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인물]] [include(틀:역대 고구려 좌우보)] '''彌儒''' (? ~ ?) [[고구려]]의 관료. [[고구려]] 5부 중 하나인 관나부(貫那部)[* 읽기에 따라서는 관내부라고도 한다.] 출신의 사람으로, 본래 우태(于台)라는 관등을 지니고 있었다. 132년([[태조왕]] 80), [[태조왕]]의 아우였던 [[차대왕|수성]]이 왜산(倭山)에서 [[사냥]]을 나갔을 때 함께 따라나섰다. 이때 수성이 함께 사냥하던 사람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는데, 그 곳에서 [[어지류]], [[양신]] 등과 함께 은밀히 왕위를 찬탈할 것을 권하였다. 미유는 [[모본왕]]이 죽은 후에 그의 뒤를 [[유리명왕]]의 아들인 [[재사]]가 이어야 했으나, 재사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왕위를 사양하고 대신 자신의 아들 [[태조왕]]에게 물려주었던 선례를 들먹이며 지금의 태조왕이 나이가 많으니 그 왕위는 당연히 수성의 차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수성은 "[[태조왕]]에게는 이미 아들이 있으니 [[우린 안될꺼야 아마]]."라고 대꾸하며 주저하였다. 그러자 미유는 '''"동생이 똘똘해서 형의 뒤를 잇는 건 당연한거임."'''이라면서 다시 한번 수성을 유혹하였다. 결국 10년도 넘게 흐른 후(...) 146년에 수성은 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는데, 그가 바로 [[차대왕]]이었다.[* 형식상으로는 태조왕이 동생에게 양위하였지만 실제로는 힘으로 협박한 끝에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미유는 관내부의 패자(沛者)가 되어 있었는데, 차대왕은 이듬해인 147년에 자신을 도운 공으로 미유를 좌보(左輔)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삶은 알 수 없다.[* 이후로 계속 살아있었다고 해도 [[명림답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차대왕을 살해했을 때 함께 제거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차대왕에게 왕위를 찬탈하도록 권유했던 사실이나 왕위에 오른 후에 미유를 무척 우대해준 사실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미유는 차대왕의 최측근이었거나 왕위를 찬탈할 당시에 공을 세운 인물로 보인다. [각주] [[분류:고구려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