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주 국왕)] [include(틀:역대 노 군주)]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a3f3a 0%, #da3f3a 20%, #da3f3a 80%, #da3f3a)" {{{#ece5b6 '''주읍 초대 국군[br]노 초대 국군[br]{{{+1 文公 | 문공}}}'''}}}}}} || ||<-3>{{{#!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주공단.jpg|width=100%]]}}} || |||||| 왼쪽이 주 문공, 가운데는 [[성왕(주)|성왕]]. 오른쪽은 [[소공석|소공]] || |||| '''[[시호|{{{#ece5b6 시호}}}]]''' ||문공(文公) || |||| '''[[작위|{{{#ece5b6 작위}}}]]''' ||주공(周公) || |||| '''[[성씨|{{{#ece5b6 성}}}]]''' ||희(姬) || |||| '''[[휘|{{{#ece5b6 휘}}}]]''' ||단(旦) || |||| '''{{{#ece5b6 아버지}}}''' ||[[주문왕]](周文王) 희창(姬昌) || || '''{{{#ece5b6 생몰 기간}}}''' ||{{{#ece5b6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주나라]]의 [[정치인]]. 성은 [[희|희(姬)]], 이름은 단(旦). 그냥 "주공(周公)" 혹은 주공 단(周公 旦)[* 주공은 후술하겠지만 주나라의 관직명이자, 주읍 지역의 제후이다. 그리고 이름이 단이니 주공단이 아니라 주공 단 혹은 주문공이라고 칭하는 것이 옳다.]이라는 말로도 자주 불린다. 그러니까 주공은 제후의 벼슬 이름이다. 영지가 주(周)[* 이칭으로는 소주(小周), 주읍(周邑)이 있다.] 지역이라서 주공이라고 불렸다. 생몰연도는 알려져있지 않으나 [[문왕]]의 넷째 아들이다. 첫째 형이 [[백읍고]], 둘째 형이 [[무왕(주)|무왕]] 희발. 시호는 문공(文公). 중국 고대사에서 최고의 [[성인#s-2.1|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로, 다른 성인인 탕왕, 문왕, 무왕은 신하의 입장에서 군주를 쫓아냈기에 역적이라 비판받는다.[* 이에 대한 반론은 [[맹자]]가 [[제선왕]]에게 한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하며, 잔적지인(殘賊之人)을 단지 '그 놈!'이라고들 하니, '무왕께서 그 {주}라는 놈을 처형하셨다.'라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하였다.'라는 말은 들어 본 바 없습니다."]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고 보좌의 소임을 마친 주공은 모범적인 재상으로 추앙받는다. 다만, 이런 사건을 군신관계로 파악함 자체가 지극히 유교적 관점이므로 주의할 것. 또 그 당시 중앙집권국가라는 개념이 없었던 [[청동기 시대]] 부족 간 세력 다툼으로 보아야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 생애 == [[강태공]]과 함께 형 무왕을 보좌하여 [[주왕]]의 폭정을 하는 [[상나라]]를 멸망시켰다. [[달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달:女+旦) 문공이 상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훈련시킨 미녀라는 설도 있다. 주나라를 건국할 때 60세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노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 노나라는 현재 중국의 [[산둥성]] 곡부(취푸) 부근이며 공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문공은 장남 백금에게는 멀리 있는 노나라를 주고 차남 군진에게는 사후 자신의 주공 자리를 주니 그가 주 평공이다. 무왕 사후 나이 어린 조카, [[성왕(주)|성왕]]의 [[섭정]]을 맡았다. 그러나 자신의 형제인 관숙[* 문왕의 셋째 아들, 즉 문공의 바로 위에 형이다. 관숙과 뒤의 채숙, 곽숙은 모두 무왕과 문공의 (어머니까지 같은) 친형제.], 채숙, 곽숙과 은나라 주왕의 아들 무경[* 상나라 세력을 달래기 위해서 무왕은 그를 제후로 삼았다]이 끊임없이 문공을 헐뜯자, 그는 성왕에게 '올빼미(鴟鴞, 올빼미 치, 부엉이 효)'라는 시를 지어 올려 자신의 무고를 호소했다. 이 시는 [[시경]]에 실려있는데, 올빼미는 자신을 모함한 관숙 등을 비유한 것이다.[* 올빼미는 중국과 한국에서 인식이 안 좋았다.] 이외에도 훗날 성왕이 성인이 되자 주공을 꺼려 쫓아내는데 그해 가을 갑자기 비바람이 일고 벼락이 쳐 커다란 나무가 뽑히고 익은 벼가 다 쓰러지는 불길한 일이 벌어진다. 이에 놀란 성왕이 점을 치려고 점괘를 모아둔 금등(金縢)으로 된 궤를 열어 보는데 거기서 예전에 아버지 주무왕이 큰 병에 걸렸을 때 주공이 소공(무왕과 주공의 이복동생이자 주나라 초기의 명재상. [[연(춘추전국시대)|연나라]]의 시조이기도 하다)과 함께 무왕의 쾌유 여부를 점친 뒤 하늘에 제사 지내며 "'''제 목숨을 대신 거두시고 형님은 살려주십시오.'''"