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로마 제국 집정관]][[분류:기원전 1세기 집정관]][[분류:20년 사망]] [include(틀:역대 로마 집정관/기원전 1세기)] |||| {{{+3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br]{{{-1 [[라틴어]]: Lucius Volusius Saturninus}}} || || '''생몰년도''' ||미상 ~ 서기 20년 || ||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또는 에트루리아 지방의 도시 페로니아) || || '''사망지''' ||[[로마 제국]] 로마 || || '''지위''' ||[[노빌레스]] || || '''국가'''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 || || '''가족''' ||퀸투스 볼루시우스(아버지)[br]클라우디아(어머니)[br]퀸투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남자형제)[br]볼루시아 사트로니나(여자형제)[br][[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기원전 42년 법무관)|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외삼촌)[br][[티베리우스]](친척)[br][[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친척) || || '''배우자''' ||노니아 폴라 || || '''자녀''' ||볼루시아 라티나 사투르니나[* [[마르쿠스 롤리우스]]의 아내.][br]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2년(보결)[* 기원전 12년 정규 집정관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사임 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추천으로 재임.] || || '''전임''' ||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 || '''동기''' ||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 || '''후임''' ||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br]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마 제국]] [[집정관]], 총독. 보통 '''루키우스 볼루시우스'''로 고대기록에서 언급된 인물로, 고대 [[에트루리아]] 귀족 후예인 볼루시우스 가문 출신의 원로원 의원이다. 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사촌형으로, 사위는 사촌동생 티베리우스와 철천지 원수 [[마르쿠스 롤리우스]]의 아들 마르쿠스 롤리우스였다. == 생애 == [[플레브스]] 계급이나, 로마에게 편입되기 전부터 [[에트루리아]]의 저명하고 오래된 귀족으로 명망 높은 볼루시우스 가문 출신이다. 로마 또는 페로니아가 고향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원로원 의원이지만, [[법무관]]도 오르지 못했다. 아버지 퀸투스 볼루시우스는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웅변, 수사학 직계 제자이자 비서로, 에트루리아 지방의 유서 깊은 도시 페로니아 출신이다. 그는 뛰어난 인품과 높은 수준의 교양에도 조영관도 지내지 못한 평범한 원로원 의원이었다. 스승 키케로를 따라 킬리키아에서 그의 비서, 관료를 지냈고, 키프로스 파견 근무를 했다. 이때 그는 스승 키케로, 현지 주민, 율리우스 카이사르 모두에게 "신뢰할 수 있고, 매우 온화한 신사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받았다. 어머니는 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고모 클라우디아인데, 그녀의 동생은 티베리우스 황제의 친아버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기원전 42년 법무관)|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다. 그는 이들 부부의 세 자녀 중 둘째 혹은 셋째로 태어났는데, 위로는 형 퀸투스와 여자형제 볼루시아 사트로니나가 있었다. 자세한 행적은 모르나, [[아우구스투스]] 치세 아래 [[쿠르수스 호노룸]](명예로운 경력)을 훌륭히 지냈다. 그 이유는 능력이 뛰어나고, 인품이 훌륭한 이유도 있으나, 그의 사촌들이 아우구스투스의 양자들인 [[티베리우스]], [[대 드루수스]]였던 것이 컸다. 따라서 그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조영관]] 경력도 없다는 이유로, 조상과 부모의 경력을 놓고 평하는 원로원 귀족들에게 거의 노부스 호모(신참자) 취급을 받았음에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후원 속에서 빠르게 쿠르수스 호노룸을 밞았다. 이때 그는 아우구스투스의 도움으로 사법부 구성을 선발한 검열 업무를 맡고, 높은 보수를 자랑한 업무를 떠맡고, 이때부터 볼루시우스 가문이 엄청난 재산을 긁어 모을 수 있는 장례 사업[* 손자 퀸투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가 물려받아 사업을 키운 납골 사업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허락으로 아피아 가도 중 가장 좋은 자리에서 납골당 조성 사업을 했고, 집안 노예와 해방노예들을 직원으로 두면서, 사업 규모가 엄청났다고 한다.]을 시작할 기회를 얻어, 가문 최초로 많은 재산을 쌓을 수 있었다고 [[타키투스]]는 전한다. 그는 기원전 12년 집정관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가 임기 6개월 뒤, 아우구스투스의 결정으로 자진 사임 형태로 물러나자마자, 황제에게 추천 형태로 보결 집정관에 입후보해 당선됐다. 이때 그는 동료 보결 집정관들과 달리 특별히 남은 6개월 임기를 전부 채우며 정규 집정관처럼 활동했다. 이후, 아우구스투스의 후원 속에 [[에퀴테스]]들로 구성된 배심원 선발 책임자가 됐고, 집정관 임기 수행 직후부터 축제와 경기 시합 에서 축제 및 연회를 담당하던 사제단인 에풀로네스에 임명됐다. 그리고 기원전 7년과 기원전 6년 제비뽑기에서 임명이 보장된 구슬을 받는 형태로 아프리카 속주 총독을 2년간 지내고, 서기 4년과 서기 5년에는 시리아 속주 총독을 지냈다. 이 모든 경력과 선발과정은 전부 아우구스투스가 후원했다. 서기 20년 사망했다. == 가족 == 기원전 36년 보결 집정관을 지낸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의 딸 노니아 폴라와 결혼해, 사이에 딸 볼루시아 라티나 사투르니나, 아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를 뒀다. 일부 학자들은 이 외에도 또 다른 딸 볼루시아 코르넬리아를 뒀을 수 있다고 하나, 20세기 [[오스트리아]]의 연구자 루돌프 한슬리크는 볼루시아 코르넬리아는 그의 조카로 루키우스의 형 퀸투스 자녀라고 평한다. 그리고 이런 한슬리크의 주장처럼 루키우스의 딸 볼루시아 라티나 사투르니나 비문에 따르면, 여자 형제는 없음이 확인된다. 두 자녀 중 첫째인 딸 볼루시아 라티나 사트로니나는 [[마르쿠스 롤리우스]]의 동명이인 아들 마르쿠스 롤리우스와 결혼해, 사이에 롤리아 사투르니나, 롤리아 파울리나 자매를 뒀다. 자녀 중 둘째인 아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는 서기 3년 집정관을 지냈다. 비문에 따르면 기원전 38년생으로 아버지처럼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래에서 황제들의 두터운 신임 속에 복점관(아우구르)이 됐고, [[쿠르수스 호노룸]] 전체를 밞았다. 또 [[프라이펙투스 우르비]]를 연임했다. 하지만 이보다 로마인에게 화제를 모은 것은 그가 93살까지 매우 장수했고, 차남 퀸투스를 62세의 늙은 나이에 득남했다는 소식이었다. 그가 60대의 나이에 차남을 아내 코르넬리아 렌툴라와의 사이에서 얻을 당시, 아내 역시 당시 기준으로 꽤 고령이었고, 같은 부모를 둔 장남과 차남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점은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