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조위의 대신, rd1=두기(삼국지), other2=조위의 악사, rd2=두기(조위))] 杜祺 생몰년도 미상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의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한]]의 인물로 [[형주]] [[남양군]] 사람. == [[삼국지(정사)|정사 삼국지]] == [[유비]]가 [[익주]]를 평정할 때 염부교위라는 직책을 두어 [[소금]]과 [[철]]의 이익을 관리하자 교위 [[왕련]]이 두기를 전조도위로 임명했다. 두기는 [[군수]], [[감군]], [[대장군]] [[사마(관직)|사마]]를 역임했으며, [[제갈량]]이 많은 [[무장]]들과 [[문관]]들을 모아서 [[이엄]]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릴 때 그 이름을 올렸고 이 때 벼슬은 행참군 무략중랑장이었다. 244년에 [[흥세 전투]]에 [[참모|참군]]으로 참전했고 이 때 [[왕평]]이 두기는 [[유민(삼국지)|유민]]과 함께 먼저 보내 흥세산을 점거하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으며, [[여예]]와는 친밀한 사이로 당시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 [[삼국지연의]] == [[출사표]]에 언급된 장수들 중의 한 사람으로 나온다. == 미디어 믹스 == [[진삼국무쌍6]]에서는 [[촉나라|촉]] 토벌전에서 [[조상(삼국지)|조상]]이 이끄는 조위군이 왕평이 있는 서쪽의 군량고를 공격했다가 본진을 공격당하면서 조상이 위기를 맞는데, 위군에서 본진을 구한 후에 조상의 탈출을 도우면서 남동쪽으로 도주할 때 북동쪽의 성에서 [[유민(삼국지)|유민]], [[유은(서진)|유은]], [[왕림#s-2]] 등과 함께 촉한군의 원군으로 등장한다. [[진삼국무쌍7]]에서 흥세산의 전투에서 유민과 함께 조상이 군사를 이끌고 나간 틈을 타서 조위군의 본진을 공격하며, 조상이 퇴로를 차단돼서 포위되자 북쪽에서 공격하는 역할을 맡는다. [[삼국전투기]]에서는 낙곡 전투 (2)에서 처음 등장. 이름 때문에 '천재소년 두기'의 두기 하우저로 패러디 되었다. 낙곡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위(삼국시대)|조위]]에서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왕평이 의견을 말해 보라 하자 섣불리 어느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가는 다른 쪽에서의 공격에 대처하지 못할 수 있으니 [[낙성]]과 한성을 방패삼아 평지인 [[남정]]에서 농성하며 버티자고 주장했다. 왕평이 적의 대군을 평지로 들인다면 반격의 여지가 없을 거라고 반대하자 [[청두|성도]]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 농성을 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왕평은 두 달은 버텨야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텐데 버티지 못한다면 [[한중]]이 바로 적의 손아귀로 떨어질 거라며 다시금 이에 반대했다. 그리고 왕평이 낙곡을 막고자 산으로 가려 했지만 두기 등의 수하는 끝까지 말을 듣지 않아서 결국 왕평과 유민만이 낙곡으로 향한 것으로 묘사된다.[* 왕평은 이 꼬라지를 보고 유민에게 내가 그 동안 너무 민주적으로 대했었냐(...)며 ~~독자와 함께~~ 어이없어하기도 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두기, version=144)] [[분류:촉한의 인물]]