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레온 스구로스[br](영어: Leo Sgouros, 그리스어: Λέων Σγουρός)|| || '''출생''' ||미상|| || '''사망''' ||[[1208년]]|| || '''직위''' ||나우플리아와 아르고스의 총독|| || '''반란 대상''' ||[[알렉시오스 3세]]|| [목차] [clearfix] == 개요 == [[동로마 제국]] [[앙겔로스 왕조]]의 반란자. 1201년 [[알렉시오스 3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중부 그리스를 거진반 장악하는 등 위세를 떨쳤으나, [[라틴 제국]]의 공세로 몰락했다. == 생애 == 나우플리아와 아르고스 지역의 총독이었던 테오도로스 스구로스의 아들로, 1198년 부친으로부터 작위를 물려받은 뒤 동로마 제국 함대에 배를 제공하고 세금을 납부했다. 1201년 알렉시오스 3세에 맞서 반란을 일으기기로 마음먹고, 나우플리아에서 대주교와 유력 인사들을 연회에 초청한 뒤, 그들을 모조리 수감하고 대주교를 실명시켰다. 이후 보이오티아의 테베를 함락한 뒤 아테네 공략에 착수하여 아티카 일대를 황페화시키고 도시를 포위했지만, 아테네 시 주교인 미하일 호니아티스[* 역사가 [[니키타스 호니아티스]]의 형이다.]의 결사적인 항전으로 인해 쉽사리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러다 알렉시오스 3세가 파견한 함대가 접근해오자, 그는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 그 후 1203년까지 아티카 보이오티아, 코린트 지협을 포함한 여러 도시를 공략한 그는 1204년 다시 아테네를 침공했지만, 미하일 호니아티스가 이끄는 민병대에게 격퇴되었다. 1204년 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도망친 [[알렉시오스 3세]]와 라리사에서 만났고, 알렉시오스의 딸 [[에우도키아 앙겔리나]]와 결혼했다. 알렉시오스는 [[라틴 제국]]을 세운 [[제4차 십자군 원정|십자군]]과 맞설 것을 종용했고, 그는 이에 따라 십자군 지도자이자 테살로니카 왕국을 세우려는 몬페라토 후작 보니파시오와 맞섰다. 그러나 그리스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을 폭압적으로 대했기에 민심을 잃었고, 그 때문에 십자군에 맞설 병력과 물자를 모집하기 힘들었다. 그는 테르모필레에서 보니파시오를 저지하려 했다. 첫번째 공격은 격퇴했지만 두번째 공격은 끝내 뚫렸고, 미하일 호니아티스까지 보니파시오에게 가세했다. 결국 추종자 몇 명과 함께 아크로코린스 요새로 피신하여 항전하였다. 그는 4년간 몬페라 공작의 공격으로부터 요새를 지켰지만, 주변 일대가 모조리 공작의 손아귀에 넘어갔고 어디에서도 구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으로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창건자 [[미하일 1세 콤니노스 두카스]]에게 구원을 호소했지만, 미하일 1세는 단호히 거부했다. 결국 1208년 말, 그는 절망에 빠져 말을 타고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아크로코린스 요새는 이후에도 항전했지만, 1210년 라틴군에게 함락당했다. [[분류:동로마 제국의 총독]][[분류:십자군 전쟁/관련인물]][[분류:1208년 사망]][[분류:이탈리아의 자살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