라 기도했던 제문을 발견하고는 문공에 대한 의심을 풀었다는 고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영화, 영원한 제국의 화두로 잘 알려진 '금등지사'다. 이 기도문은 [[상서|서경]](書經) 주서(周書)에 동명의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안타깝게도 현존하는 서경은 후대의 위작으로 밝혀졌다. 결국 무경과 관숙 등이 훗날 삼감(三監)의 난[* 삼감이란 말 그대로 관숙, 채숙, 곽숙을 가리킨다. 본디 관숙 형제들은 무경을 감시하는 소임을 맡고 있었다.]이라 불리는 반란을 일으키자 문공은 출정하여 3년 만에 반란을 진압하고 당시 황하 중류에 머무르던 중국의 영역을 황해까지 넓혔다.[* 형제 간의 다툼을 마음 아파하던 주공은 귀환하면서 시를 짓는데 이 시, '아가위 나무(常棣)' 또한 시경에 실려 있다. 형제의 깊은 정리(情理)를 노래한 훌륭한 시. 그리고 [[시경]] 빈풍편에 실린 시는 대부분 문공과 관련된 시이다] 당시 중국 동부지역은 [[동이|이족(夷族)]]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환빠]]들의 떡밥이 된다. 이후에 호경 동쪽 낙수가 흐르는 땅에 도시를 세웠는데 이를 성주(成周)라고 했다. 지금의 [[낙양]]. 이후 어린 조카를 잘 보필하여 나라를 다스려 주나라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 뒤 조카 성왕이 성인이 되자 주공단은 성왕에게 친정을 하라며 '''자발적으로 섭정 자리를 내놓고 자신은 신하의 자리로 물러나는 [[정권교체]]의 미(美)'''를 보였다. 물론 이런 문공의 행동도 그가 순수하게 도덕군자여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주나라는 친족 기반의 봉건 체제라 국왕 본인의 권력은 한정되어 있었고, 위치 자체도 그다지 튼튼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왕위를 찬탈해 다른 제후들의 지지를 잃고 본인의 영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불안정한 왕위를 차지하느니, 영지를 유지하면서 제후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으며 실권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오히려 문공에겐 명분과 실리 모두를 얻는 방법이었다는 것. 그러나 훗날 권신들 대부분이 권력의 맛을 보고 왕위를 찬탈하거나, 문공처럼 어린 조카의 섭정을 맡았다가 권력욕을 버리지 못해 조카를 몰아내고 죽이는 [[패륜]]을 저지른 [[헌덕왕]], [[숙종(고려)|숙종]], [[세조(조선)|세조]]와 같은 사례들을 생각하자면[* 그나마 고려 숙종의 경우에는 조카인 헌종이 오래 살기 기대하기 힘든 사람이었고 숙종 본인은 통치를 그런 대로 잘한지라 그다지 욕을 먹지 않는다. 실제로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헌덕왕과 세조와는 달리 숙종은 헌종을 죽이지는 않았으며 헌종은 양위한 후 2년간 상왕으로 지내다 죽었는데 그가 평소 앓던 질환이 현대로 치면 1형 당뇨병으로 여겨지는 것을 보면 병사한 듯하다.] 문공의 결단은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여담으로 교육자로서는 매우 엄격했던 듯하며, 전통적인 동아시아적 교육관을 가진 사람들이 으레 그랬듯이 체벌을 옹호했다고 한다. 아니, 시기적으로 봤을 때 반대로 이러한 주공단의 태도가 전근대 동아시아 교육관 형성에 영향을 줬을지도. 상술한 장남, 노태공 백금이 제후가 된 뒤에도 자기가 봤을 때 영 아니다 싶으면 언제라도 회초리를 들었다고 한다. 노태공의 생몰연대를 알 수 없으니 당시 나이를 정확히 짐작할 수야 없겠지만 제후직을 수행할 정도면 어찌됐든 성인이었을 텐데 천자의 섭정이라는 사람이 장성한 자식에게 직접 매질을 했다는 것. 한번은 이유도 알려 주지 않고 입조할 때마다 3번이나 연거푸 매를 휘둘렀는데, 이게 오죽 심했는지 노태공이 그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쯤되니 너무 심하다 싶어 동생, [[위강숙]]이 말리자 그도 같이 팼다(...). 나중에 동생과 아들을 때린 이유가 밝혀지긴 밝혀지는데 그 이유라는 게 고작 '윗사람을 우러르지 않고 공손하게 행동하지 않아서.'였다고(...).[* 다만 이것을 당대 관점에서는 고작이라 하긴 뭣하다. 전근대에는 대부분이 권위적이고 수직적이었으며 특히 동북아시아는 예법에 따라 철저히 구분되어 있었기에 윗사람을 우러르지 않고 공손하게 대하지 않는 것은 오늘날의 '저런 버릇없는 놈 쯧쯧...' 정도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하다못해 노비나 평민같은 사람이라면 못배워먹은 놈이라 역시 예의도 차릴 줄 모른다고 넘어갈 수 있지 왕족씩이나 되는 사람이 윗사람에 대한 예의도 모르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더군다나 주나라는 종법질서에 근거해 왕위 계승, 지방 통치 등을 하는 나라였다.] 