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서양 철학사/중세 철학)] [include(틀:인도-이란 계통의 종교)] || [[파일:1280px-ManichaeanElectaeKocho10thCentury.jpg|width=340]] || || 마니교 성직자를 그린 10세기 고창(투르판) 벽화. || [목차] [clearfix] == 개요 == {{{+1 [[摩]][[尼]][[教]] / Manichaeism}}} [[유대교]], [[영지주의]], [[기독교]], [[조로아스터교]]에다가 초창기 [[부파 불교]]와 [[자이나교]]의 수행방식까지 복합으로 섞어서 생긴 [[이란 계통의 종교]]. 창시자인 [[마니(종교인)|마니]](Mani)의 이름을 따서 마니교라고 한다. 참고로 [[마니아]](Mania)란 말이 이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극도로 [[이원론]]적이며, 중근동의 여러 종교를 전부 섞어서 복잡한 교리체계를 만들었다. 극도로 현세에 대해 부정적이며 일방적으로 내세지향적인 교리를 따랐다. 그로 인해 세력을 떨치지 못하고 몰락하고 말았다. 비슷한 짬뽕 종교인 [[시크교]]가 상무정신을 중시하고 이것저것 골고루 먹으라고 한 결과 시크교도들이 [[전투민족]]으로 부상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 역사 ==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종교인)|마니]]는 서기 [[216년]] (오늘날 [[이라크]] 영토인) [[파르티아 제국]]의 [[수도(행정구역)|수도]] [[크테시폰]] 인근에서 태어났다. 마니의 아버지는 본래 그 지역의 토착 [[다신교]]를 믿었지만, 아내가 마니를 임신했을 즈음 계시를 받고 ([[아랍어]] 기록에서 알 무그타실라[Al Mughtasila]라고 부른) 어떤 종교로 개종했다. 무스타실라는 '자기를 씻는 사람들'이란 뜻인데, [[4세기]]에 [[중동]] 인근의 세례 예식을 하는 공동체를 거의 다 흡수했다는 증언이 있다. 이 종교는 '알카사이'라는 사람이 창교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 이름은 중동 쪽의 종교문서에서는 툭하면 나오는 선지자이다. 실제로 알카사이가 무그타실라를 창립한 것이 아니라, 무그타실라가 자기네 역사를 (예전부터 유명한 이름인) 알카사이에 기탁했다고 보는 편이 맞는다.[* 서양 언어 쪽 자료에서는 무그타실라를 '알카사이의 종교'라는 뜻으로 Elchasaite, 또는 비슷한 파생형 단어로 지칭하곤 한다. 아니면 아랍어 단어를 음역해서 '무그타실라'라고 하거나...] 마니는 무그타실라를 배척했지만, 자신의 사상에서 무그타실라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했다. 마니가 태어나고 얼마 안돼서 크테시폰은 [[사산 왕조]]에게 함락당하고 곧 파르티아가 멸망했다. 12살 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에게 새로운 종교를 만들라는 계시를 받고 25살 때부터 자신이 살던 제국 파르티아의 주요한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를 비롯해 중동 각지에 퍼져 있던 [[기독교]]와 [[불교]], [[고대 그리스|그리스]] [[영지주의]] [[철학]] 및 [[유대교]]의 교리를 참조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인 마니교를 창시한다. [[240년]]에는 [[샤푸르 1세]]를 만나서 자신이 [[붓다]]의 후계자라고 공언하였는데, 샤푸르는 마니교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한다. 이후 [[호라산]]으로 여행하면서 그곳의 [[인도인]] [[상인]]들과 [[사제]]들에게 불교와 [[자이나교]] 교리와 수행방식을 공부하고, 또 이를 마니교 교리에 흡수(!)하여 마니교 교리를 완성했다. 마니는 교리서 여섯 권을 썼는데, 그 중에는 [[샤푸르 1세]]를 위해 집필해 헌정한 교리 요약서 <샤푸라칸>이 있다. 마니의 출생지와 생년월일을 상당히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는 것도 <샤푸라칸>에서 마니가 직접 설명했기 때문이다. 