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益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후한]] 말의 인물. == 행적 == 중랑장으로 조정의 명을 받고 187년에 [[장순(후한)|장순]], [[장거]]가 반란을 일으키자 기도위 [[공손찬]]을 이끌고 반란군을 토벌했다. == 창작물에서 == 소설 조자룡 하북제패에서는 장순, 장거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가는 [[공손찬]]에게 멈추라고 불러세우면서 유주의 공손찬임을 확인하고, 낙양에서 보냈다고 소개하면서 공손찬을 기도위로 임명해 장순, 장거를 토벌하라는 조칙을 전한다. 공손찬이 어명을 받들자 축하한다면서 공손찬의 명성은 낙양에서도 유명하고 북군중후 [[추정(후한)|추정]]이 대장군 [[하진(삼국지)|하진]]과 중상시에게 공손찬의 서찰을 전달하고 기도위를 요청하면서 유주를 잘 지켜달라는 당부를 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조정에서 자신이 주장, 공손찬을 부장으로 삼아 진압하라 했지만 자신이 남양 출신이라 유주의 사정에 어둡기에 공손찬이 하자는 대로 해서 토벌에 임하기로 하겠다고 한다. 공손찬에게 [[유우(삼국지)|유우]]가 유주자사로 임명된 것을 전달했지만, 공손찬이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그 속 마음을 모르고 유우는 인자하고 좋은 분이라며 그 분이 부임할 수 있게 반란군을 몰아내자고 했다. 소설 상태창 삼국지에서는 장거가 죽고 삼군오환이 물러나자 반란군이 와해되었으니 유주 백성들을 위로하자고 했으나, 공손찬은 이를 무시해 장순을 추격하고 맹익은 중앙으로 돌아갔다. [[분류:후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