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후한 말 공손찬의 부하, rd1=범방)] [include(틀:후한서)] [include(틀:강하팔준)] [include(틀:팔고)] 范滂 (137년 ~ 169년)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의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맹박(孟博)으로 [[팔고]](八顧)의 한 사람이자 [[예주]] 여남군 정강현 사람. == 행적 == 후하고 순박하면서 겸손하고 검소했으며, 효렴으로 천거되었고 [[기주]]에 부임하면서 기주가 굶주린 것을 보고 뇌물을 받은 [[현령]], 현장을 해임했으며, [[광록훈]]의 [[주사]]가 되어 [[진번]]에게 인사했다가 진번이 응하지 않자 벼슬에서 물러났다. [[곽태]]가 진번에게 범방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고 충고하자 진번은 범방을 무겁게 여겼으며, [[태위]] 황경이 벽소한 [[자사(관직)|자사]], [[태수]] 중에 권세가 있는 20여 명을 적발했으며, [[상서(관직)|상서]]에서 범방을 문책하자 사정을 두고 적발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범방은 생각대로 할 수 없었고 스스로 사직했다. 여남태수 [[종자#s-3]]가 범방의 명성을 듣고 [[공조]]로 삼아 정치를 맡겼으며, 범방은 강경해 악한 것을 싫어하는 것을 원수처럼 했다. [[중상시]] 당형이 범방의 [[생질]]인 이송을 [[종자]]에게 부탁해 관리로 삼게 했다. 범방은 이송이 평소에 좋은 행실을 한 적이 없는 것을 알았는데, 그는 이송을 임명하는 문서를 끝내 보내지 않았다. 여남군 사람들은 이를 원망해 여남태수는 범방이고 종자는 허락한다고 서명할 뿐이라는 노래를 했다. 후에 황문북사옥에 갇혀 병에 걸린 사람 대신 범방이 매를 맞았으며, [[환제(후한)|환제]]는 중상시 [[왕보(후한)|왕보]]를 시켜 범방을 조사하게 했다. 범방은 왕보의 문책에도 당당히 대했고 범방이 풀려나는 날에 여남, 남양의 [[사대부]]들이 수천 명이 수레로 맞이했으며, 동향 사람인 은도, 황목 등이 오자 범방은 거절하면서 너희들과 교제하면 또 체포된다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범방이 체포될 때 곽태가 그를 변호했지만 범방은 그에게 절하지 않았다. 169년 제2차 [[당고의 금]]이 일어나면서 [[뇌수]]가 범방이 당인과 결탁했다는 무고를 했다. [[독우]] [[오도]]가 우는 것을 보고 자신을 잡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감옥에 갔으며, 현령 곽읍이 간접적으로 도망칠 것을 이야기하자 그대에게까지 죄를 받는 누를 끼치게 하겠냐고 했다.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동생인 범중박이 공양할 것이 위로하고 어머니는 [[이응(후한)|이응]], [[두밀]]과 이름을 나란히 한다면서 영광스럽다고 여겼으며, 범방은 주살되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범방, version=45)] [[분류:후한의 인물]][[분류:한나라의 관료]][[분류:137년 출생]][[분류:169년 사망]][[분류:살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