{{{#800000 시호}}}]]''' ||충무(忠武)|| || '''성씨''' ||상(常)|| || '''이름''' ||우춘(遇春)|| || '''[[자(이름)|{{{#800000 자}}}]]''' ||백인(伯仁)|| [목차] [clearfix] == 개요 == 상우춘(常遇春)은 [[명나라]]의 [[군인]], [[장군]]으로 명나라의 개국공신이다. == 생애 == [[원나라]] 말 혼란기인 [[1352년]]([[혜종(원)|지정]] 12) 도적떼가 되었다가, [[1355년]](지정 15) [[주원장]]에게 귀순하였다. [[1356년]](지정 16) 관군총관(管軍總管)이 되었다가, [[1357년]](지정 17) 통군대원수(統軍大元帥)로 승진했다. [[1358년]](지정 18) 도독마보수군대원수(都督馬步水軍大元帥)가 되었다. [[1359년]](지정 19) 동첨서추밀원사(同僉書樞密院事)가 되었다가 첨서추밀원사(僉書樞密院事)로 승진했다. [[1361년]](지정 21)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다. [[1364년]](지정 24) 평장정사(平章政事)가 되었다. [[1367년]](지정 27) 악국공(鄂國公)으로 봉해지고 [[북벌]]에 나섰다. [[1368년]]([[홍무]] 1) [[베이징시|대도]]를 함락했다. [[1369년]](홍무 2) 북벌에서 돌아오던 중 죽고 개평왕(開平王)이 추봉(追封)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다. 용맹하고 결단력이 높은 장수로 평가된다. 군대에서의 지위는 [[서달]] 바로 다음으로 주원장 군벌 초기에 서달과 [[탕화]] 등이 따로 지휘부를 꾸려 활동하게 되자 대신 주원장의 직속 지휘관이 되었다. 이후 서달을 따라서도 자주 종군하였으며 특히 북벌에서 크게 활약했다. [[태원]]에서 [[코케 테무르]]를 무찌르는데 공을 세웠고, 전녕(全寧)에서는 야속(也速)을 토벌하였다. 10만 명을 거느리면 천하를 [[종횡무진]]으로 누빌 수 있다 하여 상십만(常十萬)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원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개선하던 도중 유하천(柳河川)에서 원인불명의 질병으로 급사했다. == 자녀 == [[1370년]](홍무 3) 개국공신 논공행상에서 맏아들 상무(常茂)가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아 정국공(鄭國公)으로 봉해졌다. [[1371년]](홍무 4) 맏딸이 황태자 [[주표]]의 [[태자비]]가 되었다. [[1387년]](홍무 20) 상무가 [[나하추]] 정벌 때 군법을 어겨 작위가 박탈되고 유배되었으므로 [[1388년]](홍무 21) 둘째 아들 상승(常升)이 아버지의 작위를 개국공(開國公)으로 고쳐 이어받았다. == 대중매체 == === [[의천도룡기]]의 상우춘 === [[의천도룡기]]에서는 [[장무기]]가 어릴 때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명교]]의 신도로 거목기(巨木旗) 소속이다. 주자왕(周子王)의 반란에 참가했다가 주자왕이 원나라 군대에 살해당하자 그 아들을 데리고 도망친다. 몽골군과 무공이 뛰어난 라마승들에게 쫓겨 절심장(截心掌)을 맞고 죽을 뻔했으나 타고난 강골 덕분에 살아남고 [[장삼봉]]에게 구출된다. 이때 자신이 탄 배의 뱃사공이 원나라 병사들이 쏜 화살에 맞아 죽게 되면서 뱃사공의 딸 [[주지약]]을 잠깐 챙기게 되고 이 인연으로 뒷날 주지약이 혼인할 때 신부 측 혼주(婚主)가 된다. 그리고 본인도 부상당한 몸으로 [[장무기]]를 접곡의선 [[호청우]]가 있는 호접곡으로 데려간다. 호청우에게 한독에 시달리는 장무기를 치료해 줄 것을 부탁하나 호청우가 명교 사람이 아니면 치료하지 않겠다고 하자 장무기를 치료하기 전까진 자신도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고집부린다. 이후 증세가 심각해지자 보다 못한 장무기가 어깨 너머로 배운 의술로 약을 제조해 치료하나 과잉처방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원래 80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강골임에도 수명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말았다고 호청우가 말해준다. 장무기는 좀 더 의술을 배워 꼭 다시 원래 수명으로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상우춘과 헤어졌다가 장무기가 명교 교주가 된 이후 호접곡에서 재회한다. 장무기는 꼭 자신이 처방한 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하라고 했지만 내심 대단치 않게 생각하고 복용을 게을리한다.[* 설마 40세에 죽겠느냐고 생각한 게 아니라 대장부답게 살 수만 있다면 굳이 수명에 연연치 않겠다 생각한 것이 크다.] 결국 호청우가 예견한 대로 40세에 병으로 급사한다. == 둘러보기 == [include(틀:명사)] [[분류:1330년 출생]][[분류:1369년 사망]][[분류:벙부시 출신 인물]][[분류:명나라 개국공신]][[분류:명나라의 추존 왕]][[분류:역대제왕묘 배향자]][[분류:의천도룡기의 등장인물]][[분류:중국의 의문사한 인물]][[분류:중국의 객사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