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白]][[骨]][[團]]}}} [목차] == [[자유당]]의 [[백색테러]] [[정치깡패]] 집단 == [[이승만 정부]] 시절 [[자유당]]에 의해 원외에서 조직된 정치깡패 집단. [[제2대 총선]]에서 전체 의원 중 3분의 2인 126명이 무소속일 정도로 신진 정치세력 중심으로 물갈이가 이뤄지자 간선제로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승만]] 대통령이 내각책임제 개헌을 반대하는 관제데모를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동원한 정치깡패 집단 중 하나가 백골단이었다. 당시 이 깡패집단들은 백골단 말고도 '땃벌떼'[* 땃벌은 [[함북]] 방언으로 [[땅벌]]을 의미한다. 즉, [[서북청년단]]처럼 이북계 우익 청년단임을 암시하는 이름이다. 백골단보다 더 전투적이고 드센 어감 때문인지 21세기에도 한국판 [[돌격대]], [[우국기사단]] 류의 단체를 비판할 때 가끔 언급되는 이름이기도 하다.]나 '민중자결단(民衆自決團)'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백골단을 비롯한 폭력단체들이 국회해산을 요구하면서 국회를 포위하기도 하는 등 폭력이 난무하자 이를 빌미로 이승만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일부 국회의원들이 강제로 의사당에 연행되는 등의 황당한 일이 일어난 끝에 1952년 7월 4일 심야국회에서 직선제 개헌안이 의결되었는데 이른바 [[발췌 개헌]]이다. 그러나 백골단 등의 명칭은 이승만 정부 이후 더이상 쓰이지 않아 [[노태우 정부]] 이후에는 보통 2의 의미로 많이 기억한다. == 1980~90년대 경찰 시위 진압 부대의 별칭 == [[파일:attachment/whiteskullkick.jpg]] [[파일:/storage/upload/2008/03/45/67064549_1206693949.jpg|width=512]] 원래는 서울특별시 경찰국(약칭 서울시경, 현재 서울특별시경찰청) 소속 5150제대. 이 사진은 [[소드마스터 시리즈]]에서도 쓴 적이 있다. [[파일:external/file.agora.media.daum.net/pcp_download.php?fhandle=NFRMS3BAZmlsZS5hZ29yYS5tZWRpYS5kYXVtLm5ldDovRDAwMy8xLzE2OS5qcGc=&filename=2.jpg]] 깨방([[타지]])과 [[편곤]][* 중봉(중형 진압봉)에 단봉을 엮은 것이다.]으로 무장한 사진. 사진 속 중대는 전남특수기동3중대로 의경들로 이루어진 중대였다. 인터넷에 흘러다니는 백골단 사진들은 대부분 전의경 중대들로 그중에서도 서울, 전남 쪽 중대들이 대부분이다. [[파일:external/archives.kdemo.or.kr/00705707_0001.jpg|width=512]] [[인해전술|그러나 시위에 참여한 인원이 많아지면]] [[다구리|백골단도 어쩔 수 없다.]] 사진은 1991년 '백골단 해체의 날'[* 다만 시위 이름과는 다르게 실제로 저 날 백골단이 해체된 건 아니다. 백골단은 후술하겠지만 2000년대 들어 시위의 양상이 변화하고 그에 따른 경찰의 진압 방식이 바뀌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시위 때 시위대에게 둘러싸인 모습. [[파일:external/file1.bobaedream.co.kr/magn1489808596.jpg|width=512]] [[파일:external/file1.bobaedream.co.kr/magn1489808603.jpg|width=512]] [[파일:external/file1.bobaedream.co.kr/magn1489808610.jpg|width=512]] (출처: [[유튜브]] [[대한뉴스]])[* [[https://youtu.be/KgtT7c5XXKA|88 기동 순찰대 출범]]] [[백골단]]의 출동 장면.[* 정확하게는 5000단위 의경사복제대(공식적으로는 88올림픽기동순찰대로 창설되었다.)의 출동 장면이다. 의경 사복제대의 경우 비슷한 시기의 전경사복중대가 평범한 [[경찰버스]]를 타고 다닌 것과는 달리 준중형버스를 이용했다.] 여기 사용된 버스는 [[기아 콤비]]([[아시아자동차]])다. === 개요 === 청카바와 청바지를 입고 흰색 하이바를 쓴 전의경, [[경찰기동대|직원 기동대]]원을 통틀어서 일컫는 별칭. 80, 90년대에 [[방석복]]을 입고 열을 맞추어 진압하는 일반적인 전의경들과는 다르게 가벼운 복장으로 시위대에게 달려들어 대오를 헤집고 검거하던 것으로 악명 높았다. 