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후삼국시대 호족들)] ||||<:><#191970> '''{{{#white 정주 대호족[br]고려 태조의 장인[br]{{{+1 류천궁 | 柳天弓}}}}}}''' || ||<#191970> '''{{{#white 향직 품계}}}''' ||삼중대광(三重大匡) || ||<:><#191970> '''{{{#white 칭호}}}''' ||장자(長者) || ||<:><#191970> '''{{{#white 본관}}}''' ||정주 [[류(성씨)|류씨]](貞州 柳氏) || ||<:><#191970> '''{{{#white 이름}}}''' ||천궁(天弓) || ||<:><#191970> '''{{{#white 딸}}}''' ||[[신혜왕후]] || ||<:><#191970> '''{{{#white 생몰연도}}}''' ||? ~ ? || [목차] [clearfix] == 개요 == [[신라]] 말, [[후삼국시대]]의 [[호족(한국사)|호족]]. [[태조(고려)|태조]]의 제1비 [[신혜왕후]] 류씨의 아버지다. == 생애 == [[진성여왕]] 시대에 이르면 [[경주시|서라벌]]의 신라 조정이 지방에서 세금을 걷지 못할 정도로 행정력이 약해지게 되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호족들이 할거하게 된다. 류천궁은 [[개성시|송악]]의 [[왕륭]], [[평산군|평주]]의 [[박지윤(고려)|박지윤]], [[황주군|황주]]의 [[황보제공]]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패서 지방의 호족이었는데 그가 거점으로 삼은 정주(貞州)는 지금의 [[평안북도]] [[정주시]]가 아니라[* 한자가 다르다.] [[경기도]] [[파주시]] [[교하동|교하]] 혹은 [[개풍군]]으로 추정된다. 원래 북원([[원주시]])의 호족 [[양길]]의 객장이었던 [[궁예]]는 [[강릉시|명주]] 등 [[강원도]] 영토를 기반으로 양길에 대항해 독립했는데 송악의 왕륭은 궁예에 투항한다. 왕륭의 아들 [[태조(고려)|왕건]]도 궁예의 장수가 되어 [[강화도]] 등 서해안을 점령하기 위해 출진했는데 류천궁은 왕건의 군대를 후하게 대접했고 딸에게 왕건과 잠자리를 가지게 한다. 왕건이 떠난 후 딸은 지조를 지키기 위해 [[비구니]]가 되었고 왕건이 이 사실을 듣고 그녀를 데려와 혼인하여 왕건의 제1비 [[신혜왕후]]가 된다. 류천궁은 해상 [[무역]]을 통해 얻은 선박 기술과 지식을 적극적으로 왕건에게 제공한다. 이후 정주항은 왕건이 수군 대장군이 되어 금성([[나주시]])을 정벌하기 위해 선박을 만들고 수군을 훈련하는 전초 기지가 된다. 고려 [[건국]] 이후 건국공신으로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르고 고려 초기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 대중매체 == * 2000년작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김진해]]가 연기했다. 본명보다는 '유 장자'[* 초기에는 유천궁이라고 자막이 나왔는데 나중에는 유 장자라고 자막이 뜬다.]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데 장자(長者)는 가문의 가장 큰 어른을 일컫는 말이다. 같은 드라마에 나온 [[강 장자]]도 극중에서 본명 대신 장자로 더 많이 불렸다. * 2002년작 KBS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는 [[김수일]]이 연기했다. 태조 왕건 사망 이후에도 나오고 나레이션의 설명에 따르면 90세가 넘었다고 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장화왕후]]의 아버지 [[오다련]]은 사망했는지[* 944년에 죽었다고 한다.] 나오지 않고 정종과 광종의 친할아버지인 [[유긍달]]이 등장하는데 정종과 광종은 유천궁을 외조부님이라고 불러준다. 극 중 최연장자로 등장하는 탓에 경순왕도 높여 대우하고 장화왕후 앞에서도 전혀 꿀리지 않게 무시 못하는 수준이다. [[분류:후삼국시대/인물]][[분류:정주 류씨]][[분류:몰년 미상]][[분류:태조 왕건/등장인물]][[분류:고려의 외척]][[분류: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