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모자)] || [[파일:external/dfa3c9251c217e86ebcc179bc48767be1dace0ca1b740a58cd153d8d5a5f12f3.jpg|width=100%]] || || 박성호가 재현한 조선 군주의 9류 면류관 || || [[파일:면_류관.jpg|width=100%]] || || 중국 황제의 12류 면류관의 구조 || [목차] == 개요 == 면류관([[冕]][[旒]][[冠]])은 [[중국]]에서 유래해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의 각국 군주가 썼던 [[왕관]]의 일종이다. 복두나 [[익선관]]이 만들어지기 전인 고대 중국에서는 면류관만이 [[왕관]]이었으며 조회나 즉위식 등 공식 석상에서 착용하였다.[* 아무래도 류가 주렁주렁 달려서 활동하기에 매우 거추장스러운 형태이다보니 면류관만이 군주의 관이었던 고대에도 평상시에는 류가 없는 작변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면관(冕冠)·평천관(平天冠)이라고도 하며 보통 세트로 입는 [[곤복]]과 합쳐 면복이라고 부른다. 원래 고대 [[중국]] 왕조(상, 주)에서 숭배 대상인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쓰는 의복이었다. 하늘과의 소통, 즉 제사는 하늘의 대행자인 천자(天子)만이 주관할 수 있었는데 이때 제사장이 쓰는 모자가 면류관. 다시 말해 제정이 일치했던 시대로부터 유래된 유물이다. 따라서 [[유교]]의 영향력 아래 들어 있던 동양 문화권에서는 왕관 하면 곧 면류관이었다.[* 유교에 나오는 예법은 주나라 왕실 예법이므로.] 면류관은 보통 군주가 쓰지만 류의 개수나 곤복에 들어가는 무늬의 개수에 차등을 둬서 황족 또는 신하들도 쓸 수 있도록 허락한다.[* 가령 후한 시기 배경으로 한 중화권 삼국지 드라마를 보면 황제가 아닌 제후들도 면류관을 쓰고 나온다. 코에이 삼국지 게임에도 익주의 주목 유장이 작변을 쓴 일러스트가 있다.] 면은 위의 넓직한 판이라 달리 평천판이라 부른다. 류는 앞뒤에 드리워 얼굴을 가리는 구슬 꿴 발을 뜻하나, 류를 면류라고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 류를 드리우지 않고 판만 있는 작변(爵弁)이라는 모자도 있다. [[청나라]] 황제의 [[만주족]]식 사발형 관과 더불어 중국 황제관의 양대 스테레오타입이다. == 역사 == === 중국 === [[파일:4351414233425.jpg|width=400]] [[중국]] [[천자]]들이 평상시와 행사 때를 불문하고 항상 쓰던 왕관이 면류관이다. 제정분리가 안된 상고시대에 종교 지도자가 얼굴을 가리던 모자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고대에는 긴 구술로 천자의 얼굴을 가리는 왕관이였으나 시대가 갈수록 구슬의 길이가 짧아졌다. 시대가 흘러 [[당나라]] 대에 이르러서 천, 비단이나 말총 등으로 만들어 더 가벼운 복두관을 써, 평상시에는 복두관, 즉위식, 종묘 제사, 조회 등 국가적 행사 때에만 면류관을 썼다.[* 유럽에서도 [[롬바르디아 철관|철 왕관]], [[성 이슈트반 왕관]], [[삼중관]] 등 금속으로 된 왕관이 점점 예식용, 투구 등으로 밀려나면서 군주들이 평상시에는 천으로 된 모자를 쓰거나 아예 모자를 안 쓰게 된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풍조는 후대 왕조에도 이어져 [[송나라]] 때는 전각복두[* 일반 신하들이 쓰는 전각복두 [[사모]]와 달리 매미날개가 엄청나게 길다.]와 절상건[* 일반 복두와 달리 익선관처럼 매미날개가 위쪽을 향한다.]이, [[명나라]] 때는 익선관이 천자가 평상시에 쓰는 왕관이 되었다. 