하여간 주공단의 이 고사는 "주공삼태(周公三笞)"라 불리며 보수적 교육관을 가진 이들에게 체벌을 정당화하는 하나의 근거[* '성인 주공단도 체벌을 긍정했다!'는 식으로....]로 오래도록 인용된다. == 후대의 평가 == '''[[공자]]가 매우 존경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논어]]에서도 그의 꿈을 꾼 지 오래되었다고 공자가 한탄하는 일화가 나온다.[* 《[[여씨춘추]]》에는 한술 더 떠서, 공자가 꿈에 주공 단을 만나 가르침을 받곤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를 전한다.] [[유교]]의 창시자를 공자가 아니라 주 문공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이유는 [[조카]]를 왕으로 앉히고서도 자기가 찬탈하지 않은 인의지사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삼감의 난이 [[상나라|상 왕조]] 부활이란 명분과 문공의 [[섭정]]을 핑계로 일어난 걸로 봐선 [[권신|왕위만 빼앗지 않았을 뿐, 주공이 주나라의 국정을 혼자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였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왕위찬탈자는 그만한 권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와 내 자손이 대대손손 왕이 되느냐 아니냐의 차이이다.] 그리고 문공의 이런 행적은 이후 [[군주]]의 종친 또는 유력자가 [[섭정]]을 명목으로 권력을 장악할 때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써먹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계유정난]] 직후의 [[세조(조선)|수양대군]]이다.] 또한 이와 동일한 관점에서 비슷하게 비판받는 것이 바로 [[선양]]이다. 본디 요가 순에게, 순이 우에게 전위한 것은 일종의 미담이었지만, 훗날 [[조비]]부터 [[태조(조선)|이성계]]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찬탈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써 악용됐다. '''다만 그렇다고 주공 단을 비판해서는 안 되는 것이, 후대에 문공 핑계를 대던 인간들이 진짜로 찬탈한 것과 달리 그는 어린 성왕을 해하지도 않았고 왕위를 빼앗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랬으면 추앙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문공은 조회를 볼 때면 친히 어린 성왕을 등에 업고 나타나 자신은 그저 왕의 대리인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하였으며, 성왕이 [[친정|장성하여 직접 정무를 보게 되자]]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심지어 관직에서 물러나라는 그의 요구에도 순순히 따르는 등 매우 모범적인 신하의 모습을 보였다.[* 다만 근시기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주공단이 그만한 찬사를 받을만큼 욕심이 없었다기보다는 주공단 스스로가 가진 권세가 그만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근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성왕은 즉위할 때 이미 성인이었다. 왕이 성인이라는 것은 왕의 숙부로서 권세를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족할만한 상황이고 그 이상은 취하기 어렵다. 삼감의 난 역시도 성왕이 직접 친정하였다 되어있다.] 하여튼 문공의 전철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전한]]을 멸하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인데, 왕망은 선양을 받기 직전 전한의 [[망국의 군주|마지막 황제]]인 어린 [[유자영]]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옛날 주공(周公)이 섭위했을 때에는 끝내 복벽하여 성왕(成王)에게 제위를 돌려 드렸는데 지금 나는 천제의 지엄한 명령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구려.'라고 짐짓 탄식했다고 한다. 물론 왕망 따위가 문공의 이름을 판 것 자체가 훌륭한 [[고인드립]]. 훗날 [[조선]] [[세조(조선)|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키며 똑같은 고인드립을 쳤고, [[단종(조선)|단종]]은 수양대군의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양대군을 주 문공이라 대접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안평대군|진짜]] [[금성대군|주공들]]과 함께 시해당하고 만다.