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손오의 승상)] [include(틀:오서)]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B0000 0%, #8B0000 20%, #8B0000 80%, #8B0000)" {{{+1 {{{#fecd21 '''{{{+1 濮陽興}}}[br]복양흥'''}}}}}}}}} || ||<:> '''[[작위|{{{#FEDC21 작위}}}]]''' ||<(> 외황후^^(外黃侯)^^ || ||<:> '''[[직위|{{{#FEDC21 최종직위}}}]]''' ||<(> [[승상]]^^(丞相)^^ 겸 시중^^(侍中)^^ 겸 청주목^^(青州牧)^^ || ||<:> '''[[성씨|{{{#FEDC21 성씨}}}]]''' ||<(> 복양^^(濮陽)^^ || ||<:> '''[[휘|{{{#FEDC21 휘}}}]]''' ||<(> 흥^^(興)^^ || ||<:> '''[[자(이름)|{{{#FEDC21 자}}}]]''' ||<(> 자원^^(子元)^^ || ||<:> '''{{{#FEDC21 아버지}}}''' ||<(> [[복양일]]^^(濮陽逸)^^ || ||<:> '''{{{#FEDC21 생몰연도}}}''' ||<(> ?년 ~ 264년 12월 8일 || ||<:> '''{{{#FEDC21 고향}}}''' ||<(> 연주^^(兗州)^^ 진류군^^(陳留郡)^^ || ||<:> '''{{{#FEDC21 승상 재임기간}}}''' ||<(><#ffffff> 262년 10월 ~ 264년 11월 || [목차] [clearfix]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삼국시대)|손오]]의 인물이며 자는 자원(子元)으로 아버지 복양일은 전란을 피해 강남으로 와서 장사태수까지 지낸 인물이다. 연주 진류군 사람. == 생애 == 어렸을 때부터 선비들 사이에서 명성이 있는 편으로 [[손권]]의 대에 상우현의 령이 되었다가 상서상조까지 승진했으며, 그 후 오관중랑장이 되어 촉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회계태수로 임명되었다. 당시에 [[제갈각]]의 정책으로 떠돌던 [[손휴]]가 단양태수 이형의 핍박으로 회계에 오게 되어 복양흥과 손휴는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258년에 손휴가 즉위하자 그 친분으로 중앙으로 들어와 태상, 위장군, 평군국사, 외황후가 되었으며, 260년에 엄밀이 단양에서 간척사업을 해 포리당을 만들 것을 건의하자 손휴가 조서를 관리들에게 상의하도록 했는데, 모두 노력을 많이 해도 이룰 수 있다는 보증이 없다고 했지만 오직 복양흥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해 많은 병사와 백성들을 모아 시공했지만 공정 비용을 헤아릴 수 없는 데다가 노역에 견디지 못한 인부들이 자살했으므로 백성들에게 엄청난 원망을 들었다. 그러나 이런 일에도 불구하고 262년에 손휴는 복양흥을 승상으로 임명하면서 옛날에 자신이 힘들 때 은혜를 입은 것을 갚는다고 [[장포(손오)|장포]]와 복양흥에게 정무를 맡겨 장포는 궁궐의 부서를 주관하고, 복양흥은 군사나 행정에 관한 일을 담당하게 되자 백성들이 실망했다.[* 보통 자신의 열전에는 나쁜 내용은 일부러 빼기 마련인데 이런 내용이 다 자신의 열전에 있을 정도면 이 인물에 대한 평가는 매우 안 좋다고 해석할 수 있다.] 263년에 촉나라가 공격받는다는 소식을 듣자 둔전하고 있는 농민 1만 명을 군사로 뽑을 것을 건의한다. 264년에 손휴는 자신의 아들 [[손만(삼국지)|손완]]을 후계자로 할 것을 부탁하면서 붕어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욱]]의 추천으로 장포와 함께 [[주부인]]에게 부탁해 [[손호]]를 황제로 즉위시켜 복양흥은 이 공으로 자신의 직위에 시중과 청주목이 더해진다. 그러나 얼마 후에 손호의 정치에 장포와 함께 실망해 만욱이 이 사실을 손호에게 알리면서 광주로 유배를 보내졌으며, 그 와중에 복양흥과 장포는 손호가 보낸 사람에게 살해된 것과 동시에 삼족이 멸족당했다. == 논찬 == >濮陽興身居宰輔,慮不經國,協張布之邪,納萬彧之說,誅夷其宣矣。 >복양흥은 재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장포의 간사함을 돕고, 만욱의 이야기를 받아들여, 그 총명함을 모두 잃어버렸다. >---- >[[진수(역사가)|진수]] == 미디어 믹스 ==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 || [[파일:external/san.nobuwiki.org/438.jpg]] || || 삼국지 11 || ||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797.jpg|width=400]] || || 삼국지 13, 14 ||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평범한 문관형. 평가가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손호]]의 폭정을 만류하다가 죽은 점 때문에 능력치 자체는 오히려 한 거에 비하면 후하게 쳐준 편. [[삼국지 10]]까지만 해도 일러스트는 전작들과 달리 홀쭉한 얼굴이었지만 [[삼국지 11]]부터 돼지같이 뚱뚱한 얼굴로 나온다. [[삼국지 12]]편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4/무력 32/지력 72/정치력 74. 병법으로는 누선, 혼란 뿐이다. 시나리오 검각전과 IF스토리 [[종회(삼국지 시리즈)|종회]]과 [[등애(삼국지 시리즈)|등애]]의 난에 관직으로 승상이 되었는데 보다시피 능력치 자체가 구리고 봉록비 또한 아까우니 관직에서 쫒아내고 그 자리에 [[육항(삼국지 시리즈)|육항]]이나 그의 아들 [[육경]] 또는 ~~[[고자라니]]~~[[심영(손오)|심영]]을 임명하는게 좋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7/무력 37/지력 70/정치력 76/매력 72에 특기는 농업, 보수, 혼란, 위압, 명사으로 총 5개다. 정치력이 76이고 농업 특기도 있으니 후방에서 내정이나 시키자. [[삼국지 13]]에서의 일러스트는 왼손으로 이마를 잡고 있는데 손호를 즉위시킨 것을 후회하여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인 것 같다.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37/32/70/72, 특기는 농업 2, 설파 1. 전수특기는 농업으로 전법은 창병도발.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37, 무력 35, 지력 70, 정치 72, 매력 62로 전작과 달리 무력이 3 상승했다. 개성은 능리, 낭비, 주의는 명리, 정책은 세출개선 Lv 3, 진형은 정란, 전법은 정란, 구축, 친애무장은 [[손휴]], [[육모]], [[장포(손오)|장포]], 혐오무장은 없다. === [[삼국전투기]] === [[손휴]]의 [[네기시 소이치|패러디에]] 맞추어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밴드)|DMC]]의 [[알렉산더 쟈기|와다 마사유키]]로 등장한다. 그리고 곧 알렉산더 쟈기님으로 변신하여 손침을 [[SALHAE]]하였다. 전투외편 6-4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서는 손휴의 심복으로 바른 듯 바르지 않은 듯 그저 평범하기만 한 인물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전투외편 6편에서 처음 등장. 장포와 더불어 손휴의 심복으로 손휴가 손침을 제거할 때도 가담했다. 손침 제거 후에는 장포와 더불어 단번에 오의 최고위에 올랐다. 전투외편 7편에서는 장포와 더불어 야욕을 갈구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둘이서 쌍으로 동오의 운명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서술됐다. 복양흥의 경우 남들이 다 반대하던 댐 건설 계획을 공명심 때문에 근거도 없이 추진했다가 제대로 말아먹기도 했다는 일화가 언급됐다. 영안 전투 편에서는 손휴가 죽으며 태자 손완을 맡기자 꼭 지켜내겠다고 했지만 장포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손완을 제위에 올리는 걸 반대하며 결국 새 황제 후보를 찾게 된다. 이후 만욱의 추천으로 손호를 제위에 올리지만 손호는 3개월도 못 가서 폭군으로 변질되었고, 이에 복양흥과 장포는 후회가 막심했는데, 이 소식이 손호의 귀에 들어가면서 결국 둘 다 삼족이 주멸됐다. [각주] [[분류:손오의 승상]][[분류:264년 사망]][[분류:살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