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로마 황제)] || '''{{{#FCE774 비텔리우스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역대 로마 집정관/1세기)]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CE774,#FCE774 로마 제국 제44대 황제}}}[br]{{{#FCE774,#FCE774 {{{+1 발레리우스 발렌스}}}[br]VALERIVS VALENS}}}'''}}}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발레리우스 발렌스.jpg|width=100%]]}}} || || {{{#FCE774,#FCE774 '''이름'''}}} ||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발렌스[br](Aurelius Valerius Valens)|| ||<|2> {{{#FCE774,#FCE774 '''출생'''}}} ||미상 || ||[[로마 제국]] || ||<|2> {{{#FCE774,#FCE774 '''사망'''}}} ||317년 2월 || ||[[로마 제국]] || ||<|2> {{{#FCE774,#FCE774 '''재위 기간'''}}} ||{{{#000 로마 황제}}} || ||[[316년]] [[10월]] ~ [[317년]] [[2월]] '''(5개월)''' || || {{{#FCE774,#FCE774 '''전임자'''}}} ||[[리키니우스]] || || {{{#FCE774,#FCE774 '''후임자'''}}} ||[[콘스탄티누스 1세]] || || {{{#FCE774,#FCE774 '''종교'''}}} ||[[로마 신화|로마 다신교]] || [목차] [clearfix] == 개요 == 제44-2대 [[로마 황제]]. 316년 10월 [[리키니우스]]에 의해 공동 황제로 지명되어 [[콘스탄티누스 1세]]와 대적했으나 317년 2월 리키니우스가 콘스탄티누스에게 패한 뒤 평화 협약 체결 후 처형되었다. == 생애 == 전반적인 생애와 기원은 기록이 미비해 분명하지 않다. 그는 도나우 전선 방면 사령관으로서 [[리키니우스]]의 핵심 부관이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는 [[로마 제국]]을 양분하여 다스리기로 합의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탈리아, 갈리아, 히스파니아, 아프리카, 브리타니아를 맡았고, 리키니우스는 발칸 반도,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를 맡았다. 그러나 양자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316년경, 콘스탄티누스를 암살하려던 이가 붙잡혔다. 범인은 체포 후 가혹한 고문을 받은 끝에 리키니우스로부터 차기 공동 황제감으로 고려되던 인사가 시켰다고 자백했다. 훗날 리키니우스가 공동 황제로 세운 것을 볼 때, 발레리우스 발렌스가 암살 시도의 배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콘스탄티누스는 리키니우스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316년 10월 8일 키발라이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에게 패배한 리키니우스는 아드리아노폴리스로 철수한 뒤 또다른 병력을 이끌고 온 발렌스와 합세했다. 그는 그해 12월에 발렌스를 공동 황제로 지명했다. 아마도 심복인 발렌스의 충성을 보장받고자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사료에서는 발렌스를 [[카이사르(칭호)|카이사르]]로 언급하지만, 그의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 주조된 동전에서는 그가 [[아우구스투스(칭호)|아우구스투스]]에 옹립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콘스탄티누스는 일개 장군일 뿐이고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작자가 하루아침에 황제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진노했다. 그는 트라키아의 필리포폴리스로 이동한 뒤 평화 협약을 맺고 싶다면 발렌스를 제거하라고 요구했다. 리키니우스는 이를 거절했고, 양자는 316년 말 또는 317년 초 마르디아에서 격돌했다. 리키니우스는 이 전투에서도 또다시 패배했고, 317년 3월 1일 세르디카에서 콘스탄티누스와 평화 협약을 맺기로 했다. 리키니우스는 아우구스투스 직위를 유지하는 대신 트라키아를 제외한 발칸 반도의 모든 영역을 콘스탄티누스에게 넘겨야 했으며, 콘스탄티누스의 두 아들 [[크리스푸스]], [[콘스탄티누스 2세]], 자신의 아들이자 콘스탄티누스의 조카인 리키니우스 2세를 카이사르로 세우기로 했다. 한편 발렌스는 콘스탄티누스의 요구에 따라 폐위된 직후 처형되었다. [[분류:로마 황제]][[분류:폐위된 군주]][[분류:31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