샤푸르 1세는 마니교로 개종하진 않았지만 한동안 마니교는 사산 제국 안팎에서 신자를 확보했다. 하지만 샤푸르 1세의 다다음 [[샤한샤|황제]]인 [[바흐람 1세]]부터 마니교 박해가 시작되어 마니도 이때 [[순교]]했다. 마니교도는 동서 양쪽으로 퍼져서 서쪽으로는 [[로마 제국]]이 있던 [[유럽]]과 [[북아프리카]]까지, 동쪽으로는 [[중화제국|중국]]까지 선교하였으나 [[위구르 제국]]에서 [[종교 국가|국교]]로 채택된 시절을 빼면 주류종교로 올라오지 못하였다. 마니교에서 갈라져나온 [[마즈다크교]]라는 원시 [[공산주의]] 사상을 강조하는 분파도 생겼다. 이들 마즈다크교도들은 배우자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샤한샤]]의 [[하렘]]에서 [[후궁]]들을 대거 납치하는 일도 저질렀다가 탄압을 받고 세력이 약해졌다. * [[채식주의]]를 강제했으나 마니교를 받아들인 [[소그드인]]들과 [[위구르족]]들도 잘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목초지가 많은 [[중앙아시아]]에서 채식주의는 리스크가 너무 컸기 때문인 듯.[* 다만 마니교를 믿은 위구르족들은 실제로 채소를 재배하기 위해 [[몽골 초원]]에다가 [[채소]]를 기를 [[밭]]을 일구었다고 한다.] * 유럽에서는 마니 사후를 전후로 마니교 [[선교사]]들이 활동하며 신자가 생겼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 [[로마 황제|황제]]에게 박해받았고,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기독교]]가 [[밀라노 칙령|공인]]된 후 [[테오도시우스 1세]]가 [[테살로니카 칙령|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며]] [[테오도시우스의 이교 박해|박해]]가 심해져 소멸했다. 또한 [[가톨릭]] [[성인(기독교)|성인]] [[아우구스티누스]]가 마니교를 버리고 가톨릭 교도가 된 일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더더욱 마니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 그 후 [[카타리파]]나 [[보고밀파]] 등이 유사 마니교로 간주되어 박해받았다. 보고밀파는 오늘날의 [[보스니아 반샤그|보스]][[보스니아 왕국|니아]] 일대에서 번성했으나 후에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고 나서 보고밀파 신도들이 대거 [[이슬람]]으로 개종함으로써 유럽의 마니교 계통 종교는 소멸하였다. * 발상지인 [[서아시아]]에서는 조로아스터교에 이어 [[이슬람]]과 함께 등장한 [[압바스 왕조]]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선교와 [[개종]] 노력을 펼쳤다. [[칼리파]] [[알 만수르]]의 주치의였던 하시브도 마니교 신도였으며, 칼리파 [[알 마문]] 제위 시기에는 마니교 [[신학]]과 문화가 [[페르시아인|페르시아계]] [[무슬림]]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유행했었다. 후에 아바스 왕조가 몰락하고 [[셀주크 제국]]이 이들에게 과도한 [[지즈야]]를 부과하면서 소멸했다. * [[중앙아시아]]에서는 마니교를 믿는 [[소그드인]]들의 영향으로 [[당나라]]에서도 전파되었으며, 당나라와 교역하던 [[위구르 제국]]에서 국교로 정했다. 위구르 제국은 당나라에서 마니교 선교사들을 데려갔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인]]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원래 [[유목민]]이었던 위구르인들은 마니교의 [[채식주의]] 영향으로 [[육식|고기를 주로 먹는 식생활]]에서 [[우유]]와 [[과일]]을 주로 먹는 식생활로 조금씩 바뀌어간 듯 하다. 동시에 [[신장 위구르 자치구|신장]] 지역을 정복한 [[위구르인]]들의 영향으로 불교를 믿고있던 [[토하라인]]들도 마니교를 믿기 시작했다.[* 이는 토하라인들이 위구르인들에게 동화되는 결과를 부른다.] [[10세기]]부터 이슬람 [[수피]]들이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를 선교하면서 마니교 교세가 잠식당하고 [[14세기]] [[위구르스탄]]을 장악하던 [[차가타이 칸국]]에서 이슬람을 국교로 정하면서 마니교는 위구리스탄에서도 자취를 감춘다. 