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슬로바키아의 세계유산)] ||<-3><#000><:> '''[[유네스코|{{{#fff 유네스코}}}]] [[세계유산|{{{#fff 세계유산}}}]]''' || ||<-3><#fff>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width=160]] || ||<|3> 이름 || 한국어 || 반스카슈티아브니차[br]역사 도시와 기술 기념물 || || 영어 || [* Historic Town of Banská Štiavnica and the Technical Monuments in its Vicinity] || || 프랑스어 || [* Ville historique de Banská Štiavnica et les monuments techniques des environs] || |||| 국가·위치 || [[슬로바키아]][br][[반스카슈티아브니차]] || ||<-3> [include(틀:지도, 장소=Banská Štiavnica)] || |||| 등재유형 || [[세계유산#s-3.1.1|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93년]] || |||| 등재기준 || (iv)[*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v)[*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 || |||| 지정번호 || [[http://whc.unesco.org/en/list/618|618]] || [목차] [clearfix] == 개요 == [[슬로바키아]] 동부 반스카비스트리차 주(Banskobystrický kraj)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1993년에 구 시가지가 [[세계유산|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언어별 표기 == ||[[슬로바키아어]]||Banská Štiavnica|| ||[[헝가리어]]||Selmecbánya(셸메츠바녀)|| ||[[독일어]]||Schemnitz(솀니츠)|| == 역사 ==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한 흔적이 발견되며 그때부터 이미 [[은광]]으로 유명했다. 최초의 [[광산]]촌은 3세기 무렵 [[켈트족]]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며 이후 [[슬라브족의 이동]]으로 [[슬라브족]]의 도래를 거쳐, 10세기 무렵에는 [[마자르족]]이 진주하면서 [[중세]] [[헝가리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1156년 '''[[광부]]의 땅'''이라는 [[라틴어]] 의미의 테라 바넨시움(terra banensium)으로 불렸으며 [[동방식민운동]]에 따른 [[독일인]]의 이주로 독일어 이름인 솀니츠로 불리기 시작했다. 1238년 도시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중세 헝가리 왕국 시기에는 [[금]]과 [[은]]의 주요 생산지였다. 1526년 [[모하치 전투]]로 헝가리 왕국은 붕괴되었고 이 지역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노린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막기 위해 요새를 세웠다.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개신교]] 세력이 강한 도시가 되었고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대공국|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반스카비스트리차]] 등과 더불어 7곳의 광산 도시 동맹을 만들어 이권을 수호했다. [[합스부르크 제국]] 치하에서 반스카슈티아브니차는 매우 혁신적인 도시로, 1627년에는 [[화약]]을 이용해 광산을 개발했으며 18세기에는 헬 믹사(Hell Miksa 1720~1792) 등을 비롯한 지역 과학자들이 침수된 광산에서 물을 빼내기 위해 저수지와 정교한 수로를 설계했다. 덕분에 반스카슈티아브니차는 슬로바키아의 다른 광산 도시들이 [[폐광]]하는 도중에도 꿋꿋이 버텨낼 수 있었고 이는 [[산업화]] 초창기에 동력을 제공했다. 1735년 미코비니 사무엘(Mikoviny Sámuel ?~1750)에 의해 헝가리 왕국 최초의 광산학교가 세워졌으며, 1807년 [[프란츠 2세|프란츠 1세]]의 명령으로 임업 연구소가 설치되었다.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브라티슬라바|포조니]], [[데브레첸]]에 이어 헝가리에서 3번째로 큰 도시였으나 19세기부터는 점차 쇠퇴해온 광산 활동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쇠퇴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 속하게 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에는 [[소련군]]에게 점령당하기도 했다. == 인구와 사회 == 2021년 기준 약 9,500명으로 한국의 지방 시골급 인구이다. 인구 대부분은 [[슬로바키아어]]를 사용하는 [[슬로바키아인]]이며 극소수의 [[집시]]와 카르파티아 독일인의 후손이 남아있다. 65%는 [[가톨릭]]을 믿으나 [[무종교]] 인구도 상당하며 소수는 [[루터교]]를 믿는다. [[분류:슬로바키아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