면류관 자체는 고대부터 시작되어 명나라 때까지 존속했지만 왕조마다 그 제도에 있어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가령 면류관에 늘어뜨리는 류에 들어간 구슬이 백옥인지 아니면 5가지 옥 또는 7가지 옥인지, 평천판의 길이가 얼마나 긴지, 관모에 꽂는 [[비녀]]가 옥잠인지 아니면 금잠인지 등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청나라]] 때는 중화풍의 면류관을 사용하지 않고 만주족의 전통 관을 썼지만[* [[거란]]족의 [[요나라]],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의 전신인 [[여진족]]의 [[금나라]]는 면류관을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만 요나라가 [[태조(요)|초대 황제]]부터 면류관을 쓴 반면 금나라는 [[희종(금)|3대 황제]]부터 비로소 면류관을 쓰기 시작했다. 심지어 정복왕조인 [[원나라]]조차 면류관을 썼다.] 청조 멸망 후 [[위안스카이]]가 [[홍헌제제]]를 통해 [[중화제국(1915~1916)|중화제국]]을 [[홍헌제제|선포]]하며 황제를 자칭했을 때 잠시 등장한 것이 마지막이다. 하지만 류가 없다.[[https://kknews.cc/zh-hk/history/z2g6p8p.html|중국 드라마 삼국연의(84부작)에 묘사되는 면류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Official_at_Yuan_Shikai%27s_1913_visit_to_the_Temple_of_Heaven.jpg|width=30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anli-Emperor.jpg|width=400]] || ||<:> [[위안스카이]]의 제천의식에 참여한 내무총장 주치치엔의 사진[* 위안스카이와는 용모도 다르고 위안스카이는 당시에 이미 수염이 하얗게 세었기 때문에 위안스카이의 사진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 찾아본 결과 당시 내무부총장 주치치엔(朱啓鈐)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류'가 없는 작변이기 때문에 군주라고 할 수 없다.] ||<:>[[명나라]] [[만력제]]의 초상화.[* 일부러 이렇게 그렸는데 '류'가 얼굴을 가리기 때문에 일부러 류를 돌려서 그린 것이다.] || [[파일:면류관.jpg]] [[파일:대진부 진시황제.jpg|width=420&height=650]] 중화권 매체에서 묘사되는 면류관은 보통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흔히 잘 알려진 [[명나라]] 및 [[조선]] 대 어진에서 보이는 머리를 완전히 뒤덮는 일반적인 형태이고 또 하나는 위에 사진처럼 머리를 거의 노출한 체 긴 형태로(장관) 된 면류관이다. 대부분 상투 위에 상투관처럼 사용하며 고정을 위해 비녀를 사용하였다. 보통 후자는 고대 왕조들을 묘사한 경우 군주들이 주로 착용하는 걸로 나온다.[* 신하들이 쓰는 진현관이나 금관은 머리를 다 덮는 형태인 것과 대조적으로 군주들은 상투관 형식의 면류관을 착용한다.][* 예시로 든 인물은 드라마 [[대진제국 시리즈]]에서 진 [[혜문왕]]을 열연한 푸다롱(부대룡)과 [[시황제]]를 맡은 장로일.] === 한국 === 한국에서 면류관의 상세한 기록은 조선 왕조 밖에 없다. 면류관은 주나라 예법에 기초한 유교식 예법이고, 설령 유교를 받아들였다 해도 한국 고유의 예법이 있는데 굳이 먼 서쪽 나라의 예법을 따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대~남북국 시대까지 면류관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고려 시대에 조금, 조선 시대로 들어서 아주 자세해진다. 삼국시대는 백령관, [[금관]] 등 철저히 한국식 관을 썼다. 이후 [[진덕여왕]]이 당나라 의복 제도를 수용하고 신라가 그대로 한국을 통일하면서 군주는 복두를 썼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면류관에 대해선 기록이 너무 적다. 발해도 당식 의복을 받아들인 만큼 면류관을 사용했을 수도 있지만 기록이 전무하다.] 신라 마지막 군주 경순왕은 어진에서 사각형 면류관을 쓰고 4개의 류가 달려있다. 또한 면류관 위에 해와 달을 표현한 듯한 문양이 있다. 중국식 면류관 기록은 고려 시대에서 점차 나타난다. 