密城大君 [목차] == 개요 == 본명은 박언침(朴彦忱). 신라 [[경명왕]]의 [[장남]]으로, [[밀양 박씨]]의 시조이다. == 생애 == 족보 등 비공식 문헌에 따르면, 경명왕의 장남인데도 왕위를 물려받지 못했다. 경명왕은 젊은 나이에 중병이 들었고 자신의 장남인 밀성대군이 아직 나이가 어려서 [[후삼국]]이라는 난세의 지도자로 적합하지 않다 판단하고, 많이 걱정이 돼서 장성한 아우인 [[경애왕]]에게 물려준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이렇게 왕위를 물려받은 경애왕도 결국 [[포석정]]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기는 하지만 그 전까지 나름대로 고려군과 신라군의 연합 작전을 감행하는 등 침체해 있던 신라를 살려보기 위해 적극적인 타개 노력을 했던 것이 확인되며, 성인인 경애왕 대신 어린 왕자가 즉위했다면 [[견훤]]의 위협 앞에서 더 좋게 진행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뒤에는 밀성대군으로 봉군(封君)되고, [[밀양시]]에 눌러 앉으면서 밀양 박씨의 시조가 된다. 남동생이 7명이나 있었는데[* 즉 경명왕 슬하에는 8남이 있었던 거다.] 각각 둘째부터 막내까지 고령, 함양, 죽산, 무안, 춘천, 순천, 충주, 상주, 월성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또한 자기 아들인 박욱(朴郁)은 고려 태조 때 삼한벽공도대장(三韓壁控都大將軍)을 지냈다고 한다. == 묘(시조단소) == 그의 시조단소는 밀성대군지단(密城大君之壇)이라고 불리는데, 일반적인 [[묘]]가 아니라 [[비#s-2.4]]로 되어있다. 밀성대군지단은 [[밀양시]] 천진궁 옆에 있으며 천진궁, 영남루, 아랑사, [[박시춘]] 옛집, 밀양[[읍성]], 밀양[[관아]]는 [[밀양시#s-5]] [[내일동]] 내 대표적인 여행지이다. === 밀성대군 지단 이전 논란 ===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경상남도의회|경남도의원]][* [[창원시]] 3]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춘금]]이 완력으로 영남루 마당에 세운 밀성대군지단을 옮기고 그곳에 '[[박춘금]] 단죄비'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47&aid=0002330179|#]][[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75617|#]] 조선총독부를 등에 업은 박춘금이 박씨 문중을 만방에 과시하고자 세운 '일본식 무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밀양 박씨|밀성(밀양)박씨]]대종회가 "밀성대군지단이 친일잔재라는 기록이 어디에 있느냐"며 반발하고 나섰다.[[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76369|#]] [[이상조(1940)|이상조]] 전 밀양시장(1995~2006년) 재임 당시 지단을 옮기자는 여론이 있었으나 이뤄지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75988|#]] [[분류:신라의 왕자]] [[분류:밀양 박씨]] [[분류:신라의 인물]] [[분류:신라의 왕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