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ucrezia Borgia}}} [[파일:external/www.spinvis.nl/Lucreziutherlandkl.jpg]] [[파일:/img/img_link7/817/816059_1.jpg]] [[파일:/img/img_link7/817/816058_1.jpg]] [[파일:/img/img_link7/817/816057_1.jpg]] 전설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Dame Joan Sutherland)[*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의 소프라노. 영국 궁정가수 칭호를 받았으며, 대영제국 2등급 훈장(DBE)를 수훈했다. 해당 훈장의 수훈자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애거서 크리스티]] 등이 있다.]의 영국 왕립극장 공연 당시 캐릭터 스케치. [목차] == 개요 == [[사랑의 묘약]],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로 유명한 [[도니제티]]가 [[빅토르 위고]]가 지은 운문 사극을 바탕으로 작곡한 [[오페라]]. 프롤로그 → 1막 → 2막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토리는 전체적으로 몇 부분 생략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원작에 충실한 편이고, 1833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공연되지 않은 오페라 중에 하나이다. 오페라 제목이 길기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보통 '''루크레치아'''라고도 부른다. == 찬밥 취급 == 19세기의 이탈리아 오페라는 벨 칸토를 배척하고, 현실주의에 충실한 [[베리즈모]] 열풍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때문에 [[안나 볼레나]], [[노르마(오페라)|노르마]], [[청교도(벨리니의 오페라)|청교도]], [[몽유병의 여인]], [[오리백작]],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이 오페라만큼은 소프라노들의 기교 과시욕 때문인지 몰라도 [[마리아 칼라스]]가 등장하기 전에도 공연 자체는 자주 되었다.]를 위시한 벨 칸토 오페라들이 거의 모든 오페라 극장에서 공기화 내지 찬밥취급을 당했던 시기였는데,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역시 그러한 유형에 속했고 19세기 이후 공연하는 일이 드물어 관객들의 뇌리에 서서히 잊혀져갔다. == 부활 == 1950년대 이후 그 동안 관객들의 기억 속에서 완벽히 잊혀졌던 벨 칸토 오페라들은 [[마리아 칼라스]], [[레일라 젠체르]], [[조안 서덜랜드]] 같은 명소프라노들에 의해 다시 부활하게 된다. 마리아 칼라스는 [[노르마(오페라)|노르마]]와 [[안나 볼레나]]를 극장에 다시 올리게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조안 서덜랜드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루치아의 경우 칼라스가 새로운 해석을 보여줬지만, 극적 표현과 음악의 아름다움이 복합적으로 이뤄진 루치아는 서덜랜드가 앞선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서덜랜드의 장기 레퍼토리가 루치아 이기도 하고....], [[텐다의 베아트리체]]를 극장 레퍼토리에 다시 올리게 해주었고, 레일라 젠체르는 [[마리아 스투아르다]]와 [[로베르토 데브뢰]]를 부활시켰다. 그리고, 1965년 4월 20일.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그 동안 잊혀졌던 또 다른 벨 칸토 오페라가 비평가와 관객들에게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바로, 초연 이후 완전히 잊혀졌던 도니제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였고, 요넬 파를레아의 지휘로 이뤄진 [[콘서트]] 형식에 의한 공연이었다. 당시 타이틀롤은 [[메조 소프라노]] [[마릴린 혼]]이 맡을 예정이었다. 근데, 혼이 갑작스런 이유로 콘서트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자, 카네기 홀 측에선 급히 신예 [[소프라노]] 한명을 데려오게 한다. 혼의 대타로 오게된 신예 소프라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이었고, 이름은 [[몽셰라 카바예]] 였다. 공연이 임박해서야 혼의 대타로 급히 오게된 카바예는 당시 리허셜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한다. 근데, 결과는 예상외로 '''대성공'''이었고,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이 콘서트 형식 공연 이후 다시 극장 레퍼토리로 부활하게 되었으며, 카바예 역시 [[미국]] [[타임지]]에서 "눈부시게 뛰어난 여인"이라는 뜻을 가진 "La Superda[* '라 수페르다'라고 발음한다.]"라는 찬사를 받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입지를 확고한 것은 물론 다음해에 [[메트로폴리탄]] 극장에 데뷔 무대도 가지게 된다. 즉,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카바예의 명성을 확고히 하게된 계기를 마련한 배역이라고도 볼 수 있다. 카바예는 같은 해에 [[알프레도 크라우스]]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녹음도 했고, 파트너였던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공연도 같이했다. [[파일:/img/img_link7/816/815916_6.jpg]] [[파일:/img/img_link7/816/815916_4.jpg]] [[파일:/img/img_link7/816/815916_5.jpg]] [[파일:/img/img_link7/817/816057_2.jpg]] 루크레치아로 분한 [[몽셰라 카바예]] 카바예의 뉴욕 카네기홀 콘서트 형식 공연을 계기로 수많은 벨 칸토 [[소프라노]]들이 루크레치아역을 맡게되었다. 1970년대에는 [[레일라 젠체르]]와 [[베벌리 실즈]], [[조운 서덜랜드]]가 대표적이었는데, 이 중 서덜랜드의 루크레치아가 특필할만한데,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ROH) 등에서 자주 공연했고, 소속사 [[데카]]에서도 전곡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서덜랜드의 루크레치아 공연 중 1977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실황, 1980년 ROH 실황 모두 DVD로 발매되었다. 