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공융]]은 [[조조]]가 [[원소(삼국지)|원소]] 세력의 본거지를 함락하고 원씨 집안의 많은 여자들을 취하고 [[조비]]가 [[문소황후]]를 취하는 것을 보자 "[[무왕(주)|무왕]]은 [[주왕]]을 정벌한 후에 [[달기]]를 주공(周公)에게 주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 일로 세간의 비난을 두려워하던 조조는 공융이 자신을 두둔한다고 착각했다. 워낙에 박식한 사람이었기에 조조 자신이 모르는 경전에서 인용한 것이려니 하고 믿었던 것. 하지만 그 이후 조조가 아무리 책을 들춰 봐도 그런 고사를 찾을 수 없어 공융에게 어떤 책에 나온 이야기냐고 묻게 되었는데, 공융은 태연하게 "지금의 일을 살펴보니 과거에도 당연히 그랬을 것 같았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즉 조조에게 '''너는 역사와 고전을 모르는 무식한 새끼''' + '''남의 처 뺏어다 아들 주는 네놈의 윤리 의식이 레전드'''라고 2단으로 디스를 건 것이다. 조조가 공융이 후일 [[끔살]]을 시킨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런 일도 아예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흠 없는 인물로 추앙받는 주공 입장에서는 은나라를 말아먹은 주범으로 지목된 달기를 취하라는 제안을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 남경 함락 후, 즉 [[정난의 변]]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영락제|주체(영락제)]]와 [[방효유]]와의 대화에서도 문공과 성왕의 고사가 등장한다. 당연히 성왕은 주원장의 장손인 [[건문제]]를, 문공은 그 숙부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항목 참조. 사실 여기서는 주로 성왕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로 나오지만, 이 밖에도 [[상나라]]의 미개한 풍습을 교화하기 위해 애쓴 것도 있어서 그 때문에도 유학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사실 이건 상나라의 미개한 풍습 때문에 주나라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인데 이 풍습이라는 게 식인, 점복, 순장, 제사 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풍습의 공통점은 [[인명경시|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것인데]], [[아즈텍 제국|상나라는 이런 풍습에 사용하는 인간들을 주로 주변국에서 납치해왔던 것.]] 즉, 봉신연의에서 희백읍고를 죽여서 그 아비 희발(주문왕)에게 먹인 일도 완전히 허구는 아니라는 말이다.] 나중에 [[문화대혁명]] 당시에 [[4인방]]이 [[주은래]](周恩來)를 까고 싶었는데, 주은래는 알다시피 인민들의 지지를 받는 거물이었기에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하여 이름이 중의적일 수 있는 주 문공을 대신 깠다는 이야기가 있다. == 대중문화에서 == 코믹스 [[봉신연의(만화)|봉신연의]]에서는 깡마르고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깐깐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성우는 세노 마사히코/[[최원형]]([[선계전 봉신연의|선계전]]), [[타쿠미 야스아키]]([[패궁 봉신연의|패궁]]). [[하리센]]을 기본무기로 장착해 [[태공망]]이 헛소리를 한다 싶으면 그때마다 후려치는 [[츳코미]] 역을 담당. [[고우영]]의 [[고우영 십팔사략]]에서는 문공이 달기를 일부러 훈련시켜서 [[주왕]]을 타락시킨 걸로 그렸다. 달기가 문공의 수양딸로 등장하고, 문공도 내심 달기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달기는 문공이 자신을 일부러 훈련시켰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어서 은나라가 멸망한 직후 끌려온 자리에서 "시키신 일은 잘 처리했습니다. 조금 오래 걸렸지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문공은 역성혁명의 당위성을 지키기 위해서 냉혹하게 달기를 처단해 버린다. 달기가 처형될 때 뒤돌아 선 채 섬뜩한 눈빛을 낸다. == 기타 == * [[정몽주]]의 이름은 두 번 바뀌었는데 마지막 이름 정몽주의 주는 이 주공에서 따온 것이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사기)] [각주] [[분류:몰년 미상]][[분류:주나라의 제후]][[분류:역대제왕묘 배향자]][[분류:아시아의 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