이들은 일반 전의경, 사업장 [[구사대]]와 함께 권위의 상징이자 시민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사실 백골단이라는 말은 경찰측이 아닌 시위대측에서 만들어져서 대중에 퍼졌기 때문에 대중들이 가진 백골단의 이미지와 문서에서 주로 설명하는 사복체포조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경찰관들이나 현역 전의경 및 전역자들도 비공식적으로는 백골단이라는 말로 사복체포조를 지칭하기는 했다.] 사복체포조가 백골단의 이미지에 가장 부합하지만 대중과 시위대가 알고 있는 백골단은 여러 시기의 여러 진압부대의 모습과 과장되거나 사실무근인 정보도 섞여 있기 때문에 사실과 다른 면도 있고 사람마다 백골단에 대해 기억하는 모습이 서로 다르기도 하다. 백골단의 명칭에 대해서는 후술하듯이 복장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제일 유명하지만 청와대 경비대인 백일단([[101경비단]])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 경찰 정예 부대라는 점에서 풍문상의 백골단과 현실의 백일단은 유사점이 있다. 80~90년대 만들어진 악명이 그대로 이어져 시위대에게 공포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 역사 === 1985년 8월 1일 서울시장 명의로 모집된 사복체포조는 대부분 [[무술]] 유단자 및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와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 출신들이 특채되어 주류를 이루었으며 시위자들을 진압하는 모습이 흰색 헬멧에 일반 전투경찰들과 구분되는 청색자켓 복장 때문에 백골단이란 별칭이 붙었다고 알려졌다. 1985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는 81, 87같이 80단위 중대가 사복중대였다. 이 80단위 중대들 중에는 직업경찰들로 이루어진 중대들도 존재했고 전투경찰대원들로 이루어진 중대들도 존재하였다. 80년대 후반에 91~98중대의 전경사복중대[* 1~4기동대에 각각 2개 중대씩 존재했다.]와 81~90중대의 직원(직업경찰관)사복중대[* 다만 전경사복중대가 상대적으로 훨씬 자주 진압작전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직원사복중대들은 정말 큰 상황이 아니면 나서지 않았다고...]로 개편되어 1992년경까지 운영되었다. 이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일반진압중대 내에서도 따로 한 개 소 혹은 분대 정도나 소대 내 고참급들이 청바지 청자켓 등 사복을 입고 사복체포조 역할을 하거나 일부 경찰서에서는 순수 의경들로 이루어진 경찰서 직속의 사복제대를 운영하기도 했다.[* 의경사복제대들은 일반 기동대와는 달리 중대번호가 5000단위였고 위에 나오는 5150제대가 대표적인 의경사복제대로 동대문경찰서(현 혜화경찰서) 직속부대였다.] 그러다 1991년 [[강경대]] 치사 사건이 일어나면서 사복중대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1992년쯤에 전경사복중대들은 직원중대로 교체되거나 해체되었다.[* 뿐만 아니라 80년대 후반부터 대간첩 작전을 목적으로 하는 작전전투경찰을 시위진압에 동원하는 것에 대하여 관련법 해석을 두고 문제제기가 많았는데 이 문제가 강경대 치사사건으로 다시 불거지면서 각 기동중대들은 전경에서 의경으로 대대적으로 교체되었다. 법개정 등을 거쳐 "치안업무보조"라는 항목을 명시해 작전전투경찰(전경) 및 의무전투경찰(의경) 모두 시위진압 투입에 문제 소지를 없앰.] 1994년 말까지는 직원사복중대만 운영되었다.[* 80~89중대까지 10개 중대(1, 4기동대에 3개 중대, 2, 3기동대에 2개 중대씩)로 운영되었는데 앞서 말한 80단위 직원중대와의 관계는 불명이다.] 단, 중대단위로 운용하지는 않았지만 사건 이후에도 몇몇 정복중대 내에서는 분대급 인원으로 사복조를 운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4년 11월경 의경진압중대 중에서 각 기동대당 2, 3개 정도의 중대를 사복중대로 전환시키켰다.[* 1994년 서울대에서 열린 5차범민족대회 당시 진압을 시도했다가 크게 실패한 후 서울청에서는 대대적인 기동대 개혁을 실시하였는데 그 개혁의 일환으로 의경사복중대가 창설되었다. 