이 중 시드니 공연은 음반도 나왔다.] [[파일:/img/img_link7/817/816061_1.jpg]] 루크레치아로 분한 [[조운 서덜랜드]] 카바예, 서덜랜드, 실즈, 젠체르의 활약으로 루크레치아는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세계 여러 극장에서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 [[청교도]],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사랑의 묘약]]에 비하면 그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비교적 자주 공연되는 것은 사실이다.] 후에 또 다른 [[소프라노]]들이 루크레치아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에디타 그루베로바]], [[르네 플레밍]], [[마리엘라 데비아]]가 그들이다. 그 중 [[마리엘라 데비아]]는 [[마르첼로 알바레스]]와 같이 출연한 2002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공연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미국에서는 [[르네 플레밍]]이 메트와 LA 오페라 극장, [[샌프란시스코]] 극장에서 루크레치아 역을 불러 큰 환호를 받았으며 그 중 2011년 샌프란시스코 실황이 DVD로 나와있다.[* [[블루레이]]로 나왔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공연하지 않은 오페라이지만, 외국에서는 베리즈모에 밀려 찬밥취급 받다가 명소프라노들의 활약으로 다시 부활해서 무대에 자주 올려지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마리아 스투아르다]]나 [[시몬 보카네그라]]와 함께 그 진가가 늦게 알려진 편이라 볼 수 있겠다. == 등장인물 == * [[루크레치아 보르자]] * 제나로 * [[알폰소 데스테]] * 마피오 오르시니 * 제포 리베르토 * 아포스트로 가젤라 * 아스카니오 페트루치 * 오로페르노 비텔로초 * 구베타 * 루스티젤로 == 명반과 영상물 ==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나 [[돈 파스콸레]], [[사랑의 묘약]]에 비하면 인지도는 덜하지만, 무대에선 비교적 자주 올라오는 편이다. 허나, 녹음된 음반은 많이 있지 않다. 그나마, [[몽셰라 카바예]]와 [[조운 서덜랜드]]가 남긴 스튜디오 전곡반과 몇 개의 실황반이 나와있는데, 전곡반의 경우 카바예는 [[RCA]]에서, 서덜랜드는 소속사인 [[데카]]에서 녹음했다. 먼저, [[몽셰라 카바예]]가 RCA에서 녹음한 음반에 대해 언급하겠다. [[파일:/img/img_link7/815/814204_3.jpg]] '''1966년 RCA에서 출시된 몽셰라 카바예판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전곡반''' 몽셰라 카바예가 타이틀롤, [[알프레도 크라우스]]가 제나로, 에치오 플라젤로가 엘폰소 데스테, [[셜리 버렛]]이 오르시니를 맡고, 요넬 파를레아가 지휘한 이 음반은 성악가들의 기량에 비해 지휘자의 역량이 아주 부족한 음반이라 하겠다. 우선, 전성기 시절 몽셰라 카바예의 절창은 매우 훌륭하며 크라우스를 비롯한 다른 배역의 가수들 또한 제 몫을 잘 해주고 있다. 지휘자인 요넬 파를레아가 함량 미달이라는 비판이 많지만, 카바예의 루크레치아를 듣는다는 의미에서라도 이 음반의 가치는 남다르다.[* 하지만, 루크레치아의 아리아 "Tranquillo ei posa...Com' è bello!"는 카바예가 별도로 녹음한『Presenting Montserrat Caballe』에서 부른 것이 더 좋았다는 평가가 있다. 카를로 펠리체 칠라리오의 지휘도 전곡반의 요넬 파를레아 보다 집중력있게 잡아준 것은 물론이거니와, 반주가 시냇물처럼 유유자적하게 흘러가기도 했고.] 그 다음은 [[조운 서덜랜드]]가 [[데카]]에서 녹음한 음반이다. [[파일:/img/img_link7/815/814211_1.jpg]] '''1977년에 녹음된 서덜랜드판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벨칸토 오페라의 부흥에 큰 기여를 한 조안 서덜랜드의 목소리가 1970년대 후반에 들어 무거워지고 극적으로 변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부르기에 낮은 테시투라를 요구하는 루크레치아 역에 딱 들어맞는다. 확실히 저음역대가 그 전보다 탄탄해졌고 콜로라투라 기술도 전성기의 그것을 유지하고 있어, 카바예보다 음악적으로 더 완벽하다고 할 수 있겠다. 서덜랜드뿐 아니라 평생 그녀와 많은 벨칸토 오페라를 공연한 남편 리처드 보닝의 지휘 하에, 그들과 자주 호흡을 맞췄던 메조소프라노 메릴린 혼, 가장 어린 나이에 라 스칼라 극장 데뷔를 한 테너 지아코모 아라갈, 수많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활약을 한 스웨덴의 명바리톤 잉그바르 빅셀 등 다른 가수들도 최상급 실력을 보여준다. 루크레치아 보르지아의 영상물도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도 완성도 높은 영상물은 꼽자면 두 가지 인데, 모두 [[조운 서덜랜드]]가 타이틀롤을 맡은 것이다. 하나는 1977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실황, 또 하나는 1980년 [[런던 코벤트 가든 극장]]에서 열린 실황이다. [[파일:/img/img_link7/815/814077_1.jpg]] '''1977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실황 DVD''' [[파일:/img/img_link7/815/814078_1.jpg]]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시리즈로 나온 DVD''' 우선, 1977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실황에 대해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당시의 서덜랜드의 가창은 아직까지 전성기 였다는 점도 있고, 무엇보다 비쥬얼에서도 몰입감이 강하다. 다만, 화질이 밑에 소개되는 런던 코벤트 가든 실황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다. [[파일:/img/img_link7/815/814096_1.jpg]] '''1980년 런던 코벤트 가든 실황. 시중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영상물이다.''' 위 영상물이 전성기의 모습이 남아있던 서덜랜드를 볼 수 있는 축복을 선사한다면 이 영상물은 [[조운 서덜랜드]], [[알프레도 크라우스]]라는 두 노익장이 출연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분류:오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