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바레인)]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55deg, transparent 19%, #CE1126 19%), linear-gradient(25deg, transparent 19%, #CE1126 19%), linear-gradient(147deg, transparent 14%, #fff 14%), linear-gradient(33deg, transparent 14%, #fff 14%), linear-gradient(to right, #fff 2%, transparent 2%, transparent 4%, #fff 4%), linear-gradient(to bottom, #fff 40%, #fff 40%, #fff 60%, #fff 60%)" '''{{{#fff 바레인 역사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아라비아의 역사/근현대)] [include(틀:서아시아의 역사)] [include(틀:바레인 관련 문서)] ---- }}} || [목차] === 고대 === 고대 페르시아 만 지역에 존재했던 문화인 [[딜문]]의 중심지였다. 시기는 B.C 3000년 ~ 600년경으로, 초기 딜문 문화는 BC 3000 ~ 1750년경, 중기와 후기는 각각 B.C 1750 ~ 1000년경, B.C 1000년 ~ 600년경으로 나뉘는데 바레인의 유적지에서 [[수메르]], [[인더스 문명]]과 교류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후에도 수메르-아카드의 기록에서 조금씩 언급되다가 B.C 700년경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다고 한다. 이후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영향력 하에 있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면서 바레인 섬도 그리스 문화의 영향권에 들었고, 3세기에는 [[사산조 페르시아]]에 정복되었다. 한편으로는 [[기독교]]가 생겨나면서 [[동로마 제국]]에서 [[이단]]이라고 비난받던 [[네스토리우스파]]가 여기를 중심지로 삼기도 했었고 [[유대인]]들 일부가 살기도 했다. === 중세~근현대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바레인 사원.jpg|width=100%]]}}}||{{{#!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바레인 성채 1.png|width=100%]]}}}|| |||| 바레인 최초의 이슬람 사원 (마스지드 카미스)과 포르투갈이 [[마나마]]에 세운 바레인 성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마나마)] [[정통 칼리파]]가 사산조 페르시아를 멸함으로써 이 지역도 [[이슬람]]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슬람 제국]]의 분열 이후 [[이스마일파]]인 [[카르마트]], [[우윤 왕조]] 등 아라비아 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자 이후 1521년부터 1601년까지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후에는 [[사파비 왕조]]가 이들을 몰아내고 바레인을 점령하였다 이후 1717년에는 오만 제국이 사파비왕조를 몰아내고 바레인을 지배했으나 다시 사파비 왕조가 바레인을 재 점령했다 이러한 혼란속에서 1783년 쿠웨이트에서 바레인으로 이주한 우트바 부족의 알 칼리파 가문의 아흐메드 빈 무함마드 빈 칼리파가 바레인을 공격해 페르시아인를 몰아내고 바레인을 차지했다.그러나 알 칼리파 가문내에 다툼과 토착 부족들과에 다툼은 계속되었다 한편,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바레인은 사우드 가문과 페르시아의 압력에 맞서기 위해 [[영국]]과 손을 잡았는데 오히려 이게 독이 되어 1861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고 말았다. 현지에서 저항운동이 있기는 했으나 영국의 무력에 분쇄되었다. 본래 바레인은 [[진주]] 산지로 유명했던 곳이었으나 [[1930년대]]에 [[석유]]가 발견되고, 영국은 [[BP plc]] 등을 진출시켜 석유 시추에 나섰다. 2차대전 이후 식민지 독립을 물결을 맞아 독립이 논의되었다. 당시 바레인을 지배하던 영국에 맞서 [[이란 제국]]도 바레인에 영유권을 주장했었으나, 바레인 독립 문제를 [[국제연합]]에 의뢰하기로 합의,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독립의견이 우세함을 확인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278호|1970년 UN 안전보장이사회의 바레인 독립 결의]]에 이어 이란 제국 국회가 바레인 영유권 주장을 포기할 것을 결의하여 1971년 8월 15일, 바레인국(دولة البحرين, Dawlat al-Baḥrayn)이라는 이름의 전제군주국으로 독립했고, 동시에 [[UN]]과 [[아랍 연맹]]에 가입했다. 카타르 및 [[아랍에미리트]] 토후국들과 같이 영국의 보호령으로 있었기 때문에, 아랍에미리트 연방에 가입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결국 바레인, 카타르는 아랍에미리트 연방과 따로 독립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 21세기 이후 === 현 국왕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대에 들어서 원래 [[아랍 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의 군주들과 동일한 [[아미르]](토후) 였던 칭호를 2002년에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모로코]]와 동격인 '말리크(군주, King)'로 자신의 칭호를 격상했다. 그리고 헌법을 제정해 입헌군주국이 되었고[* 그러나 군주의 강력한 권한을 헌법에 명기했고, 막강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전제군주국이다.] 국호도 바레인 왕국(مملكة البحرين, Mamlakat al-Baḥrayn)으로 개칭했다. 과거 주말은 [[목요일]]과 [[금요일]]이었으나 서방과의 교류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2006년에 주말을 금요일과 [[토요일]]로 바꿨다. 이 나라 역시 아랍의 봄의 물결을 피해가지는 못해서, [[2011년]] 일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상세 사항은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 [[바레인 반정부 시위]]에서. 2018년 4월 1일에 바레인에서는 1932년에 원유생산을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의 유전이 발견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23&aid=0003362598|#]] 그리고 2018년 4월 5일에 [[영국]]은 1971년에 바레인에서 철수한 이후, 300명의 군인을 수용할 수 있는 해군기지를 다시 개설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0007975|#]]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바레인, version=338)] [[분류:바레인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