직원사복중대는 아무래도 직업경찰관들로 이루어졌다 보니 진압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1994년에 전환된 사복중대는 처음에는 모두 "진사복중대"라고 하여[* 반사복중대라고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 '''진'''압복과 '''사'''복 차림을 번갈아 입히며젼서 운영하다가 24[* [[연세대 사태]] 이후 사복중대로 전환되었다고 한다.[[http://cafe.daum.net/ap1004/77N/3590?q=96%EC%97%B0%EB%8C%80%EC%82%AC%ED%83%9C%EB%95%8C%2024%EC%A4%91%EB%8C%80|#]]], 37중대를 제외하고 모두 사복중대로 개편되었다. [[연세대 사태]] 이후 1997년에는 무술 유단 경찰관으로 70, 71, 72, 73, 74중대를 신규 편성 및 기존 제1, 2, 3, 4기동대에서 의경 사복중대들을 차출해[* 각 기동대당 1개 중대 정도씩 이동되었다.(8, 24, 37, 54중대 -> 75, 76, 77, 78중대) 또 사복중대 말고도 정복중대 중에서 13중대가 유일하게 이동되었다.(79중대)] 특수기동대[* 이후 현재의 [[제5기동단]]으로 바뀐다.]를 창설했고 [[2008년 촛불집회]] 등을 거치면서 현재의 [[경찰기동대]]가 운영되고 있다. 비수도권에도 사복중대들이 존재했다. 각각 지역별로 형사기동대와 같은 직원중대 및 경남 80중대, 부산 80중대, 경기 80중대 등 80단위 중대가 사복중대로 운용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서울과 마찬가지로 1991년을 전후로 하여 전경에서 의경으로 인원교체된 경우가 많았다. 그 외에도 정복중대 속 사복조 역시 자주 운영되었고 9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중대들이 사복중대로 창설 또는 해체되는 등의 과정을 겪었다. 지방 중에서도 전남 지역 사복중대들이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당시 광주, 전남 지역의 시위가 격렬한 것으로 유명했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그 중에서 유명했던 전남 지역 사복중대들은 82, 83, 84중대와 3중대[* 90년대 중후반부터 유명했던 중대들로 1994년을 전후로 창설되었다. 각각 2중대가 82중대로, 5중대가 83중대로, 8중대가 84중대로 전환되었고 2중대를 제외하면 정복중대들이었다. 3중대도 96년도 중순까지 정복중대였다.][* 특히 3중대는 중대 전체가 언제나 흑카바를 입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가 있다. 정복중대 내에서 사복을 입는 대원들도 많았고 방범순찰대 중에도 사복을 입고 진압하는 중대들도 있었다.[* 119중대나 149중대가 그러했다고 한다.] ==== 소멸 ==== 백골단은 어느 특정한 시간에 해체돼서 소멸한 게 아니라 환경의 변화로 일반진압 중대와 외형적, 역할적 차이점이 사라지면서 서서히 없어졌다.[* 실제로 사복중대 혹은 진사복중대라는 말과 개념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 남아 있었고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1/1875197_19546.html|화염병전담타격대]]와 같은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복중대가 따로 해체되거나 하지는 않고 일반 진압중대로 계속 남아있었다. 먼저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 이듬해에 개선된 진남색에 어깨 보호대를 더한 방탄조끼 형상의 신형 방석복이 지급되기 시작하면서 정복중대와 사복중대 모두 이 신형 방석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X밴드 형태였던 구형 간이진압복을 착용하는 사복중대는 두껍고 무거운 구형 방석복(속칭 완진)으로 인해서 기동성이 부족한 정복중대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모두 보다 가벼워진 신형 방석복을 착용하게 되면서 사복중대의 의미가 다소 퇴색되었다. 시위환경이 변하면서 시위 진압 방식이 변하고 착용하는 방석복의 차이가 없어지면서 점차 정복중대는 예전보다 유연하고 가벼워지고 사복중대는 예전보다 무거워지는 식으로 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1985년 창설부터 90년대까지 점진적으로 있어왔고 1999년 무최루탄 선언 이후에는 정복, 사복중대의 역할이 거의 비슷해졌다.[* 다만 이후에도 거북이 방패를 들고 흑카바에 흰운동화를 착용하는 등의 차이가 있긴 했다.] 