하지만 자세하진 않은데 우선 고려가 그닥 기록한다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은 점, 잦은 전쟁으로 그나마 있던 기록이 날아갔다는 점 때문이다. 경기도 연천 숭의전에 있는 태조 왕건의 [[어진]]은 앞이 9류, 뒤가 4류인 금색 면류관이다.[* 뒤가 4류인건 그냥 뒤 다섯 개가 가려져서 안 그린 것일지도 모른다.] 북한이 그린 어진엔 12류 면류관을 썼다.[* 정말 12류 면류관을 사용했는지는 미상이다.] 고려사 여복지에 당시의 기록이 나와있는데 최초의 기록이 [[정종(고려 10대)|정종]] 때 거란이 면복을 선물해 준 것이다. 이후 계속 타국에서 면류관과 면복을 선물 받는다. 고려 숙종이 동생 [[왕보(대방공)|대방공]]을 봉할 때 대방공의 복장 제도가 구장(九章)에 이르렀다는 언급으로 보아 숙종 대에 제후 중 공작급은 구장 면류관과 면복을 입은 듯 하다.[* 아니면 대방공이 말 그대로 제후니까 그냥 제후 지위의 비유일 수도 있다.] [[인종(고려)|인종]] 때 드디어 자국의 면류관 예법을 정한 기록이 나오는데 9류면을 사용한다고 정했다. 또한 신하들의 면류관도 정하였다. [[의종(고려)|의종]] 대에 의종고금례[*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한다.]를 만들어 면류관 예법을 정하는데 군주는 9류면을 쓰되 각 류에 12개의 구슬을 빨강, 하양, 파랑 색 순으로 꿰고, 뒤가 조금 들리고 앞이 살짝 내려 온 모습이다. 이 외에도 신하들의 면류관을 정했다. 최소 인종부터 고려 시대에는 관리들도 직급에 따라 면류관을 썼다. 그러다가 [[여몽전쟁]] 종전 이후 [[원 간섭기]]에 면류관이 폐지되어 몽골식 사발형 관모로 대체되었다. 이후 [[공민왕]]에 의해 면류관이 부활했는데, 이 때부터 신하들의 [[조복]]에는 [[금관#s-2|금관]][* 위의 금관과는 다르다. 위의 금관은 금으로 만들어진 관이지만 이 금관은 금칠을 했을 뿐이다.]을 쓰게 되면서 면류관은 군주, 왕태자의 전유물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익선관]]이 군주의 평상시 왕관으로 자리잡았고, 이때 면류관도 같이 들어왔는데 1403년에 [[명나라]]로부터 사여받은 이후 [[대한제국]] 때까지 면류관은 행사용으로만 사용했다. 결국 특별한 날에만 사용한다는 점에서 [[장교]] [[정복(의복)|정복]]과 의미가 비슷하다. 면류관을 쓸 때는 옷도 평상시의 [[곤룡포]]가 아니라 '[[곤복]]'이라는 더 복잡한 구조의 옷을 입는다. 각각 [[영친왕]]과 [[순종황제]]의 면류관 [[http://ncc.phinf.naver.net/ncc01/2012/3/9/280/03.jpg|#]], [[http://ncc.phinf.naver.net/ncc01/2012/10/15/218/01.jpg|#]] === 베트남 === ||<:>[[파일:external/5170b48ffe09e91c10f0c3ad83d9e56b8c6ad362f63db89586c4b5a011b880f0.jpg|width=400]] || ||<:>[[베트남]] [[응우옌 왕조]] [[카이딘 황제]]|| === 일본 ===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일본도 [[천황]]들은 면류관을 사용했다. 7세기 [[스이코 덴노]] 시절 관복을 정비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http://toshiko72.blogspot.kr/2012/06/blog-post_26.html|발표하는 학회 모습]]). [[정창원]]에서는 아직 면류관을 비롯한 관련 복식 유물들이 남아 있다고 하나 이를 묘사한 그림만 공개하였을 뿐 유물 자체는 일반에 공개한 적이 없다. 또 다른 면류관으로는 [[고메이 덴노]]의 것이 남아 공개하고 있다. 