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武士''' ''''무예에 종사하는 사람' '''으로 주로 주군 아래에서 군인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 단어 역사 == 무사란 사(士) [[계급]]으로서 무예를 익히는 직분을 맡은 자를 가리킨다. [[중국]] [[청동기 시대]]의 [[신분]] '士'에서 출발했다. 원래 '사(士)'는 [[전쟁]]에 [[수레]]([[전차]]) 1승(乘)을 낼 수 있는 [[계층]]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청동기 시대 중국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으며, 대읍(혹은 [[도읍]])을 다스리는 [[천자]]를 정점으로 작은 읍(혹은 국國)들에 [[제후]](公)들을 분봉해 주종관계를 성립시켰다. [[천자]]는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제사]]를 통해 [[자연]]의 [[질서]]까지 지배했는데, 이 [[제사]]에서 천자를 돕는 역할을 한 집단을 경(卿)이라고 했다. 각 읍들을 다스리는 제후들도 [[통치]]를 보좌하는 [[관료]] 집단 혹은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지방을 통치할 부하 영주 집단이 필요했으므로 그들을 가(家)에 분봉해 대부(大夫) 계급을 두었다. 그리고 대부들은 자신의 가를 통치하기 위해 사(士) 계급의 도움을 받았다. 이것이 중국의 [[봉건제도]]다. 자세한 것은 [[봉건제도]], [[상나라]], [[주나라]], [[춘추시대]], [[전국시대]] 각 항목 참고. 그런데 청동기 시대 중국에서는(다른 많은 청동기-도시국가와 마찬가지로) 전쟁은 전문 전차병-무사 집단에 의해 주도적으로 수행되었다.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무사 집단이 사-대부 집단으로, 최초의 사 집단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무사였다. 애초에 사(士) 라는 한자 자체가 전쟁과 제의에 쓰이던 주요 무기인 [[도끼]]를 형상화한 것이다. 잘 이해가 안간다면 90도로 돌려보자. [[할버드]] 같은 모양이 보이는가? === [[士]] 의미의 변모 === 그러던 것이 [[춘추시대]] 이래로 잦은 하극상과 전쟁으로[* 땅의 지배권을 통해 세력을 유지하던 공경대부 집단은 잦은 국경변동으로 근거지를 잃고 세력도 깡그리 잃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이 과정에서 [[군현제]]가 발생했다. 어제는 니 땅이고 오늘은 내 땅인데 내일은 누구 땅이 될지 모르는데 그런 땅을 섣불리 분봉했다가 전쟁에서 잃기라도 하면 휘하 [[사대부]]의 충성심을 보장할 수 없으니까 "정세가 안정될 때까지 대빵인 내가 임시로 맡아 둘게" 했던 데서 출발한 것. ] [[신분제]]가 동요하기 시작하고, [[전쟁]]이 장기화/대규모화하며 전차의 중요성은 이전보다 축소되었으며, 대신 [[보병]]의 대규모 동원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게 되었다. [[군현제]]의 실시로 봉지를 배정받지 못한 데다가, 전차의 몰락으로 전문 [[직업군인]]이자 지배자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사대부]]는 다른 일에 배치돼야만 했다. 바로 행정관료로의 변신이었다. 이것이 중국 청동기 시대의 '문치'의 시작이다. 이 문치를 통해 사(士)는 점점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문사(文士)로서의 [[선비]]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문치라고는 해도 [[군대]]의 유지에는 역시 하급 지휘자 역할을 할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 필요했고, 모든 사 계급이 문사의 형태로 이행한 것도 아니었다. == 여담 == 무사의 [[반대말]]은 '문사(文士)'이다. [[무인]], [[무신]], [[무관]]이라는 말과 뜻이 유사하다. 다만, '무신'이라는 말은 왕을 섬기는 신하라는 뉘앙스가 보다 강하며, '무관'은 무술 자체보다는 관직의 의미 혹은 그 관직에 몸을 담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무사, version=135)] [[분류:병과/고대~근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