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기원전 2세기 집정관]][[분류:로마 공화국 집정관]][[분류:기원전 154년 사망]][[분류:로마 출신 인물]] [include(틀:역대 로마 집정관/기원전 2세기)] ||||<#800080> {{{#ffffff {{{+3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br]{{{-1 [[라틴어]]: Lucius Postumius Albinus }}} }}} || ||<#800080> {{{#ffffff '''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154년 || ||<#800080> {{{#ffffff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800080> {{{#ffffff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800080> {{{#ffffff '''지위''' }}} ||[[파트리키]] || ||<#800080> {{{#ffffff '''국가''' }}} ||[[로마 공화정]] || ||<#800080> {{{#ffffff '''가족''' }}}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기원전 234년 집정관)|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조부)[br][[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기원전 186년 집정관)|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아버지)[br]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아들) || ||||<#800080> {{{#ffffff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800080> {{{#ffffff '''임기''' }}} || 기원전 154년 || ||<#800080> {{{#ffffff '''전임''' }}}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br][[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기원전 166년 집정관)|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 ||<#800080> {{{#ffffff '''동기''' }}} || [[퀸투스 오피미우스]] || ||<#800080> {{{#ffffff '''후임''' }}} || [[퀸투스 오피미우스]][br][[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기원전 154년 집정관)|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생애 == 고대 로마의 [[파트리키]] 가문인 포스투미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조부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기원전 234년 집정관)|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는 기원전 234년과 229년 집정관을 역임했고, 기원전 215년 3번째로 집정관에 선임되었으나 집정관 취임 전에 [[실바 리타나 전투]]에서 보이족의 습격으로 전사했다. 아버지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기원전 186년 집정관)|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는 기원전 186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기원전 168년 [[유피테르]]의 [[플라멘]]으로 발탁되었고, 기원전 161년 수석 [[조영관]]을 맡아 동료 조용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눌라와 함께 [[루디 로마니]]와 메갈레시아 경기를 조직했으며, 로마 극작가 푸블리우스 테렌티우스 아페르의 희곡들을 공연했다. 기원전 159년 티볼리인들에 대한 원로원의 법령에 서명했다. 이때 두 집정관들이 서명한 직후에 세번째로 서명한 것을 볼 때 [[법무관]]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다. 기원전 154년 [[퀸투스 오피미우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는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자인 아카이우스와 필리스쿠스를 젊은이들에게 "쾌락을 설교했다"는 이유로 추방했다. 그러나 그는 취임한지 얼마 안 되어 사망했다. 율리우스 옵시퀸스에 따르면, 불길한 징조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방에 갔다가 질병에 걸려 사망했다고 한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에 따르면, 평민 아내 푸블리키아에게 독살당했고, 푸블리키아는 범행을 들통당해 산채로 매장당했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두 기록 모두 이상한 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유피테르의 플라멘은 로마시를 벗어나는 게 금지되었고, 오직 귀족 여성만 결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기원전 2세기 무렵 플라멘의 제약이 완화되었음을 암시한다고 추정한다. 아무튼 그가 사망한 후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기원전 154년 집정관)|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가 보결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아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는 모종의 시기에 화폐 주조관을 맡아서 아버지가 플라멘을 맡았음을 기념하는 동전을 주조했고, 나중에 아버지처럼 유피테르의 플라멘으로 발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