진압방식의 변화 외에도 외형의 차이도 사라졌다. 2000년경을 지나면서 기존의 사복중대들이 청자켓과 청바지를 입지 않게 되고 특유의 오토바이 헬멧도 검은색으로 칠해 버리면서 언뜻봐서는 일반적인 [[방석모]]랑 구별이 힘들어졌다.[* 서울 기준으로 지방별로 차이는 존재한다. 부산, 전남 등 일부 지방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청바지, 청자켓을 입거나 특유의 헬멧을 착용하였다. [[http://cafe.daum.net/ap1004/77S/3328?q=84%EC%A4%91%EB%8C%80&re=1|전남 84중대]]] 아마 사복중대가 더 이상 백골단으로 불리지 않게 된 건 외형적 이유가 클 것이다. ||[[파일:35중대 사복하이바.jpg]]||[[파일:05-05-24-1002-04.jpg]]|| || 검은색으로 칠해진 헬멧 [[http://cafe.daum.net/ap1004/77S/5511?q=35%EC%A4%91%EB%8C%80%20%ED%95%98%EC%9D%B4%EB%B0%94|#]] || 2005년경 1기동대 2중대 대원 [[http://blog.daum.net/zkem2030/6368664|#]] || 이렇게 사복중대가 그 특징을 잃으면서 백골단의 악명은 [[제1기동단|1기동대]] 1, 2, 3중대 즉, [[단셋]]에게 넘어갔다. 2006년에 단셋이 해체된 뒤[* 2005년 농민대회에서 농민 2명이 사망하게 되면서 이전처럼 활동하지 못하게 되었다.] 2008년 촛불시위부터 경찰관기동대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무도유단자를 중심으로 선발한 [[경찰공무원]] 1700여 명 규모로 창설, 감축 및 해체 수순을 밟아 가던 전의경 진압중대들을 대신해 시위 진압을 전담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경찰관기동대의 진압능력은 의경중대보다 저조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실제로 2009년 촛불 1주기 시위 당시 경찰관 기동대가 투입되었는데 '''상부의 지시가 없다는 이유로 바로 옆에서 전의경 대원들이 시위대에게 고립되어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당시 뉴스를 찾아보면 전의경중대 중대장들이 직원중대[* 영상 속 음성을 토대로 상설부대가 아니라 일단위(비상설중대) 직원들이라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비상설중대는 교통/경무/형사 등 타 부서 경찰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규모 시위와 같은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소집된다.] 대원들에게 '''"좀 도와주라고요 좀!!!"'''이라며 간절하게 부탁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PAJI0q_64_k|해당 영상]][* 사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명령과 지휘계통이 다르면 통제할 권리가 없어서다. 타 지휘관이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줬다가 일이 꼬였을 때 직속상관에게 깨지는 건 본인들이다.] 전/의경 전역자들과 경비부서 경찰관들 사이에서 이러한 평가가 나온 데는 전의경 중대[*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문화개선 정책을 펴기 이전까지.]의 어마어마한 훈련량이 한 몫을 했다고 평가된다. 경찰공무원들을 실신할 때까지 혹독하게 훈련시킬 수는 없었다 보니 당시 경험치 면에서 의경 대원 쪽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창설 초기에는 진압검열 때 직원중대가 자꾸 삽질을 하자 옆에서 구경하던 전의경중대가 '''대놓고 놀려대서''' 시비가 붙은 일화도 있다. 이러한 평가는 촛불시위 당시 일부 경찰관기동대 직원들이 근무 중 당구장에 출입한(...) 사실이 언론에 [[https://blog.daum.net/san05/13102685|보도]]되며 심화되기도 했다.] 이후 경찰관기동대를 정책적으로 1선에 우선 배치[* 의무경찰 중대가 대형을 유지하며 시위자들을 저지하면 경찰관기동대가 체포조 역할을 하는 것이 창설 초기의 구상이었다. 다만 변수가 많은 현장 특성상 이것이 얼마나 지켜졌는지는 불명.]하면서 그 간극이 점점 줄어들었고 2020년대에 들어와선 경찰관기동대가 집회시위 관리업무를 거의 전담하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의무경찰 폐지로 인해 신규대원 선발이 중단되면서 대부분의 중대가 통/폐합되었다. 