마니교는 14세기를 끝으로 소멸하며 마니가 남긴 교리서 일부 및 중앙아시아에 흩어진 유적, [[백련교]]나 마니광불[* [[https://blog.xuite.net/a19651201290/twblog/127080060-%E9%81%93%E6%95%99+%E6%B7%A8%E6%98%8E%E6%B4%BE%E8%88%87%E6%91%A9%E5%B0%BC%E6%95%99|중국 푸젠성에 있는 유적. 마니교+불교+도교가 섞인 양식이다.]]][* [[http://www.geocities.co.jp/SilkRoad/9613/yomimono/mani1.html|1]], [[http://www.geocities.co.jp/SilkRoad/9613//yomimono/mani2.html|2]] [[푸젠성]] [[취안저우시]] 남쪽 진강 시에 있는 유적.]처럼 다른 종교에 흡수되거나 영향을 끼친 흔적만 남았다. === 중세 중국에서 === [[중국]]에 전래된 마니교의 역사에 대해서는 [[명교]] 문서를 참고. == 특징 == 최대 특징은 [[조로아스터교]]를 넘어서는 극한의 이원성으로, 조로아스터교 때부터 강조되던 선악의 대립을 넘어서 육체와 영혼의 대립까지 교리에 포함하니 철저한 자기단속과 철저한 구원론을 강조했다. 예컨대 마니교 계율 중에 '''모든 형상이 있는 것을 파괴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 이 원칙대로라면 [[목욕]]도 [[물]]의 형상을 파괴하기 때문에 할 수 없고, [[농사]]도 [[흙]]의 형상을 파괴하기 때문에 할 수 없다. --그래서 [[유목민]] 쪽으로 전파가 잘 되었던건가? 칸은 씨를 뿌리지 않는다. 하지만 칸께서는 사람의 형상은 잘 파괴하셨던 거 같은데...-- '''이 원칙을 그대로 지킨다면 마니교도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엄격하다는 [[자이나교]]의 교리가 겨우(?) '[[생명]]을 파괴하지 말라.'인데도 [[상업]] 정도 외에 제대로 발 붙일 업종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나마 지키는 게 좀 더 쉬운 같은 이란계 짬뽕종교 [[바하이교]]가 좀 더 세계에 파급되어 오늘날까지 살아남는다. 그래서 마니교에서는 [[수도자]]를 겸하는 [[성직자]]들에게는 이런 원칙을 최대한 요구하고 [[평신도]]에게는 조금 널널하게 풀어 주는 대신 ([[불교]]에서 [[승려]]들이 평신도 [[불자]]에게 [[공양]], [[시주]]를 받듯이) 평신도층이 성직자들을 먹여살리는 의무를 지도록 했다.[* 마니교에서 성직자는 '선택된 자', 평신도는 '듣는 자'로 불렸는데, [[기독교]]의 [[영지주의]] 분파인 [[카타리파]]에서도 성직자와 평신도를 완덕자(Perfecti), 평신도(Credentes)로 구분했다.] 또한 식생활에서는 [[채식]], 특히 [[과일]]을 요구했다. 마니교 최대 축일인 [[마니(종교인)|마니]]가 [[순교]]한 날[* 마니교는 이날을 기려 [[기독교]]에서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기리는 것과 비슷한 '베마' 축일을 지냈다.]에도 과일을 먹었다. 또 다른 특징은 그 [[막장]] 같은 짬뽕성이다. 창조 설화부터가 [[유대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불교]]에 등장하는 [[신]]과 [[예언자]], [[성인]]들을 [[Fate/Grand Order|마구마구 버무린 환상스러운 구성]]을 자랑하니 교리와 신을 베낀 [[사이비 종교|사이비]]라며 기성 종교에게 핍박받았다. 이러다 보니 마니교도는 [[밀교|비밀 종교집단]]이 되어 자신들끼리만 접촉하면서 살았는데, 이 또한 권력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위구르 제국]]을 제외하면 중앙 무대로는 거의 올라오지 못한 채 반체제 성향의 민간 종교[* 선악구도가 크게 작용하므로]로만 역사에서 존속하였다. == 교리 == 마니교의 [[세계관]]은 당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조로아스터교]], [[그리스 신화]]를 모두 합쳐 재구성했으므로 매우 복잡하고 방대하다. --여러가지를 짬뽕했으니 재미는 있을 듯-- 여기에 마니교의 필수요소인 빛과 어둠이라는 이원론적 선악 구도가 들어간다. 