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로마 아우구스타)] || '''이름''' ||브라운슈바이크의 이리니[br](Irene of Brunswick)|| || '''출생''' ||[[1293년]]|| || '''사망''' ||[[1324년]] [[8월 16일]] 또는 [[8월 17일]]|| || '''아버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하인리히 1세|| || '''어머니''' ||마이센의 아녜스|| || '''남편''' ||[[안드로니코스 3세]]|| || '''자녀''' ||성명 미상의 아들|| [목차] [clearfix] == 개요 == [[동로마 제국]]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로마 황제|동로마 황제]] [[안드로니코스 3세]]의 [[황후]]. == 생애 == [[1293년]]경 [[하노버 선제후국|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하인리히 1세와 마이센의 아녜스 사이에서 출생했다. 초명은 [[아델하이트]](Adelheid)였다. 1318년 3월, 그녀는 [[동로마 제국]]의 [[공치제|공동 황제]] [[미하일 9세]]의 장남이며 역시 [[로마 황제|황제]]인 [[안드로니코스 3세]]와 결혼했고, [[정교회]] 신자가 된 뒤 이리니(Irene)로 개명했다. 두 사람은 아들을 낳았지만 유아기 때 죽었다. 이후 안드로니코스는 아내에게 관심을 끊고 여러 정부를 사귀며 방탕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1320년]], 그는 자신의 정부 한 명이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의심하고 그녀의 집 근처에 염탐꾼을 숨겨놓았다. 그러다 동생 마누일이 정부와 [[간통]]을 저질렀다고 짐작하고 마누일을 잡아다 죽여버렸다. 이 소식을 접한 [[미하일 9세]]는 마침 이 시기에 숨을 거둔 딸 안나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였다는 소식은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줬다. 결국 그는 기력이 쇠해 10월 12일 [[테살로니키]]에서 죽었다. 이에 격노한 [[안드로니코스 2세]]는 손자인 안드로니코스 3세와 의절하고 자신의 막내 아들인 콘스탄티노스를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임명했다. 이에 안드로니코스 3세는 [[1321년]] 반란을 일으키면서, 동로마 제국을 패망으로 몰고 간 [[팔레올로고스 내전]]의 서막이 올랐다. 이리니는 내전이 한창이던 [[1324년]] 8월 16일 또는 17일에 라에데스토스에서 사망했다. 안드로니코스 3세는 [[1325년]] 9월 [[사보이아의 안나]]와 재혼했다. [[분류:동로마 황후]][[분류:벨프 가문]][[분류:아우구스타(동로마)]][[분류:팔레올로고스 가문]][[분류:1293년 출생]][[분류:1324년 사망]][[분류:독일계 그리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