이 면류관들은 관 위에 햇살 모양 욱광이 뻗어나오는 태양 장식과 일본식 삼족오라고 비유할 수 있는 [[야타가라스]] 모양 장식이 있는 등 중국식 면류관과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중에 [[헤이안 시대]] 부터는 상류층 정장이 [[단령]]에서 유래한 [[소쿠타이]]와 [[칸무리]]가 주류가 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81px-Emperor_Godaigo.jpg|widh=40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83px-Benkan_emperor_komei.jpg]] || ||<:>면류관을 쓴 [[고다이고 덴노]][[https://ja.wikipedia.org/wiki/%E5%BE%8C%E9%86%8D%E9%86%90%E5%A4%A9%E7%9A%87|*]] 잘 보면 그냥 [[칸무리|스이에이노칸]] 위에 괴이한 평천판과 면류를 올려놓은 모양새.. ||<:>[[고메이 덴노]]가 생전에 쓰던 면류관.[[https://ja.wikipedia.org/wiki/%E5%86%95%E5%86%A0|*]] 자세히 보면 앞과 뒤에만 류가 있는 다른 면류관과는 달리 모든 방향으로 류가 나있다. || ||<:>[[파일:external/1.bp.blogspot.com/IMGP1830.jpg]] || ||<:>[[파일:external/2.bp.blogspot.com/yamato4.jpg]] || ||<:>재현 복원한 모습(위)와 당시 복식을 고증해 그린 그림(아래).[[http://toshiko72.blogspot.kr/2012/06/blog-post_26.html|*]] || == 구조 == 면류관의 구조를 보자면 관모 위에 '평천판(平天板)'을 얹어놓았으며 앞뒤로 '면류(冕旒)'라고 하는, 실에 구슬을 꿰어놓은 것을 매달아 만들었다. 그런데 무조건 아무렇게나 만드는 게 아니라 임금의 관모이니만큼 만드는 것부터도 격식이 중요했다. [[명나라]] 천자가 쓰는 면류관과 조선 군주가 쓰는 면류관은 면류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 명나라 천자의 면류관은 면류가 앞뒤로 각 12개씩 24개를 달아서 만들도록 되어 있는 반면 [[조선]] 군주의 면류관은 앞뒤로 각 9개씩 18개를 달아서 만든다. 면류에 꿰는 구슬도 아무렇게나 꿰는게 아니라 황제는 붉은색-백색-푸른색-누른색-검은색의 순서로 1줄당 12개를, 조선 군주는 1줄당 9개를 꿴다. 양 옆에는 간신배들의 아첨하는 소리로부터 귀를 보호한다는 의미로 청옥을 귀 부분에 늘어뜨린다. [[곤복]]도 명나라 황제는 12가지 무늬가 들어간 12장복, 조선 군주는 9가지 무늬가 들어간 9장복으로 차별되었다. 다만 명나라 [[황태자]]와 조선 [[왕세자]]같이 후계자들 한정으로는 동등하게(?) 8면류관[* 구슬은 붉은색, 백색, 푸른색 3개 색만 사용하고 1줄당 8개를 뀀.] 7장복을 입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들어선 [[청나라]]는 [[만주족]] 고유의 황제복을 도입했기 때문에 익선관과 장복은 폐지되었으나 조선에서는 [[대한제국]] 선포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대한제국에서는 황제국의 예를 따라 12면류관 12장복으로 승격되었다. 현재도 종묘제례 행사 재현 때 [[이원|황사손]] 또는 황사손을 대신해 황제 역을 하는 분은 12면류관 12장복을 입고 참석한다. [[삼국지 시리즈]]를 보면 [[헌제]]나 [[조환]] 등이 면류관을 쓰고 있다. 면류의 숫자를 세어보면 12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일:SSI_20190120185659_V.jpg|width=400]] ||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황제즉위식을 거행하는 [[이원(1962)|이원]] 황사손이 12면류관 12장복을 착용하고 있다. || == 가시 면류관 == [[파일:external/jarrettbanks.files.wordpress.com/crown-of-thorns.jpg|width=200]] [youtube(YM3NccPZ-RI)] >그때에 [[빌라도|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조롱하였다. 또 그분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때렸다.