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크로아티아의 행정구역)] ||<-2>|| ||<-2> '''{{{+1 리예카}}}'''[br]'''Rijeka''' || ||<-2> [include(틀:지도,장소=Rijeka,너비=100%,높이=100%)] || [목차] [clearfix] == 개요 == [[크로아티아]] 서북부 프리모레고르스키코타르 주(Primorsko-goranska županija)의 도시이자 [[주도(행정구역)|주도]]이자 [[스플리트]]의 뒤를 잇는 크로아티아 제2의 [[무역항]]. [[아드리아 해]] 연안 [[크바르네르 만]]과 접하고 있다. == 언어별 표기 == || [[크로아티아어]] || Rijeka || || [[이탈리아어]] || Fiume (피우메) || || [[헝가리어]] || Fiume (피우메) || || [[독일어]] || Sankt Veit am Flaum (장크트바이트암플라움) || || [[슬로베니아어]] || Reka (레카) || == 역사 == 과거에는 [[켈트족]]이 거주하던 타르사티카(Tharsatica)였으며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로마 제국]]이 이곳을 재건하면서 플루멘(Flumen)이라는 [[라틴어]] 지명을 붙였다. 동서로마의 분열 당시 [[서로마 제국]]에 속했으며,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동고트|동고트족]], [[동로마 제국]], [[랑고바르드족]], [[아바르 칸국]]의 지배를 받았다. 7세기 무렵 [[크로아티아인]]이 이곳을 '''성 비투스의 강'''(Rika svetoga Vida)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이 일대에 정착했다. 799년 [[샤를마뉴]]의 공격을 받았고 결국 [[크로아티아 공국]]은 [[프랑크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925년부터 [[크로아트 왕국|중세 크로아티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고, 1102년부터 크로아티아 왕국이 [[헝가리 왕국]]과 [[동군연합]]을 이루며 헝가리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아르파드 왕조 말기에 헝가리 왕국이 붕괴 직전까지 몰린데다 [[트란실바니아]] 개척을 위해 [[독일인]]을 헝가리로 많이 불러들인 여파로 리예카 일대는 [[신성 로마 제국]]과 가까운 특성상 독일계 귀족들이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발제(Walsee) 가문은 1300년부터 1466년까지 리예카의 영주 노릇을 했다. 1466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3세]]가 매입하면서 [[오스트리아 대공국]]에 속하게 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는 [[나폴레옹 전쟁]] 중인 1809~1813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1918년까지 계속되었다. [[이탈리아 전쟁]]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 해군이 급습해 도시를 황폐화시켰으나 곧 회복했으며, 이후 [[오스만 제국]]의 수 차례 공격에도 견뎌냈다. 16세기 중후반부터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들어섰고 1719년 [[카를 6세]]는 [[트리에스테 제국자유도시|트리에스테]]와 더불어 리예카를 자유도시로 선언했다. 1725년에는 [[빈(오스트리아)|빈]]에서 [[류블랴나|라이바흐]]를 거쳐 트리에스테와 리예카로 이어지는 무역로가 건설되었다. 1779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항구]]가 없던 헝가리를 위해 헝가리에 넘겨준 이후로는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에 속했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 잠시 일리리아 속주에 속했으나 [[오스트리아 제국]]이 곧 회복했고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의 해군기지와 해군사관학교가 들어서면서 해군 거점도시로 발전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말엽에 들어서는 헝가리의 유일한 무역항이라는 입지에 힘입어 더더욱 발전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붕괴되었고 [[이탈리아인]]이 많이 거주하는 점을 노린 [[이탈리아 왕국]]과 [[크로아티아 왕국]]을 흡수한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분쟁 지역이 되었다. 1920년 라팔로 조약이 체결되어 [[피우메 자유국]]이라는 이름의 독립 공화국이 들어섰으나, 1924년 [[이탈리아 왕국군]]이 들어서 피우메 자유국은 해체되었고 결국 로마 조약으로 도시 대부분을 이탈리아가 차지하되, 북부의 [[크로아티아어]], [[슬로베니아어]] 화자가 많은 지역은 유고슬라비아로 귀속되었다. 이때 이탈리아에서는 리예카를 피우메로,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수샤크(Sušak)로 불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이탈리아 왕국군]]과 [[유고슬라비아군]]의 격전지가 되었고 전후 완전히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영토가 되었다. [[티토]] 치하의 유고슬라비아에서 항구 시설이 확충되어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각종 공업이 더욱 발달했다. [[유고 내전]] 이후 크로아티아에 속해 있다. == 인구와 사회 == 2021년 기준 약 11만 명으로 점점 감소세에 있다. 인구의 80% 이상은 [[크로아티아인]]이며 소수의 [[세르비아인]], [[보슈냐크인]], [[이탈리아인]], [[슬로베니아인]], [[헝가리인]]이 있다. 1911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마지막으로 시행한 인구조사에서는 약 5만 명의 인구였는데 절반이 이탈리아인이었고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헝가리인, 독일인 순이었다. 그외에 당시 오헝제국의 인종이었던 [[체코인]], [[루마니아인]], [[폴란드인]], 세르비아인이 [[소수민족]]이었다. == 볼거리 == 해변이 아름다운 관광지이자 [[HNK 리예카]]의 연고지이다. 크로아티아 해양 박물관이 유명하며 트르사트 구역에는 트르사트 성과 [[합스부르크 제국]] 시기에 오스만 제국에 맞섰던 크로아티아의 귀족 가문인 프랑코판 가문의 사람들이 다수 묻힌 트르사트 성모 교회가 있다. 근처에는 [[오파티야]]가 있다. 날이 맑으면 리예카 무역항에서 도시가 보일 정도로 가까우며 버스 터미널에서 30분이면 왕복으로 다녀올 수 있다. == 기타 == 리예카라는 지명은 [[강]](江)에서 유래했다. 이탈리아어인 피우메도 마찬가지. [[분류:크로아티아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