대략 정리하면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시대까지 세 번의 시기를 거치며 대립했고 그 과정에서 [[인류]]와[* 인류는 세 번째 시기에 탄생했다.] 세상이 창조되었다. 세 번째 대립기인 현대(마니교가 생길 무렵)에 빛의 영역을 다스리는 빛의 아버지가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기 위해 [[예수]]를 먼저 보냈는데 예수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온 사람이 마니라고 가르쳤다. 마니교의 예수관은 기독교에서 [[세례자 요한]]의 입지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며, 기독교에서 이단시하는 [[영지주의]]적 관점이 섞여서 기독교는 마니교를 [[이단/기독교|이단]]으로 보아 박해했다. 마니교의 [[창조론]]에 따르면 세상은 세 차례에 걸친 빛과 어둠의 싸움으로 인해 생겨났으며, 사람을 포함한 만물은 빛과 어둠의 속성이 섞여 있는데 마니교에선 영혼은 빛의 세력, 몸은 어둠의 세력이 만들었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채식과 금욕, 명상, 수행으로 어둠을 멀리하고 빛을 추구하며 타락에서 벗어나는 것이 마니교 교리의 핵심이다. 마니교는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종교인 중에서 스스로의 사유를 거쳐 자발적으로 개종하는 등의 파급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성경에서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내용으로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마니교는 [[금욕주의]]를 강조하기도 해서, 마니교의 고위 [[성직자]]는 [[독신]]으로 산다.[* 이 마니교의 영향을 받아서 서기 [[11세기]]부터 [[프랑스 왕국|프랑스]] 남부 알비 지방에 등장한 신흥 종교인 [[카타리파]]에서도 성직자들은 독신으로 살았는데, 카타리파에서는 물질 세계는 악마가 만들었기 때문에 물질 세계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고통으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아이는 낳지 않는 편이 좋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평신도]]들은 그런 교리를 그다지 엄격하게 지키지 않아서, 카타리파 교리를 믿으면서도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는 일이 많았다.] 마니교의 '마니'는 신의 최후의 예언자로서 신을 믿는 종교다. 따라서, 기독교와 같이 예수를 인정한다. 이렇게 신을 믿고, 예수, 부처, 조로아스터 등을 과거의 예언자로 이해했다. '마니'는 빛의 예언자라고 불리며, 빛을 선한 개념으로 여겼다. 이러한 빛과 어둠의 대립은 조로아스터교에서 빌려왔다. 하지만 기성 종교의 입장에선 마니교를 자기네 교리와 신을 표절한 도둑, 이단으로 여기고 박해하는 명분으로 쓰기 좋다는 약점도 있었다. 게다가 마니교는 보편 종교로서의 역할을 자처했다. 기존의 종교가 타 민족, 타 종교인을 박해하기 바빴던 것과는 달리 매우 평화적이기 때문에 이는 분명 매력적인 점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독특한 점은 '[[영지주의]]'이다. 대부분의 종교들이 수행을 하거나, 돈을 내거나, 선행을 하거나 하는 등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것을 행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달랐다. 마니교에서는 '지식'을 쌓을 수록 그에 비례해서 인간의 타락을 막아주고 빛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교리로 인해 마니교가 국교였던 [[중세]] [[고창회골]]의 [[위구르인]]들은 평범한 [[노예]]조차 [[계약서]]를 직접 작성할 수 있을 정도로 평균 교육 수준이 높아 “초원의 지식인층”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악이란 절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보았다. 