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외투를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 >[[마태오 복음서]] 27장 27-31절([[성경/번역#s-새번역 성경(가톨릭)|가톨릭 성경]]) >군사들은 [[예수]]님을 뜰 안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총독 관저였다. 그들은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그분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서는,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인사하기 시작하였다. 또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고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예수]]님께 절하였다.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자주색 옷을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 >[[마르코 복음서]] 15장 16-20절([[가톨릭]] [[성경]]) >군사들은 또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나서, 그분께 다가가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그분의 뺨을 쳐 댔다. > >[[요한 복음서]] 19장 2-3절([[가톨릭]] [[성경]]) [[성경]]에 의하면 [[예수]]가 메시아라는 소문이 퍼지자, [[예수]]를 잡아서 처형하려는 [[로마 제국]] 군인들은 예수를 조롱하기 위해 로마 제국 황제가 쓰는 [[월계관]]을 본따 가시나무로 만든 관을 예수의 머리에 강제로 씌워서 가혹행위를 했다. 이때 예수를 조롱하기 위해 '나자렛 사람 예수, 유다인들의 임금'('''I.N.R.I.'''[* Jesus Nazarenus, Rex Judæorum])이라는 [[명패]]를 [[십자가]]에 달았고, 예수가 피를 흘리며 강제로 쓴 가시관을 왕관이라 불렀다. 이후 동양 문화권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월계관을 면류관으로 번역한 것이다. [[복음서]] 원문에는 그냥 '가시 왕관'([[마르코 복음서]], [[요한 복음서]]에서는 ἀκάνθινος στέφανος(thorny crown).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στέφανος ἐξ ἀκανθῶν(crown made from thorns). [[루카 복음서]]에는 언급 없음)으로 나온다. [[요한묵시록]] 등에서 '면류관'으로 번역된 어휘 역시 원문에서는 그냥 στέφανος이다. 해당 가시나무는 지중해, 아라비아 원산의 대추나무의 일종인 ''Ziziphus spina-christi''로 여겨진다. 영칭은 '''Christ's-thorn jujube.''' == 가상 매체에서 == * [[악튜러스]] - [[악튜러스/아이템|가시면류관]] >구세주가 인간들에 의해 조롱당하며 죽어갈 때 인간들이 씌워 주었다는 가시나무로 만든 관. 신의 피가 배어있다. 게임 내에서 2개를 얻을 수 있다. 모든 캐릭터가 착용 가능한 최강의 투구 중 하나지만, 주로 마법사인 시즈와 아이가 하나씩 졸업템으로 쓰게 될 것이다. 마법력을 100이나 올려주며 성 속성 공격 연산을 무효화하기 때문에 성 속성 몬스터가 깽판을 치는 에덴에서 매우 유용하다. 1장의 황금사원 및 4장의 고대인의 방주에서 획득 가능. * [[리니지(게임)]] - [[https://lineage.plaync.com/powerbook/wiki/%EB%A9%B4%EB%A5%98%EA%B4%80|면류관]] 아덴 성, 윈다우드 성 등 성을 차지한 혈맹의 군주가 얻을 수 있다. 방어력 -3, WIS +1, CHA +2 효과를 지니고 있다. * [[엘소드]] - 마목의 면류관 == 같이 보기 == * [[곤복]] [[분류:왕관]][[분류:종교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