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동음이의어]][[분류:한자어]][[분류:중국의 문화재]][[분류:축약어]] [목차] == 개요 == 동음이의어 삼대 목록을 정리한 문서. 모두 숫자 [[3]]과 관련되며 소설 [[삼대(소설)|삼대]], [[삼육대학교]]를 제외하면 '3대'라고도 적는다. '3대'라는 표기는 '[[세대(동음이의어)|세 대]]'라고도 읽을 수 있다. 수 분류사 '대'는 [[순우리말]] 수사를 쓰기 때문이다. 가령 '자동차 3대'는 '자동차 세 대'로 읽는다. 종종 '[[석]] 대'라고도 한다. 다만 '세 대'로 읽는 이 '3대'는 개별 단어로서의 쓰임이 없다. == 한자어 == === 三代 === 아버지-아들-손자의 세 대를 뜻하는 말. 삼세(三世)라고도 한다. 일반적인 [[핵가족]]은 부모-자식의 2대가 같이 사는 것이 보통이고, 3대가 같이 사는 것은 [[대가족]]으로 본다. [[근대]] 이전에는 이주 노동이 흔치 않아 (주로 남자 쪽 집안에) 3대 이상이 같이 사는 형태의 대가족이 일반적이었으나 현대에는 [[핵가족]] 혹은 [[독신]]/[[딩크족]]이 대부분이다. 3세대 모두 [[형제]] 없이 [[남자]]만 한 명씩 있는 경우 '삼대 [[독자]](獨子)'라고 한다. 먼 옛날 3대 독자는 군면제 사유였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세습을 '삼대 [[세습]]'이라고 종종 언급한다. ==== 소설 [[삼대(소설)|삼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삼대(소설))] === [[삼대|三大]]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삼대)] 3가지 큰 것. 2020년대 한국에선 종종 [[3대 운동]]의 의미로 '3대 (숫자)' 식으로 쓰곤 한다. === 三臺 === [[파일:금호대.jpg]] 업성 삼대 중 유일하게 석축이 남아있는 금봉대 (금호대) [[파일:업성 터널.jpg]] 금봉대 옆의 전군동 유적 [[위진남북조]]기 [[하북]]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던 [[업성]]에 세워진 3개의 대(臺). 210-14년에 걸쳐 [[조조]]가 세워 업성의 서북쪽 방어 거점이자 일종의 [[시타델]]로 삼았다. 전통적으로 삼대는 황제가 세울 수 있는 것이었고, 따라서 조조가 삼대를 세운 것은 황위를 향한 그의 야심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조조의 사치의 상징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무기고이자 거대한 방어 시설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금봉대 바로 아래에는 조조가 비상시의 군대 이동을 위해 만든 지하 터널인 전군동이 남아있다.[* 이는 조조의 고향인 [[초현]]에도 남아있다. 원소의 업이 자신에게 함락되었으니 자신도 언제든 뺏길 수 있다 여겨 방어력 보강에 많은 관심을 쏟은 것이다.] * 동작대 - 210년 건립. 관성대로도 불림. * 빙정대 - 213년 동작대 북쪽에 건립 * 금호대 - 214년 동작대 남쪽에건립 조조가 세운 삼대는 307년 [[팔왕의 난]] 당시 파괴되었고, 335년 [[후조]]의 [[석호(후조)|석호]]가 업으로 천도하며 과거 삼대를 재건하였다. 이때 조위의 삼대보다 더 화려하게 건설하였고, 기녀들을 불러 사치를 벌였다. 후대에 동작대가 사치의 상징이 된 것은 석호 시절의 기록이 와전된 결과이다. == [[삼육대학교]]의 준말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삼육대학교)] 삼육은 '지/덕/체'를 뜻한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3대, version=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