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소개 == '''{{{+1 La Máquina}}}'''. [[1940년대]]에 [[CA 리버 플레이트]]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소속으로 [[코파 아메리카]]를 씹어 먹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공격수들. 당시 남미 축구에서 최고였고 실제 매치가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의 위대한 토리노(Il Grande Torino)[* [[발렌티노 마촐라]]를 필두로 한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 낸 팀. 하지만 1949년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인해 토리노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 대표팀]]까지 큰 타격을 입게 된다.]와 세계 축구를 양분하던 팀이었다.[* 라 마키나와 토리노가 실제로 만난 것은 [[수페르가의 비극]] 이후에 그 유가족들을 위해 치른 자선 경기였다.] 그들의 움직임이 [[기계]]와 같이 유기적이었기 때문에 라 마키나[* La Máquina, 영어로는 The Machine.]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이 별명은 아르헨티나 잡지 엘 그라피코 소속의 보로코토라는 기자가 1942년 6월 차카리타 주니어스를 6:2로 완파하는 것을 보고 붙여주었다. == 멤버 == ||<:> [[파일:라_마키나.png|width=100%]] || ||<:> [[파일:external/footballsgreatest.weebly.com/3469488.jpg|width=100%]] || ||<:> 당시 포메이션. 위쪽이 라 마키나 멤버들이다. || [[호세 마누엘 모레노]], [[아돌포 페데르네라]], 후안 카를로스 무뇨스, [[앙헬 라브루나]], [[펠릭스 루스토]]. == 결성 과정 == 1935년에 들어온 [[호세 마누엘 모레노]]와 [[아돌포 페데르네라]]의 인사이드 포워드 듀오는 그 자체만으로 강력했다. 1939년에 [[앙헬 라브루나]]와 후안 카를로스 무뇨스가 입단하였고 1942년에 [[펠릭스 루스토]]가 들어옴으로써 라 마키나의 마지막 [[퍼즐]]이 완성되었다. == 전성기 == 그들이 이끄는 리베르 플라테는 [[수페르리가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 리그]]에서 10년 동안 4번을 우승하였다.[* 수페르클라시코로 유명한 지역 라이벌 [[CA 보카 주니어스]]와 [[1940년대]]에는 우승을 거의 나눠 먹다시피 했다.] 단순히 아르헨티나 리그에서만 잘해서는 이런 평가를 받기에 부족한 법. 그들은 [[코파 아메리카]]에서 [[기예르모 스타빌레]] 감독의 지휘를 받으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라 알비셀레스테]]의 공격을 이끌었다. 그리고 1941년 대회와 1945, 1946, 1947년 대회를 3연패하는 기염을 토해 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다섯 명이나 되는 선수들을 통째로 묶다 보니 그들 모두가 경기장에서 뛰는 경기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한 팀에 전부 있었던 시즌이 3시즌밖에 되지 않았고, 다섯 명이 모두 뛴 경기를 합치면 18경기에 지나지 않는다. == 해체 == 1944년에서 1946년까지 모레노가 잠시 멕시코 리그에 다녀왔지만 1945년에 리그 우승을 차지함으로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1947년 페데르네라가 아틀란타로 떠났고, 그럼에도 우승에 성공하였지만 이후 1949년 모레노까지 팀을 떠나면서 라 마키나는 거의 해체되고 말았다. 1952년 이후에도 우승은 계속 쌓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약해진 후였다. == 영향 ==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되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가장 존경하던 선배가 바로 라 마키나의 레프트 인사이드였던 [[아돌포 페데르네라]]이다. 또한 그들의 유기적인 축구는 전설적인 [[1974 FIFA 월드컵 서독|1974년 월드컵]] 당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오렌지 군단]]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라 마키나즘은 이후 [[1960년대]] 수벨디야의 에스펜디언테가 득세할 때까지 남미 축구의 소위 '좌익 축구'라 일컫어지는 유기적이고 다이나믹한 공격 축구 흐름을 주도했다. 수벨디야의 득세 이후 에스펜디언테가 [[수페르리가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 리그]]를 제패하며 '좌익 축구'에 반대되는 개념인 '우익 축구', 즉 재미에 상관없이 오로지 승리를 추구하는 흐름이 이어졌으나,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시절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의 유명한 좌익이자 대표팀 감독이던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가 라 마키나즘의 영향을 받아 좌익 축구를 이끌어가며 라 마키나즘이 건재함을 증명했다. 이후 [[남아메리카|남미]] [[축구]]의 흐름은 [[텔레 산타나]],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메노티]]로 대표되는 좌익과 수벨디야, [[카를로스 빌라르도|빌라르도]]의 우익이 대립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각주] [[분류:축구선수/통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