다른 종교들처럼 마니교 교단도 성직자와 평신도로 계급이 나뉘었다. 마니교 성직자는 '선택받은 자', 평신도는 '듣는 자'로 불렸다. 성직자들은 다시 크게 4개의 계급으로 나뉘는데, 최고위 계급의 성직자는 창시자인 마니를 계승했다고 하여 '후계자'라고 불렸다. 그리고 후계자 밑으로 12명의 '[[사도]]'들이 있었는데, 이는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를 따랐던 [[12사도|12명의 사도]]들을 모방한 것이다. 사도들의 밑으로는 72명의 [[주교]]와 360명의 [[장로]]가 있었다. 마니교 성직자는 스스로 [[농사]]를 짓거나 [[돈]]을 버는 일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생계에 필요한 식량은 모두 평신도에게 의지했다. 평신도는 성직자와 달리 농사와 돈벌이가 허락되었다. 마니교 성직자들은 주로 [[수도원]]([[사원]])에 모여 자기들끼리 살았으며, 평신도들이 가져다주는 [[곡물]]과 [[채소]]와 [[과일]] 등으로 구성된 식사를 하루에 한 번, 해가 진 이후에 먹었다.[* 출처: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도현신 지음/서해문집/80~82쪽] == 영향 == 창시자이자 교주였던 [[마니(종교인)|마니]]가 [[바흐람 1세]] 때 [[이단]]으로 잡혀죽은 후의 역사 자체가 피압의 역사라 할 종교지만, 이란을 벗어난 국외에서는 민간에서나마 크게 유행해 동서 종교에 모두 큰 영향을 줬다. 지금은 사라진 종교지만 영향력이 생각보다 매우 크다.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지역, [[인도]], [[중국]], [[한국]]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구대륙]] 전체를 휩쓴 종교다. [[중세 시대]]의 전파력 치고는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그 어떤 메이저 종교보다 파급력은 더 앞서나갔다. 이는 중앙유라시아의 교역 시스템에 힘 입은 바가 큰데, '''중앙유라시아 각지에서 교역을 하는 [[소그드인]], [[튀르크인]] 교역상들 입장에서 마니교 교리를 배워두면 유럽이나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기독교인]]처럼 행세할 수 있고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불자]]처럼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마니교를 적극적으로 차용할 수 밖에 없었다.''' 마니교 신자가 많았던 [[위구르족]]들은 [[몽골 제국]] 시대에 여러 종교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이유로 [[행정]] 실무 [[관료]]나 [[외교관]]으로 각광받았다. 서방으로는 [[3세기]] 이후에 [[로마 제국]]에서 상당 기간 융성했다. [[기독교]]의 [[교부]], [[성인(기독교)|성인]]으로서 추앙받는 [[아우구스티누스|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도 한때 마니교 신자였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로 개종한 후 마니교를 비판했다. 그 후에도 선악을 극단으로 강조하고 구원을 중시하는 [[중세]]의 [[이단/기독교|이단]] 교파는 대개 마니교에 많이 영향받았다.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것이 [[9세기]] [[동로마]]에서 유행했던 [[바오로파]], [[보고밀파]], [[11세기]]·[[12세기]]에 [[서유럽]]에 퍼진 [[카타리파]]로 이들은 마니교와 비슷하게 세상은 빛과 어둠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고, 인간은 어둠이 아닌 빛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교리였다. [[중동]]에서는 마니교 신자들과 [[이슬람]] [[신학자]]들과의 토론과 논쟁이 결국 [[무타질라 학파]]라는 이슬람 