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목록]] [[파일:external/tv.pstatic.net/yonhapnews_33736876.jpg|width=150]] 朴相吉 1925년 2월 16일 ~ 2003년 4월 17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백산(白山)이다. 1925년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말기 [[만주국]] 국립 봉천학원 정경학과를 졸업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국민회(1945년)|국민회]] 박정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6.25 전쟁]] 때 [[한국방송공사|중앙방송국]]에서 시사해설 국민의소리,대북방송 등을 진행하였다. 1954년 자유당 중앙위원 겸 선전문화훈련부 [[차장]]에 임명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자유당을 탈당하여 친여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고, 현역 [[국회의원]]인 자유당 김영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최석림]], [[유기수(1908)|유기수]], [[현오봉]], [[이재현(1917)|이재현]] 등과 자유당에 복당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15 부정선거]]에 가담한 자라는 비판이 있었음에도 자유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1955년)|민주당]] 정준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초 [[대한민국 국회]]의 3.15 부정선거 가담 반민주행위자에 대한 공민권 제한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오재영]]의 추풍회에 속하였다. 1964년부터 1965년까지 [[청와대]] [[대변인]] 겸 [[대통령비서실]]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1965년 말부터 1967년까지 총무처(현 [[행정자치부]] 및 [[인사혁신처]]) [[차관]]을 역임하였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수협]]중앙회 [[회장]]을 지냈으나 이후 비리로 구속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가 1981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함양군 출신 인물]][[분류:1925년 출생]][[분류:2003년 사망]][[분류:총무처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