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통가의 왕비]] [[분류:1811년 출생]] [[분류:1889년 사망]] [[파일:Queen_Charlotte,_Tongataboo,_Friendly_Islands,_during_the_Challenger_Voyage.jpg|width=50%]] Sālote Lupepauʻu 살로테 루페파우는 [[통가]]의 [[왕비]]이다. 이름은 영어 이름 [[샬럿#s-1]]의 [[통가어]] 음차이다. 살로테는 1811년에 태어났다. 귀족 집안 태생이다. 어릴 적에 투이 통가(Tuʻi Tonga)[* 전설상의 왕 [[아호에이투]]로부터 기원하였다고 전해지는 통가의 왕위이다. 사실상 부족장의 직위에 가까웠고, 통가가 근대화되는 과정 중에 이런 직위들이 귀족 작위가 되었다.] 라우필리통가(Laufilitonga, 1797-1865)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살로테는 다른 부족장이었던 타우파하우(Tāufaʻāhau)와 정분이 났다. 벨라타 전투(Battle of Velata)에서 타우파하우는 투이 통가 라우필리통가를 패배시키고, 느슨한 부족장들의 연맹체였던 통가를 근대적으로 통일시키고 왕위에 올라 [[조지 투포우 1세|시아오시 투포우 1세]]가 되었다. 이후 살로테는 시아오시의 아내가 되었고 [[투포우 왕조]]의 첫 왕비가 되었다. 전 남편이었던 라우필리통가는 1865년에 죽었고, 투이 통가를 조카에게 계승하였다. 조카였던 파타헤이 투이 펠레하케(Fatafehi Tu'i Pelehake)는 투이 통가 직위를 반납하였다. 그럴 법도 한 게, 귀족들끼리 워낙 혼맥이 얽혀 있어서, 투이 펠레하케는 당시 국왕인 투포우 1세의 사위이기도 했다. 살로테 본인에게는 전남편의 조카가 자신의 사위였던 것이다. 남편 시아오시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으나 모두 부모보다 먼저 죽었다. 장남인 투아키타우(Tuʻuakitau)는 1839년에 태어나 1842년에 죽었고, 차남인 부나 타키타키말로히(Vuna Takitakimālohi)는 1844년에 태어나 1862년에 죽어서 살로테의 생존 후손은 없다. [* 이후 통가에는 법적인 계승자가 없었는데, 1875년에 헌법을 도입하면서, 시아오시가 둔 사생아인 테비타 웅가(Tēvita ʻUnga, 1824-1879)를 왕세자로 삼았다. 본래 기독교 상속에 따르면 사생아의 계승권은 없으며, 현재 통가 왕실에서도 사생아의 계승 권한은 인정하지 않음에도 테비타 웅가는 예외적으로 왕세자가 되었다.] 시아오시 1세의 뒤를 이은 [[조지 투포우 2세|시아오시 투포우 2세]]는 남편인 시아오시 1세의 [[사생아]] 자식들의 후손이다. 살로테는 1889년 9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통가의 사립 여학교인 퀸 살로테 칼리지(Queen Salote College)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