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from=사뮈엘 베케트, other1=동명의 군함, rd1=사뮈엘 베케트급 원양초계함)] [include(틀: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2> '''{{{+1 사뮈엘 베케트}}}[br]Samuel Beckett'''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hrc.utexas.edu/452.jpg|width=100%]]}}} || ||<-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width=30]]''' [[노벨문학상|{{{#fff 196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 '''본명''' ||사뮈엘 바클레이 베켓[br]Samuel Barclay Beckett|| ||<|2> '''출생''' ||[[1906년]] [[4월 13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더블린]][br](現 [[아일랜드]] 더블린)|| ||<|2> '''사망''' ||[[1989년]] [[12월 22일]] (향년 83세)|| ||[[프랑스]] [[파리(프랑스)|파리]]||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아일랜드)]|| || '''직업''' ||작가|| || '''분야''' ||[[희곡]], [[소설]], [[시]]|| || '''학력'''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br]{{{-2 (현대 문학, 로망스어 / [[학사]]) (1923년 – 1927년)}}}|| || '''종교''' ||[[무종교]]([[불가지론]]) {{{-2 (불확실)}}}[* C.J. Ackerley, "[[https://www.euppublishing.com/doi/abs/10.3366/jobs.1999.9.1.4?download=true&journalCode=jobs|Samuel Beckett and the Bible: A Guide]]", euppublishing.com]|| || '''서명''' ||[[파일:Samuel_Beckett_signature.png|width=200&bgcolor=#fff]]|| [목차] [clearfix] == 개요 == 20세기 [[부조리극]]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실험 문학의 대표 소설가, 그리고 시인이다. 본명은 새뮤얼 바클레이 베켓(Samuel Barclay Beckett)으로 사뮈엘 베케트라는 이름은 본명을 프랑스어로 읽은 것이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으며, 근현대 문학의 대표적인 거장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사이)/(pause) 를 처음 사용한 극작가이기도 하다. == 생애 == [[1906년]]에 [[아일랜드]]의 [[더블린]][* 당시에는 [[영국]]의 일부였다.]에서 태어났고,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프랑스 문학과 이탈리아 문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로 가서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졸업한 직후인 1920년대 후반, 그는 모교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영어 강사로 취직해 활동했다. 그때, 그는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던 [[제임스 조이스]]의 영향을 받아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에 관한 비평문을 첫 공식적인 글로 발표했고, 1930년에는 자신의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이듬해 1931년에는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냈다. 이후 그는 [[아일랜드]]에 귀국하고나서 자신이 다녔던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프랑스어]] 강사로 활동하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 출판은 1992년에 이루어졌다.]을 쓰고, 1934년 첫 단편소설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을, 1935년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을,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발판을 다졌다. 프랑스로 옮겨 정착한 것은 1937년의 일로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아일랜드인로서는 드물게 프랑스 [[레지스탕스]]로서 전쟁을 치루고[* 이에 대해 본인은 [[보이스카우트]]나 다름없었다고 일축했다.],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소설 3부작인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를 발표해서 화제를 모았다. 그 사이 1952년에는 그 유명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발표해 문학계에서 큰 명성을 얻게 된다. 1961년에는 구두점을 전혀 넣지 않은 산문 <어떤 식으로 그것이>를 발표했고, 말년에는 어둠 속에서 입술만이 강조되어 보이는 희곡 <내가 아니다>를 집필했으며, 1969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후 [[아일랜드]]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프랑스]]에서 살다가 1989년에 [[파리(프랑스)|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 대표 작품 == === 희곡 === *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 (1952) * 승부의 종말(Fin de Partie / Endgame)[* 영제 도 베케트 본인이 붙인 제목이다. 불어로 워낙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는 partie 탓에 제목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광범위해지자, 체스 용어인 [[엔드 게임]](경기 종반)을 통해 의미를 좁혀 보려 한 듯하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는 <승부의 종말>, <승부의 끝>, <엔드게임> 정도로 번역 출간, 공연되고 있다.] (1957) * 오, 행복한 날들(Happy Days) (1963) === 소설 === * 발길질보다 따끔함(More Pricks Than Kicks) (1934) * 머피(Murphy) (1938) * 몰로이(Molloy) (1951) * 말론 죽다(Malone meurt) (1951) * 이름 붙일 수 없는 자(L'innommable) (1953) * 그게 어떤지(Comment c'est) (1964) *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 (Dream of Fair to Middling Women) (1992) === 시집 === * 호로스코프(Whoroscope) (1930) *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Echo's Bones and other Precipitates) (1935) * 시들(Poèmes) (1968) === 비평 === * 프루스트(Proust) (1930) * 세계와 바지(Le monde et le pantalon) (1989) == 여담 == * 프랑스에서 살 때 어린 [[앙드레 더 자이언트]]를 통학길까지 태워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만 증언들을 확인해보면 앙드레만 태워줬던건 아니고, 평소에도 통학하는 마을 아이들을 태워줬다고. [[https://www.snopes.com/fact-check/andre-the-giant-samuel-beckett/|출처]]. * 말년에는 독일의 지원을 업고 텔레비전 예술희곡들을 다수 시도했다. 이에 대해 [[질 들뢰즈]]가 '소진된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논평한 것이 또 유명하다. 단순히 '피로한' 인간이라는, 에너지가 없는 인간이 아니라 더 이상 창조해낼 가능성이 사라진 '소진된' 인간을 다루기 위해 그가 언어에 대해 그 기초라고 주장한 랑그의 개념들이 다각화되어 나타난다고 주장한 독특한 철학적 논평으로 잘 알려져 있다. * 개인적으로 기독교적 주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며, 죽을 때까지 단테의 신곡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애독하였다고 한다. * "도전 했는가? 실패했는가? 괜찮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라는 명언을 남긴 사람이기도 한다 * 1961년 9살 연상의 여성과 결혼했으며 결혼 당시 아내가 60대였기에 자녀는 없었다. 분류 사유는 불명이지만 영어 위키백과에는 반출생주의자로 분류되어 있다. [[분류:아일랜드 남성 작가]][[분류:프랑스 남성 작가]][[분류:복수국적자]][[분류:아일랜드의 소설가]][[분류:아일랜드의 시인]][[분류:아일랜드계 프랑스인]][[분류:아일랜드계 영국인]][[분류:프랑스로 귀화한 인물]][[분류:아일랜드의 극작가]][[분류:프랑스의 극작가]][[분류:프랑스의 소설가]][[분류:프랑스의 시인]][[분류:노벨문학상 수상자]][[분류: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출신]][[분류:파리 고등사범학교 출신]][[분류:1906년 출생]][[분류:1989년 사망]][[분류:더블린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