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220px-Du_Mu.jpg|width=300]] 杜牧 803 ~ 853 [목차] == 개요 == 자 목지(牧之), 호 번천(樊川). 당나라의 시인이자 학자로 우리나라에선 두목이라는 이름보다는 두목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 생애 == 경조부 만년현(京兆府 萬年縣), 현 [[산시성]] [[시안시]] 출생. 당나라의 학자이자 관료인 [[두우(당나라)|두우]]의 손자이다. [[이상은(시인)|이상은]]과 더불어 이두(李杜)로 불리며[* 혹은 이백+두보를 대이두, 이상은+두목을 소이두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작품이 [[두보]](杜甫)와 비슷하다 하여 소두(小杜)로 불린다. 26세 때 진사에 급제하여, 굉문관교서랑(宏文館校書郞)이 되고, 황주(黃州) ·지주(池州) ·목주(睦州) 등의 자사(刺史:지방장관)를 역임한 후, 벼슬이 중서사인(中書舍人)까지 올랐다. 매사에 구애받지 않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당나라]]의 쇠운을 만회하려고 무한히 노력하였다. 시풍은 동시대의 두보와는 달리 남성적이고 호방한 편이고 천재 시인일 뿐만 아니라 용모도 준수해서 여인들과 많은 염문을 뿌린 풍류남아로 이름이 높다. 그래서 후세에도 잘생긴 미남, 시 잘짓고 풍류를 즐기는 한량 풍류남의 표상으로 흔히 언급되었다. == 번천문집 == 《번천문집(樊川文集)》이라는 저서가 있는데 이 책에서 [[장보고]]·[[정연(통일신라)|정연]]의 이야기를 다룬 『장보고· 정년전』이 실려있다. 우리역사넷에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treeId=010302&tabId=01&levelId=hm_034_0040|번역본]]이 올라와있다.《[[삼국사기]]》의 [[장보고]]열전 또한 이 책을 참고하였는데 아무래도 타지인이 바라보는 시각에서 쓴 책이다 보니 신라쪽 기록과는 충돌되는 부분이 있다. 《[[삼국사기]]》 편찬자도 이를 감안해 장보고열전에는 "번천집을 참고하였는데, [[신라]]쪽 기록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언급하였다. 장보고가 신라로 돌아간 후 당나라에는 소식이 끊어졌기 때문에, 두목의 글에는 장보고가 재상이 되었다는 말만 나오고 장보고, 정연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없다. == 여담 == [[항우]]의 성급함을 지적한 시가 고사성어 [[권토중래]]의 유래가 됐다. 항목참조. [[분류:당나라의 시인]][[분류:수당시대/인물]][[분류:803년 출생]][[분류:853년 사망]][[분류:시안시 출신 인물]]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두목, version=59, paragraph=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