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나주시 출신 인물]][[분류:1923년 출생]][[분류:1942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박정동}}}[br]朴正同'''}}}}}} || ||<|2> '''출생''' ||[[1923년]] [[12월 1일]] || ||[[전라남도]] [[나주시|나주군]] 왕곡면 신가리 || ||<|2> '''사망''' ||[[1942년]] [[6월 6일]] || ||도쿄 형무소 || || '''직업''' ||독립운동가 || ||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정동은 1923년 12월 1일 전라남도 나주군 왕곡면 신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가서 지내다 1941년 7월 일본 도쿄 하곡구 이장정 159번지에 소재한 자신의 하숙집에서 김수병(金壽秉)과 여러차례 만나 "[[중일전쟁]]은 [[세계 대전]]으로 이행하여 독일 등 [[추축국]]은 결국 패전에 빠질 것이다"라고 전망하였다. 그리고 "조선청년은 이 기회에 조선 동포가 일본제국주의 통치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 독립을 완수하기 위하여 단결을 공고히 하고 적극적 활동을 전개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김수병과 함께 독립운동을 위한 동지 규합에 힘쓰다 같은 해 12월 12일 도쿄 경시청(警視廳)에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경시청은 박정동을 취조한 후 동경형사지방재판소 검사국으로 송치하였으나, 1942년 6월 박정동이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자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박정동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