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수권 - 해협)]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울돌목.png|width=100%]]}}}|| || {{{#000000 아리랑 3호 위성이 찍은 명량 수도의 사진.}}} || [목차] [clearfix] == 개요 == [[파일:울돌목.jpg]] {{{+1 鳴梁水道 / 鳴梁海峽}}} Myeongnyang channel [[전라남도]] [[해남군]]의 화원반도와 [[진도군]] 군내면 사이를 통과하는 [[수도(지리)|수도(水道)]]. 특히 [[진도대교]]가 설치된 부근은 명량 해협이라고도 한다.[* [[해협]](海峡)은 수도 중에서도 폭이 좁고 긴 수역을 뜻한다.] == 설명 == 다른 명칭으로는 ''''물이 우는 관문 길목' '''이라는 뜻인 '울돌목'이 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엄청난 조류를 자랑한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가장 짧으면서도 좁은 수로라서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썰물]] 때는 서해에서 남해 방향으로, [[밀물]] 때는 남해에서 서해 방향으로 [[조류]]가 매우 빠르게 흐른다. 그래서 이미 조선시대에도 태안 안흥량, 강화 손돌목, 장산곶과 함께 물길이 험한 곳으로 유명했다. [[사리#s-5]] 때 유속이 약 시속 10~12노트(대략 18.5~22.2km/h)로 매우 빠르다. 바로 이 [[급류]]와 맞서면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박살낸 해전이 [[명량 해전]]이고, 현대에 와서도 [[울돌목 조류 발전소]]를 만들어서 시간당 약 1000kW[* 이 정도면 1달에 300kWh를 사용하는 가구 2400가구나(시간당 1000 kW므로 1달에는 1000*24*30=72만 kWh가 된다) 대형 [[쇼핑몰]]의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의 전기를 공급한다. 또한 목포항 - 벽파항 - 추자도 - 제주도를 지나는 항로로 이용되며, 한국 최초의 사장교인 진도대교를 볼 수 있다. 너무 유속이 빨라 교각을 세울 수 없어 교각을 지상에 세운 사장교로 만들어야 했는데 현재 유속도 진도대교를 건설하면서 해협의 돌들을 치운 덕분에 그나마 많이 느려진 것이다. 다음 동영상을 보면 울돌목의 엄청난 물살을 볼 수 있으며 영화 《[[명량]]》에서 나온 회오리 물살이 실제로 울돌목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Pv22TzCbBc|울돌목 1]], [[https://www.youtube.com/watch?v=RJwIzWpDjh4|울돌목 2]], [[https://www.youtube.com/watch?v=nJUvHo1tXLA|울돌목 3]] 이와 비슷한 장소로는 [[노르웨이]]의 [[모스크스트라우멘]], 일본 [[나루토시]]의 나루토 해협의 나루토우즈시오가 있다. 《[[명량]]》이 바로 이 명량수도에서 벌어진 명량해전을 소재로 삼아서 제작되었다. == 울돌목이라는 이름의 유래 == 위에도 언급했듯이 순우리말로 울돌목이라고 부르는데, 명량(鳴梁)이 고유어 '울돌목'을 옮긴 것이다. 여기에서 '[[鳴]]'은 '울 명'이니까 '울'과 연결되며, 梁(들보 량)은 '훈몽자회' 등의 조선시대 어린이 한자 학습서에서 그 뜻과 음이 '돌 량'으로 나오니 '돌'과 연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돌'은 옛 가야어로 문(門)을 뜻하니, 결국 '(물이) 우는 관문'이라는 뜻이다. 마지막의 목은 골목, 길목 등의 그 목인데, 통로라는 뜻으로, 신체 부위의 목과 그 뜻이 통한다. 여기서 정말 몇 안 되는 가야어 자료가 있는데, [[삼국사기]]의 '加羅語謂門爲梁云(가라어위문위량운)'이라는 기록이다. 해석하면 "가라(가야)어로 '문'을 '량{{{[}}}돌{{{]}}}'이라고 한다.'인데, 즉 가야어에는 문(門)이라는 한자에 해당하는 고유어 '돌'이 있었던 것이다. 창문에 경첩과 비슷한 목적으로 다는 '돌쩌귀'도 이 '돌'에서 나왔다고 짐작한다. 제주방언에서도 출입구를 '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명량의 이칭은 나돌목인데 노량진(鷺梁津)의 노들과 통한다. 나들, 나드리는 방언으로 나루를 뜻하며 나돌은 나오고 들어간다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가야어 돌은 현대 우리말 들다와 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울돌목은 땅 사이가 움푹 파인 모양인 해협이다. 울돌목을 '울둠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둠벙'은 웅덩이나 웅덩이처럼 꺼진 지형, 또는 늪을 뜻하므로 울돌목을 울둠벙이라 칭한 듯하다. 한편 우스갯소리로는 '''울'''면서 '''돌'''아가는 길'''목'''을 뜻한다고 하기도 한다.~~[[임진왜란|왜군은 진짜 울면서 돌아갔다]]~~[* 거기다가 이순신은 [[맹골수도]]로 퇴각했기에 잡지도 못하고 돌아갔다.] == 기타 == 잘 알려졌다시피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모함으로 인한 파직과 고문, [[백의종군]][* 게다가 그 와중에 모친의 사망에도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칠천량 해전]]으로 그 동안 육성한 수군의 참패와 손실. [[삼도수군통제사]]로의 재임명과 고난 등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 곳 명량수도에서 [[명량대첩|가장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둔 대표적인 [[임진왜란]] 승전지 중의 하나로 명량수도가 시작되는 진도군 벽파진과 건너편 해남 문내면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56년 11월 29일 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李忠武公碧波津戰捷碑)가 세워졌다. 비문은 노산 [[이은상(시인)|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소전 [[손재형]]이 썼다. 근처에 1688년 세워진 보물 503호 명량대첩비(鳴梁大捷碑)도 있다.[* 일제강점기때 경복궁에 옮겨졌던 것을 1947년에 해남의 해안지역(문내면 학동리 1186-7번지)으로 옮겨 세웠다가 2011년 3월 원 설립지인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이순신|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빛나고 우뚝한 공을 새우신 곳이 여기 더니라. > >옥에서 풀려나와 삼도수군통제사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척을 겨우 거두어 일찍 군수로 임명되었던 진도땅 벽파진에 이르니 > >때는 공(公)이 53세 되던 정유년 8월 29일 이때 조정에서는 공에게 육전을 명했으나 공은 이에 대답하되 신에게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삽고 또 신이 죽지 않았으며 적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못하리이다. 하고 그대로 여기 이 바다를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16일 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 불고 맏아들 회(薈)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 9월 초 7일 적선 18척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 9일에도 적선 2척이 감포도(甘浦島)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살피다 쫓겨갔는데 공이 다시 생각한 바 있어 15일에 진(津)을 옮기자 바로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12척 작은 배로서 330척의 배를 모조리 무찌르니 어허 통쾌할사 만고에 깊이 빛날 [[명량대첩]]이여… >---- >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李忠武公碧波津戰捷碑) [[진도대교]] 옆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도 세워져 있으며, 근처에는 진도타워라는 전망대도 있는데 역시 충무공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 역할도 한다. == 관련 문서 == * [[맹골수도]] * [[한려수도]] * [[명량 해전]] * [[이순신]] == 둘러보기 == [include(틀:이순신)] [[분류:전라남도의 지리]][[분류:해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