사변철학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영지주의]]나 동양 철학에 지식이 있는 마니교 성직자들이 이슬람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자꾸 이기자 불안감을 느낀 [[무슬림]] 학자들이 이들과 맞서기 위해 [[고대 그리스]] [[철학]]과 [[중세]] 인도 [[과학]]을 공부하고 이슬람 교리에 접목시키면서[* 특히 [[유일신]] 사상과 가깝고 인간 형태의 신을 부정하고 무형의 신을 주장한 [[신플라톤주의]]가 무슬림 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결국 이슬람의 사변 철학 학파가 생겨난 것. 재밌는 사실인데 마니교가 박해받아 사라지고 나서 무타질라 학파도 필요가 다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단 취급을 받고 사실상 사멸했다.[* 다만 영향력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 오늘날의 [[쉬아파]] [[12 이맘파]] 교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담으로 [[영문 위키]]에 [[무신론|Atheism]] 항목에 나오는 중세 [[아랍]], [[페르시아인]] [[무신론자]]들은 사실 오늘날과 같은 개념의 [[무신론자]]가 아닌 마니교 신자였다. 이들은 마니교의 신학적 관점에서 이슬람 신학을 비판했는데, 마니교 신학은 실전되고 이들이 이슬람 신학을 비판한 내용만 남아 이들이 무신론자였다는 오해가 생긴 것. 실제로 [[아랍어]]나 [[페르시아어]]로 마니교 신자를 칭하는 멸칭인 진디끄(Zindiq زنديق)[* 복수형은 잔다까(Zandaqa) 원래는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 마니교 신자들을 낮춰 부르는 멸칭이었다.]는 오늘날 무신론자와 동의어로 쓰인다. 동방으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까지 뻗어나간 후 민간 신앙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먼저 [[위구르 제국]]을 위시해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잠시 국교로 정해졌던 적이 있다. 중국식 마니교는 [[당나라]] 9세기 경에 시작된 것으로 본다. [[북송]] 말에 [[강남(중국)|강남]]에서 반란한 [[방랍]]의 집단에 [[채식주의|채식주의자]]로 [[마귀]]를 섬긴다는 끽채사마교[* 끽채사마(喫菜事魔)란 단어가 '채소를 먹고 마귀를 섬긴다.'는 뜻이다. 사(事)에 '받든다, 섬긴다.'는 뜻도 있어서 사마(事魔)가 '마귀를 섬긴다.'는 의미이다.] 신자가 포함됐던 일변으로 마니교는 [[미륵|미륵 신앙]]과 합해지면서 소위 [[명교]], 혹은 [[백련교]]로 발전하기도 했는데 [[15세기]] 후 마니교도는 소멸했으나 백련교도는 [[19세기]]까지 [[청나라|청]]을 괴롭힐 정도로 크게 융성했다. 그밖에 오늘날 중국 남부인 [[절강성]] 온주의 창남현(蒼南縣)의 연해지방인 염정(炎亭), 괄산(括山) 일대에는 천 년 동안이나 독특한 풍습이 전해져 내려온다. 하얀 옷을 입고[* 마니교에서는 [[하얀색]]이 빛을 상징하는 좋은 색이라고 여겨서 성직자들이 하얀 옷과 모자를 착용했다. 원래 [[중국인]]들은 하얀색이 [[죽음]]을 상징하는 불길한 색이라고 여겨 꺼린 것과는 정반대.] 죽은 자가 좋은 세상으로 가도록 기원한다든지, 일부 나이든 [[어민]]들은 매일 아침에 반드시 [[밥]]을 세 입 먹을 때까지는 [[채소]] 반찬을 먹고, 그 후에 [[고기]] 요리를 먹는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일부 [[노인]]들은 지금까지도 아침에는 [[태양]]에 절을 하고, 저녁에는 [[달]]에 절을 한다. 연구자들은 이 풍습이 바로 어민들이 마니교를 믿은 흔적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마니교의 교리가 약간 변형되기도 했는데, 원래는 [[육식]]을 절대 금지했지만[* 마니교에서는 [[고기]]와 [[생선]]과 [[술]]이 [[영혼]]을 더럽히는 부정한 [[음식]]이라고 여겨서, 신도들한테 결코 먹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마니교도들은 [[곡물]]과 채소, [[과일]], [[우유]], 맹물만 먹을 수 있었다. 