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미하일 타로니티스[br](영어:Michael Taronites, 그리스어: Μιχαήλ Ταρωνίτης)|| || '''출생''' ||미상|| || '''사망''' ||미상|| || '''직위''' ||프로토세바스토스, 프로토베스티아리오스|| || '''반란 대상''' ||[[알렉시오스 1세]]|| [목차] [clearfix] == 개요 == [[동로마 제국]] [[콤니노스 왕조]]의 반란자. [[알렉시오스 1세]]를 [[폐위]]시키려는 음모에 가담했다가 [[추방]]되었다. == 생애 == 타론 출신의 [[아르메니아]] [[귀족]]인 타로니타이 가문의 일원. [[1061년]]에서 [[1064년]] 사이 [[요안니스 콤니노스#s-1]]와 [[안나 달라시니]]의 장녀 마리아 콤니니와 결혼하여 두 아들 요안니스 타로니티스, 그레고리오스 타로니티스와 딸 하나를 낳았다. [[1070년]] 마누일 콤니노스, [[니키포로스 멜리시노스]]와 함께 [[셀주크 투르크]]에 맞서 싸웠지만 세바스티아(현 [[시바스]]) 인근에서 패배하여 마누일, 니키포로스와 함께 붙잡혔다. 하지만 그를 잡은 [[투르크인]] [[족장]]이 마누일의 설득에 따라 동로마 제국과 손을 잡기로 한 덕분에 풀려날 수 있었다. [[1081년]] [[로마 황제|황위]]에 오른 [[알렉시오스 1세]]는 처남인 그를 프로토세바스토스, 프로토베스티아리오스로 선임하였고, 나중엔 [[카이사르(칭호)|카이사르(부황제)]] 칭호를 받은 니키포로스 멜리시노스와 동급의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로마노스 4세]]의 아들이었던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카타칼론 케카브메노스와 함께 반역을 모의했다가 [[1094년]] 6월 발각당했다. 그들은 곧바로 [[유배]]되었고, [[재산]]은 [[몰수]]되었다. 황제는 믿었던 이들의 [[배신]]에 진노해 실명형을 내렸지만, 마리아가 간곡히 설득하자 마음을 마꿔 미하일만은 실명형에 처하지 않게 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분류:동로마 제국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