대원중대가 완전히 사라진 청도 존재하며 그나마 있는 부대들도 교통전담중대 등으로 전환된 경우가 많다.] === 복장 === 백골단의 복장은 하얀색 또는 약간 누런색 [[오토바이 헬멧]](백골단이란 별칭이 붙은 이유)과 청바지([[화염병]]과 유리조각 등으로부터 보호 가능), 작은 [[방패]] --깨방--, 단봉 그리고 운동화 복장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꼭 복장이 이렇게 일관되지는 않았다. 시기별로, 지역별로, 또 사복중대인지, 정복중대 내 사복조인지, 직원인지 대원인지에 따라서 유형은 많았다. 흰색 헬멧 외에도 2가지 색으로 된 헬멧도 쓰였다. 색이 있는 헬멧은 초기에는 다양한 색상이 있었는데 그 중 은색과 파란색으로 된 것만 끝까지 쓰이게 된다. 헬멧의 모양새는 창설초기에는 챙이 달린 싸이카 헬멧이었지만 1989년경 챙이 제거되고 플라스틱 바이저가 달린 형태의 헬멧으로 교체되었다. ||[[파일:하이바.jpg|width=400]]||[[파일:T12037.jpg]]|| || 다양한 색깔의 헬멧들 || 가장 흔한 바이저가 달린 모델. 1989년~2000년대 초반까지 계속 쓰였다. || 1996년 이후에는 지방청 차원에서 위의 플라스틱 바이저를 철망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이전에도 개인적으로 혹은 중대 자체적으로 바이저를 없애고 다니거나 방석모용 철망을 붙이는 경우가 있었다.] 또 시기에 따라서 헬멧에 페인트칠을 한다던가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주로 대외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백골단을 상징하는 것은 특유의 오토바이 헬멧이다 보니 헬멧 자체에도 안 좋은 이미지가 붙었다.] 이 때문에 녹색으로 칠했던 시기에는 녹골단으로 불리기도 했다. 흰색 헬멧도 주로 문서 상단의 5150제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챙이 달린 싸이카 헬멧이었다. [[하키]] 헬멧 같은 헬멧도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때 쓰였다.[[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738705|#1]],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907030|#2(사진이 꽤나 잔인할 수 있으니 유의하길 바람)]][* 머리에 부상을 당한 경찰이 피를 흘리며 부축받는 장면이다.] 전남에서도 약간 누런 흰색 헬멧이 오랫동안 쓰였는데 특히 90년대 중후반에 이름을 날리던 82중대를 대표하는 헬멧으로 유명하다.[[http://cafe.daum.net/ap1004/77N/1728?q=%EC%A0%84%EB%82%A8+82&re=1|#]] 그 밖에 자체적으로 다른 모델의 헬멧을 쓰거나[[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159&pn=0&num=23577#none|#]] 락카칠 등을 해서 꾸미거나 사제 오토바이 헬멧을 구해서 쓰기도 했고 위의 싸이카 헬멧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바이저 형태가 약간 다른 모습의 헬멧을 쓰기도 하는 등[[http://pds38.cafe.daum.net/image/26/cafe/2007/04/02/11/24/461069643a05b|#1]],[[http://cfile297.uf.daum.net/original/183F193F502247A228DC41|#2]] 중대, 지방별로 다양한 종류의 헬멧이 있었다. 다만 1989년 이후에는 플라스틱 바이저가 달린 은색, 파란색 투톤 헬멧이 가장 보편적이었다.[* 서울로 한정한다면 사복중대들은 전부 이 헬멧을 썼다고 봐도 무방하다.] 복장운 초기에는 굳이 청자켓, 청바지가 아니라 완전한 사복을 입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위의 4장의 사진을 합쳐놓은 사진을 보면 다양한 옷을 입고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청자켓과 청바지, 일명 청카바도 초창기부터 쓰여 왔다. 청카바는 보급으로 나오기도 하였지만 고참들이나 지방에 따라서는 그냥 추리닝 상의나 바람막이에 사제 청바지 같은 개인 복장을 입기도 했다. 서울 기준으로 청카바의 디자인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중반 사이에 한 차례 변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