출처: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도현신 지음/서해문집/77쪽] 마니교를 믿는 [[원저우|온주]]의 어민들은 힘든 [[어업|고기잡이]]와 [[선원|뱃일]]을 하기 때문에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육식을 허용하기로 교리가 바뀌었다는 견해다. [[https://blog.daum.net/shanghaicrab/13079645|출처]] == 기타 == [[십자군 전쟁]] 문서에서도 나온 <아랍에서 보는 십자군>으로 유명한 작가 아민 말루프는 <마니>라는 소설(이거 역시 [[한국]]에서 정발되었었다.)을 썼는데 말루프 자신이 [[레바논]] 태생이며 [[프랑스]]에서 거주중인 [[가톨릭]] 신도이지만[* 아버지가 레바논의 [[동방 가톨릭 교회|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공동체 출신으로 대대로 [[아랍계 기독교인|기독교 집안]]이었다.] 마니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비난도 했지만 서문에서는 다양한 종교 장점을 넣으며 노력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을 넣기도 했다. 사실 이 사람은 종교 연구도 하면서 [[데바닷타]](국내에도 정발됨)라는 소설을 썼는데 이 소설에서 데바닷타에 대하여 좀 좋은 면도 있다고 봤으나. 광신적인 한계로 가서 스스로 파멸하니 안타깝다고 결국 결말이나 그 근본주의에 대해서는 비난했다. 그렇지만 서문에서 패자이기에 더더욱 기록에서 불리하게, 왜곡되어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쓸 정도로 다양한 종교에 대하여 연구하고 소설을 쓰며 중립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 마니에서도 마니교에 대하여 긍정적인 부분과 같이 패자로 사라졌기에 데바닷타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남게 된 게 크며 [[매니악]]이라는 그리 좋지 않은 말 유래가 되었다고 의견을 썼다. 실제 마니교와는 상관없지만,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의 교주 이름이 [[이만희(종교인)|이'''만희''']]라서 그 종교가 마니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자신을 보혜사라고 자칭하는 측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긴하다.] 그래서 [[인터넷]]에 마니교를 검색하면 실존했던 마니교에 대한 글과 신천지를 이만희교라고 비판하는 글이 섞여 나온다. 그렇다보니 신천지의 멸칭으로서의 마니교와 실존하는 마니교를 헷갈려하는 경우도 있다. [[백괴사전]]에서 마니교는 신천지를 가리킨다. --만희교-- [[김용]]의 [[의천도룡기]]에도 마니교를 모티브로 삼은 [[명교]]가 주요 세외무림 세력으로 등장해 적지 않은 비중을 보여준다.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는 Old Gods DLC에서 [[조로아스터교]]의 [[이단]]으로 추가됐고 Jade Dragon에서 전용 종교 지도자, 종교 기사단, 베마 축제 이벤트가 생겼다. 게임에서는 역사대로 초기 시나리오에서 위구르족과 키르기스족 유목민들이 마니교를 믿는다. [[Europa Universalis IV]]는 마니교가 없지만 CK2에서 마니교로 플레이하던 세이브 파일을 컨버트하면 마니교로 플레이할 수 있다. EU4에서 마니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상징물에 기독교 십자가가 달린 문장을 갖는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마니산]], 인천 광역버스 업체 [[마니교통]]이랑 한자 표기가 같다. == 관련 문서 == * [[종교 관련 정보]] [각주] [[분류:고대 로마의 종교]][[분류:이란 계통의 종교]][[분류:사산 왕조]][[분류:위구르족]][[분류:개별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